풍천장어는 왜 더 맛이 있는가 / 정진규
고창 선운사 절밑 마을 가서 복분자술에 풍천장어를 한 점만이라도 자셔본 분들은 안다 민물장어가 더 맛있고 비싼 것으로 되어 있지만 나로서는 그렇지가 않다 풍천장어가 월등 맛이 더하다 풍천장어는 민물과 바닷물 사이를 드나든다. 풍천이 그런 곳이다. 드나든다 경계가 없다 드나드는 모든 것들은 맛이 있다 황홀하다 특히 사랑이 그러하다 증류식만 좋은 것이 아니다 희석식으로 견디다 견디다 마침내 증류식이 되는 게 그게 진짜다 아름다운 모반, 풍천장어가 그렇다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 2000) .....................................................................
아직도 '풍천'을 지명으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적지않으나 사실은 민물과 해수가 만나는 지점에 서식하는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농약 등 오염원의 유입으로 자연산은 수량이 적어 비싸기도 하지만 잡히는 족족 남 줄 것 있냐며 지역유지의 차지가 된단다. 따라서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풍천장어는 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진주 남강의 장어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장어하면 풍천장어를 떠올리며, 풍천장어하면 곧장 고창 선운사 입구를 염두에 둔다. 고창 선운사 앞 인천강에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風" "내川"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것이다.
그곳 장어가 다른 곳에 비해 객관적으로 월등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방귀깨나 뀐다는 친구의 얘기를 빌자면 복분자 두어 병에 선운사 풍천장어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섞어 한 몇 킬로 먹고 인근 나인홀 골프장에서 공 한 번 친 후 저녁엔 동호 입구쪽 호반식당에서 백합죽 한 사발 비운 다음 침소에 들어 요강 자빠뜨린 술의 내력과 장어의 효험까지 실험에 든다면 천하에 부러울 것 없단다. 얼마전 한 친구가 번들거리는 얼굴을 씰룩거리며 그 코스를 돌았다고 자랑질 하길래 속으로 '그래, 니 잘났다, 니 똥도 굵겠다' 그랬다. 그러나 그는 내가 속으로 군침을 흘렸을거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시인은 풍천장어 맛에 반해 그 값으로 소품 하나 후다닥 주물렀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내용은 좀 거시기하다. 대뜸 '드나드는 모든 것들은 맛이 있다'고 했다. 복분자 한 잔과 지글거리는 장어 몇 토막 앞에 두고 내심 몸에 좋은 것, 특히 남자에게 좋은 음식, 게다가 끝내주는 맛, 무엇을 상상했을까는 쉬 짐작이 간다. 그래서 감탄사 한 문장을 추가했다. '황홀하다'라고. 그래도 눈치 더딘 독자를 위해 사족을 덧붙였다 '특히 사랑이 그러하다'라고. 풍천장어와 복분자의 아름다운 모반이라니. 질 좋은 복분자술은 100% 발효주라는데 희석식으로 ‘견디다 견디다’ 마침내 증류가 되는 그 진짜란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한여름밤에 꿈꾸어봄직한 호사이기는 할까.
권순진
The Glen - Bradley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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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