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陽墓(두양묘)
임방(任埅:1640~1724)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대중(大仲), 호는 수촌(氺村)· 우졸옹(愚拙翁).
1702년(숙종 28)알성문과에 병과에 급제 한 뒤 밀양부사· 대사간·공조판서를 역임했다.
임방은 연잉군(영조)의 세자 책봉에 앞장섰다가 신임사화로 함종에 유배되었고, 금천(金川)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영조 즉위 후 복권 되었다.
특히 당시(唐詩)를 좋아하여 여러 권의 시가집을 엮기도 했다.
저서로는 『수촌집(水村集)』이 있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외로운 무덤 하나 두향의 것이라네
一點孤墳是杜秋 일점고분시두추
*두추(杜秋);당나라 때 ‘두추’라는 명기가 있어서 그 이름을 빌어다 씀.
강선대 아래 강머리에 있네
降仙臺下楚江頭 강선대하초강두
꽃다운 혼 멋진 풍류에 빚진 값으로
芳魂償得風流債 방혼상득풍류채
경치 좋은 언덕에 두향을 묻어 주었네
絶勝眞娘葬虎丘 절승진랑장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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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任埅)이 쓴 『수촌집(水村集)』에는 두향(杜香)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두양은 단양 기생이다.
(여기서는 두향을 ‘두양’으로 표기)
杜陽丹妓也 두양단기야
거문고에 능하고 노래와 춤을 잘 추었다.
能琴善歌舞 능금선가무
스무 살에 요절하여
二十而夭 이십이요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하여 강선대 아래 산기슭에 묻었다.
遺囑葬降仙臺對麓 유촉장강선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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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1501~ 1570)
본관은 진보(眞寶) 혹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 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는 문순(文純). 사후(死後) 이자(李子), 이부자(李夫子)로 존숭 되었다.
율곡 이이(李珥)가 서인(西人)의 정신적 지주라면
퇴계 이황은 동인(東人)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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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향(杜香:?~?)
기명(妓名)은 두향(杜香), 성(姓)은 미상(未詳), 단양(丹陽) 태생.
이황(李滉)이 48세 단양(丹陽) 군수로 부임했을 때
18세 어린 관기(官妓)였다.
시색(詩色)이 출중하고 거문고에 능했으며, 난과 매화를 사랑했던,
해어화(解語花)였다.
늘 곁에 두고 사랑의 교감과 정신적 교류를 하였다.
풍기(豊基) 군수로 떠나면서,
그들의 사랑은 9개월 만에 끝이 났다.
두향은 혹여 이황의 장래에 누가 될까
평생을 홀로 지냈다.
이황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미리 달여두었던 부자탕(附子湯)을 마시고
조용히 이부자리에 누워 숨을 거뒀다.
“나의 유해를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선대 옆에 묻어 주소서.”
유언을 남겼다.
일설에는 강선대에서 투신했다는 설도 있다.
평생 한 남자를 사랑하고 흠모했던 한 여인은
죽어서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충주호 강선대 위에 두향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