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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문학 아카데미 2기 수료식 답사
제가 가천시창작반에 나간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거기 고리타분한 데를 왜 가느냐고 합니다. 초등학생도 아닌데 필사나 하라고 하고 논어니 시경이니 하면서 시 창작 하고는 상관도 없는 책을 읽으라고 해서 싫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필사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필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에 시인 윤동주 선생은 같은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 대학 선배였던 정지용 선생의 시를 열심히 필사했습니다. 필사는 시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6년 전인 201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십 분쯤 떨어진 바르비종이라는 곳에 있는 밀레 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것을 보았습니다. 인상파 화가로 너무나도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수백 장 필사한 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시인이 되는 데도, 위대한 화가가 탄생하는 데도 필사가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 고향 청송에 가면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객주문학관이 있습니다. 재작년에 개관했고 그 직후에 가봤는데 거기서도 재밌는 걸 하나 보았습니다. 김주영 선생은 200자 원고지 한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1,000자도 넘는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토속어를 정확하고도 다양하게 구사하기 위해 대학 노트에 유사어들의 일련번호를 수십 개씩 매겨 빼곡하게 적어가며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남다른 노력을 중앙일보 2014년 3월 24일자 기사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작가는 어휘 선택이 치밀했다. 말(馬) 하나만 해도 수십 가지로 구분했다. ‘좌마(坐馬)는 벼슬아치가 타는 관마(官馬), 보마(寶馬)는 임금이 타던 말, 타마는 짐 싣는 말 …’ 등등. 작가는 글을 쓰면서 때로 어떤 사물을 묘사할 딱 맞는 단어 하나를 찾아 밤을 꼬박 새며 국어사전을 뒤졌다. 그러다 새벽녘에 이거다 싶은 단어를 찾아내곤 혼자 만족해 실실 웃으며 동네를 쏘다녔다고 한다.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시인의 작품을 필사하고 참신한 시어를 얻기 위해 사전을 찾고 메모하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문학적 글쓰기의 기초 중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한 나라의 경제를 평가할 때 영어로 펀더멘틀(fundamental)이 좋으냐 안 좋으냐를 따집니다. 바로 경제의 기초여건 혹은 기초 체질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고는 만사가 허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많은 아마추어 문인들이 더 좋은 창작교실, 더 좋은 모임을 찾아다니고 더 좋은 문예지에 등단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서울대학교 교문 안에만 들어서면 너도나도 다 서울대생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착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모임은 찾아다닐 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참여하고 기여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모임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러할 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우리 가천시창작반도, 초우문학 아카데미도 점점 더 소문이 나고 부흥할 것입니다.
가천시창작반과 초우문학회가 좋은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일 년 내내 거의 매월, 혹은 매주 모여서 교수님께 배우고 문우들끼리 합평회를 여는 곳은 여기 말고 없습니다. 작년에 저는 불가피하게 초우문학 아카데미에 두 번 빠졌지만 초우문학 아카데미가 좋았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고전을 바탕으로 현대를 아우르는 초우 문복희 교수님의 강의도 좋았고, 봄가을 이벤트를 통해서 다른 문우님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초우 문복희 교수님께 이번 2기 수료생을 대표해서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함께 수료하는 문우님들과 가천시창작반, 은평시창작반, 가천대 한국어교육과 학생들과 CCC 학생 여러분들을 비롯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문우님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2016년 1월 12일
초우문학 아카데미 2기 수료생 대표 심양섭
첫댓글 어제 멋진 답사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훌륭한 답사를 해주신 심양섭 선생님
역시 멋지십니다...
심선생님, 멋쟁이~~**
답사 수준이 몇계단은 올라간 듯.. 담에 답사할 일 있으면 심쌤 원고좀 빌려야지..
와아 우리 심샘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늘 웃고 겸손하시고 열씸이신 샘
개으름에 챗찍을 들어봅니다
열심히 필사를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