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사내
독재자와
그 수족이 지배하던 60년대 밑바닥
그는 군에서 낫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담배 값도 저축해 제대한 전설적 사내
종갓집 장손이었던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은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맨밥에 굴뚝 높은 샘표간장을 비벼먹던 나날
기름기라곤 마가린이 전부였다
판잣집 셋방 하나 얻기 위해서였다
강보에 싸인 내가 창동 모래내로 올라왔을 때
엄마는 장갑을 뒤집고 수를 놓고 구슬을 꿰고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가 잦았던 그를 위해
바람벽 앞에 남묘호렝게교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란 얼룩으로 파고들던 연탄가스처럼
시금치밭 너머 노란 꽃시절이 흐르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학교도 모르는 아이에게 공부만하라고 다그쳤던 그
수없이 반복된 하면 된다 하면 된다 훈화 시간
내가 배운 것은 조용한 증오였다
7번 20번 127번 버스운전을 하며 그는 자신의 목욕표를 모았다
한 달에 한번 가족이 모은 목욕표를 들고 우이동에 갔다
공일 아침엔 새벽차를 타고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창피했다
휴일엔 파자마를 입고 대문을 나섰다 더 창피했다
이발소라도 갈라치면 자식이 공부를 1등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더 더 창피했다
143번을 마지막으로 퇴직할 땐 평생 모은 목장갑이 옷장에 넘쳤다
들말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던 그가
밖을 나갈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도
서랍엔 주워 모은 나사와 볼펜과 거울과
공책이 까치둥지처럼 쌓였다
휴일 어느 날 나는 그의 서랍을 뒤진다
볼펜이며 드라이버를 챙긴다
소똥 개똥도 아까워하던 몰락한
청송 심씨 인수부윤공파 23대 소종손 심우석씨가 모았던
모래알 같은 시간들
소파에 앉아 소웃음 웃는 한 지독했던 사내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