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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송원(茶松園) 원문보기 글쓴이: 長樂山人 이종인
한명숙 징역 2년 유죄선고/종북세력 국회 입성 책임 /左翼履歷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2심에서 징역 2년의 유죄를 선고 받자 민주당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앞서 한 전 총리에 대한 별도의 뇌물수수 사건이 무죄 확정 판결이 났고 이 사건 역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야당 정치인 표적 수사 비판을 받아온 검찰은 한시름을 놓는 반응이다.
대법원에서 항소심 결과대로 확정되면 한 전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구치소에 수감된다. 지난해 10월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16일 서울고법 형사6부는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의 실형과 추징금 8억80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을 뒤집는 판결이 나온 건 사건의 핵심 인물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진술에 대한 1, 2심 법원의 판단 차이에서 비롯됐다. 유·무죄를 가늠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한 전 대표의 진술밖에 없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느냐에 따라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는 “돈을 줬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안 줬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3억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협박하는 듯한 정황을 보였던 점을 감안할 때 사업상 이득을 위해 사건을 허위로 과장해 폭로했을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한 전 총리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아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이 허위 진술의 동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돈을 건넸다”는 한 전 대표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에 주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총리 공관으로 한 전 대표를 초대해 함께 만찬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고, 돈을 주고받은 직후 둘이 통화를 한 사실도 기록과 진술 등으로 뒷받침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기 때문에 3억 원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 전 대표가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는 점도 오히려 그의 진술을 믿을 만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돈을 주고받은 장소에 대한 판단도 엇갈렸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2007년 3, 4, 8월 등 3차례에 걸쳐 경기 고양시 한 전 총리의 아파트 근처에서 한 전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현금과 달러가 들어있는 가방을 30초에 1대꼴로 차량이 지나다니는 아파트 인근 도로에서 얼굴이 널리 알려진 정치인인 한 전 총리가 한 전 대표로부터 건네받았다고 볼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한 전 대표가 차량 안으로 가방을 넣어준 것으로 보인다”며 “한 전 대표가 당시 차량 색상을 정확히 진술하지 못한 건 기억력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 동생이 1억 원 상당의 수표를 사용했는데 출처가 한 전 총리 외에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없는 점, 한 전 대표가 관리해온 채권 회수 목록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의심되는 기록이 있는 점,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로부터 2억 원을 돌려받은 것으로 판단되는 점 등을 들어 한 전 총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한 전 총리를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공기업 사장의 인사 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기소했지만 올해 3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번 사건 역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나왔다면 검찰은 야당 정치인을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강력한 비판을 받을 처지였다.
한 전 총리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전 총리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사건인데 이명박 정부에서도 무죄를 받은 사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유죄로 둔갑해 참으로 유감”이라며 “한 전 대표로부터 돈 받은 적 없고 상고심에서 진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날 공판에 참석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선고 직후 ‘한명숙공동대책위원회’ 명의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항소심 재판부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추정에 추정을 거듭해 검찰의 주장과 증거를 끼워 맞췄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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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명숙 종북세력 국회 입성 책임
종북세력 국회에 입성하도록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한명숙(민주당)·심상정(정의당)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1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태와 관련, "대한민국의 '적(敵)'이라고 할 종북세력이 국회에 입성하도록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한명숙(민주당)·심상정(정의당) 두 의원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하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명숙·심상정 의원은 종북 통진당의 국회입성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대국민 공개사과를 하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하 의원은 "지난해 4.11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은 이른바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당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양보를 이끌어내 지역구 7석에 후보를 당선시켰다"며 "민주당의 협조 없이 통진당의 독자적 역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결과였다는 게 중론"이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아울러 통진당은 당시 예상과는 달리 비례대표 6석도 획득했는데 이는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후보에게 한표를 행사하고 정당표는 통진당에 행사한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며 "다시 말해 '야권연대'가 통진당의 선전에 결정적이었다는 말"이라고 밝혔다.
하 의원은 "통진당이 총 13석을 얻어 '제3당'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그로인해 이석기씨가 국회에 입성하게 된 데에는 당시 민주당 대표로서 통진당과의 연대협상을 주도한 한명숙 의원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며 "한 의원은 자신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아울러 심상정 의원은 후일 다시 분당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과 합당함으로써 이석기 그룹이 국회에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마중물이 되어주었다"며 "더구나 심 의원은 통진당 종북파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심 의원은)지난 2008년 간첩단 '일심회' 사건 이후 통진당 종북파가 얼마나 일심회를 비호하는지 몸소 겪은 사람"이라며 "그 때문에 통진당 종북파와 갈라서 진보신당이라는 독자정당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그럼에도 심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다시금 이들 종북세력과 손잡았다"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위해세력임을 알면서도 손잡은 것이다. 심 의원은 종북세력의 국회진출을 도운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백배사죄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은 '연대협상 당시 통진당의 종북성향이 드러나지 않았고, 야권연대가 총선 직후 사실상 해체됐다는 점에서 과도한 책임전가'라며 책임론에서 비켜가려 하고 있다"며 "궁색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무모한 시도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협상의 상대가 합종연횡 등을 통해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변천하면서 일으킨 간첩단 사건 등 각종 종북논란에 대해 대한민국 전체가 다 알고 있는데 민주당만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냐"며 "민주당이 국민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언행을 중단하고 제1야당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진중한 행보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무엇보다도 민주당은 내년의 지방선거를 비롯해 향후 모든 선거에 있어 이른바 '야권연대'라는 기만술로 '체제전복 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돕는 식의 무분별한 권력추구 행위를 일절 포기할 것을 엄중히 당부한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유시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유시민씨도 (책임론에)포함되지만 그는 정계를 은퇴했기에 그 책임을 진 것으로 간주한다"고 덧붙였다.
3. 한명숙의 좌익전력(左翼履歷) 민주통합당의 경선에서 대표로 선출된 한명숙이 애써 강조한 말이 “정의롭고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 표현이었다. 정치꾼들의 입에서 언제나 들고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자칭 정의의 사도요, 억압 받고 탄압 받는 피해자요, 썩어빠진 사회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인간임을 국민들을 향해 외쳐대는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라는 화두가 그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명숙이 보고 듣는 이 사회는 지금 사람이 아닌 짐승이나 악마가 설쳐대는 아수라장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명숙이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은 사실 노무현이 부르짖었던 구호였고 그를 기리는 노무현 재단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친다. 노무현이 부정부패로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죽기 전에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불행한 사건을, 노무현을 추종하는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명숙도 서슴없이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에 대해 탄압”에 분노하면서 그 억울함을 되 갚아 주겠다는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패한 노무현의 사람 사는 사회를 한명숙이 이어 받겠다는 듯이 말이다. 이제 한명숙의 좌익이력 중 우선 통혁당사건을 알아 보자. 韓 前총리는 1968년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 사건과 관련, 남편 朴聖焌(박성준)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 받았었다. 당시 朴聖焌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 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刑(형)이 확정됐다. 韓 前총리는 징역 1년, 집행유예1년, 자격정지1년 형을 받았다. 통일혁명당(통혁당)에 대한 김일성의 직접적 언급을 듣고 나면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무서운 단체였음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2010.7.3일자 동아일보가 “7.4공동성명 화해제스춰 뒤엔 북 ‘주한미군철수’ 노림수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한 내용 중에서 김일성의 통혁당에 관한 발언 부분을 발췌한다. “김 주석(김일성)은 또 평화공세(7.4공동성명)를 펴면 남한 내 반(反)박정희 세력이 힘을 얻어 자체 혁명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는 당초의 믿음에도 회의를 표시했다. 그는 지프코프 총리에게 “남한 민주통일당과 조국전선을 결성했지만 노동자, 농민과의 연대가 부족하고 통일혁명당 역시 당원이 3000명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이제 한명숙의 두 번째 좌익이력인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을 들춰 보겠다. 1980년 퇴임 할 때까지 10여 연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에서 수사관으로 일했던 이기동씨가 쓴 “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책에서 한명숙에 대한 대목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명숙이 주장하는 “사람 사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에서는 강조하지 않는 사람중심이라는 말이 유독 북한 김일성 왕국의 주체사상 이론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김일성은 대남적화공작 지령에서 ‘진보’와 ‘주체사상’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남조선의 낡은 사상과 제도를 까 부수고 최고의 수준으로 진보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 즉 ‘사람중심’의 사회제도를 만들기 위해 혁명적 사상과 사고를 하라” “사람에게 있어 자주성은 생명이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자주성을 잃어 버리면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동물과 다름 없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인민대중은 역사의 추동력이다.” (이상. 지만원 박사의 “민주화-진보-주체사상, 1977년 북한 금성출판사의 ‘혁명적 세계관과 청년’”에서 발췌) 세계유일, 최악의 3대 세습독재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김일성 왕국이, 북한은 물론 남한의 종북좌파세력에게 지령으로 하달한 이상과 같은 민주화, 진보 그리고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노무현을 추종한다는 민통당 세력과 그 대표 한명숙이 ‘사람중심’ 혹은 ‘사람 사는 사회’라는 달콤한 말로 각색하여 국민들에게 교활하게 세뇌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 백만의 제 인민들을 굶겨 죽이고 학살하면서도 입으로는 뱀처럼 사악한 ‘사람중심’이라는 말을 뱉어 내는 김일성 악마 족속들과 한명숙이 사용하는 ‘사람 사는 사회’라는 말의 의미가 나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이 다가 온다. 그것은 한명숙의 좌익이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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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 사건은 68년 8월 24일 中央情報部(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통혁당은 金鍾泰(김종태)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金瓆洛(김질락)·申榮福(신영복) 주도의「민족해방애국전선」과 李文奎(이문규)·李在學(이재학) 주도의「조국해방전선」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통혁당이 합법·非합법, 폭력·非폭력의 배합투쟁을 통해 1970년까지 소위 「결정적 시기」를 조성, 민중봉기함으로써 共産政權(공산정권) 수립을 획책해왔다고 발표했다. (이상. 김성욱 기자의 “한명숙, 통혁당, 중앙당과 지하당에 대한 소고”에서 발췌)
1975년 후반기 한명숙은 노동운동 현장에서의 활동을 접고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이우재· 신인령 등과 합류했다. 그들 간사 3인은 그곳 숙소 등에서 아카데미 수강생들에 대한 사회주의 ‘이념교육’방향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을 통해 결속했다. 그 해 어느 날인가는 3인이 강원도 강릉 근처에 사는 은퇴한 좌파 노학자 김00 교수를 찾아가 그로부터 사회주의 이론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상경하기도 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대한 법정에서의 몇 회째 공판이었던가? 나는 법정 검사석 바로 아래 좌석에 앉아 재판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내가 담당했던 피고 한명숙의 차례, 그녀는 진술 도중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포승으로 묶인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제가 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그때 고문당한 저의 좌측 어깨를 좀 봐 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그녀에게 ‘어깨를 어떻게 고문당했다는 말이오?’라고 묻자, 그녀는 나를 향해 ‘저기 검사 밑에 앉아 있는 내 담당 수사관이 담뱃불로 내 왼쪽 어깨를 지져 상처가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라고 하지 않는가?
청천벽력! 이때 재판을 참관한 일부 방청객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와! 저 새끼 죽여라, 저 남산 고문자 죽여!’하고 들고 일어섰다.…그로부터 20분 후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심 박사가 도착했고 심 박사는 법정에서 그녀, 한명숙의 요구대로 어깨를 들추고 현미경 비슷한 것으로 어깨의 상처를 살피고는 상처가 났다는 왼쪽 어깨를 방청석을 향해 보이며,‘여러분, 보이세요? 이 조그마한 흉터가 최근에 담뱃불로 지진 상처 같습니까?’하고는, 다시 재판장을 향해 ‘이 흉터는 이 사람이 3~4세때 종기가 생겨 난 흉터 자국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는 또 다시 ‘저 새끼도 똑 같은 남산 앞잡이다!’ 하면서 재차 소란을 피웠다.
아니, 고문이라니! 그것도 내가 담뱃불로 지졌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법치국가라지만, 그녀를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지하실에서 소주를 사달라고 하면 소주를 사오고, 안주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안주 사다 주면 실컷 먹고, 술 주정까지 하던 여자가 저렇게 악독해지다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나에게 ‘그때 그녀를 고문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차례라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했거나, 또 어떤 심한 언동이나 다른 방법의 고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늘이 나에게 벼락을 내릴 거다’라고 답하겠다. (이상. 양동안 교수의 “한명숙의 위장술…수사관의 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