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읽는 고려말 충신 삼은(三隱)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
역사 드라마 채널 CNTV에서는 최근 조선 건국에서 부터 세종조에 이르기까지의 개국사를 그린 드라마,
'용의 눈물'이 재방송되고 있어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이라 일컫는다
이성계는 고려를 망하게 하고 조선왕조를 창업하자
백성의 추앙을 받던 정신적 지도자인 세 사람을 회유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써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조의 지조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쪽 같은 절개는 지금도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있는 것이다.
이태조의 다섯째 아들 정안군 (후일 조선조 3대 태종)이
술자리에서 포은 정몽주의 심경을 아래와 같은 시(詩)로 떠보았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다.
<정안군(이방원) 하여가>
그러자 정몽주는 이렇게 답하였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몽주 단심가>
정안군의 교묘한 회유를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절개로 응수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쪽같은 정몽주 일편 단심의 표현은 야망을 꿈꾸고 있는 정안군과 그의 추종 세력에게는
전혀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술자리가 파한 후, 포은 정몽주는 죽음을 예감하고 말 안장에 거꾸로 앉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선죽교에 이르렀을때 맞따뜨린 조영규(趙英珪)의 철퇴에 맞아 숨을 거두었으니,
세상에 그런 충신이 어디 있으랴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신흥세력 앞에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고려를 일으켜 세워 줄 뜻있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워
안타까움과 탄식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는 이색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