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주곡遁走曲/김종삼
그 어느 때엔가는 도토리 잎사귀들이
밀리어 가다가는 몇 번인가 뺑그르르 돌았다
사람이 눈언저리를 닮아가는 공간空間과
대지大地 밖으로 새끼줄을 끊어버리고 구름 줄기를 따랐다.
양지바른 쪽,
피어난 씨앗들의 토지土地를 지나
띄엄띄엄
기척이 없는 아지못할 나직한 집이
보이곤 했다.
천상天上의 여러 갈래의 각광脚光을 받는
수도원이 마주보이었다.
가까이 갈수록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
가까이 갈수록 광활廣闊한 바라만이 남는다.
*김종삼1921~1984
우리 시에서 가장 순도 놓은 순수시를 쓴 시인으로 통한다. 그의 시와 산문, 인터뷰 기사가 실린 『김종삼 전집』이 남아 있다.
<시 읽기> 둔주곡遁走曲/김종삼
그곳에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가
김종삼은 자신을 “망가져 가는 저질 플라스틱 임시 인간”(「나)」이라고 했다. 바람 또한 마찬가지로 세계의 임시 존재이다. 바람은 불어서 사람의 눈언저리를 닮아가는 공간을 만든다. 불었다가 끊기고 끊겼다가 불면서 신의 침묵의 소리를 띄엄띄엄 기척 없는 나직한 공간에 풀어놓는다. 수도원이 마주보이는 그곳에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가 있으므로.
―박형준 엮음, 『당신에게 그 어떤 위로보다』, 사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