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조재형 신부
복음; 마태7,15-20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 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사제복’을 주로 입고 다닙니다. 아침에 산보할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식당에 갈 때도 사제복을 입고 다닙니다. 산보할 때는 마주치는 사람들이 ‘Father'라며 인사하곤 합니다. 본인도 가톨릭 신자인 경우에는 더욱 반갑게 자신도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식당에서도 주인이 신자인 경우는 반갑게 인사하고, 덤으로 반찬을 주기도 합니다. 며칠 전입니다. 마트에서 ’떡‘을 사는데 주인이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온 본당신부냐고 물었습니다. 본인은 최근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동안 성당에 못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자매님의 본명을 물으니 ’헬레나‘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침에 저는 떡을 주로 먹는다고 말하니 이것저것 덤으로 싸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사제복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제복이 저를 지켜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제복을 입으니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사제복을 입으니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알아서 안 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닐지라도 나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서울에 있는 동창 신부님이 ‘Facebook'에 본당 가두선교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개신교회는 가두선교를 적극적으로 하지만, 성당은 가두선교를 자주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도 2번 정도 교우들과 가두선교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당에서는 3번에 걸쳐서 가두선교에 대한 교육을 마친 후에, 가두선교를 나섰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준비해간 선물도 나누어주고, 예비자 교리 신청서도 받았다고 합니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신청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쉬는 교우들도 인사하면서 다음부터 성당에 나가겠다고 인사했다고 합니다. 가두선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공동체에 도움이 됩니다. 하나는 선교를 통해서 새 신자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교를 통해서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내가 했던 일의 결실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마귀들을 물리쳤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온 제자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 하였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화려한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국과 맺은 동맹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우리들에게 ‘나무와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고 하십니다.
좋았던 나무도 거름을 주지 않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빴던 나무도 정성을 다하고, 거름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밀은 계속 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늘 가라지가 아닙니다. 밀처럼 자란 사람이 가라지와 같이 변할 수도 있고, 가라지같이 자란 사람이 밀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댈러스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