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시평 15]‘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라는 장시長詩
모처럼 상경(사실은 평균 월 1회이니 모처럼이라 할 것까지는 없다), 종로鐘路를 걸었다. 조선조에는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인다하여 운종가雲從街라 불렸다던가. 종로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는가? 육의전? 피마골? 보신각? 파고다공원? 세운상가? 광장시장? 종묘? 더 나아가 흥인지문인 동대문인가? 나는 종로를 종로이게 한 종루鐘樓 보신각普信閣이 맨먼저 떠오른다. 조선조 사대문四大門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쨌든 ‘원조’ 서울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밤 10시 종루에서 울리는 28번의 종소리(그것이 인경이다)에 잠이 들었고, 새벽 4시에 울리는 33번의 종소리(이것이 파루이다)에 잠이 깨어 하루를 시작했다.
그 보신각 건너편 영풍문고 앞에 처연하게 앉아 있는 어느 장군의 동상을 보았다면, 그 분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全琫準(1855~1895) 장군임을 금세 알아보셨으리라. 비록 실패는 했으나, 구한말 ‘구국救國의 영웅’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하거나 안내판을 읽어본 적이 있으시는가? 이제껏 없었다면 언제라도 그 길을 지나시거든 안내판도 읽고 묵념도 하시길 간절히 빈다. 그것이 후손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국민의 도리가 아닐까.
아무튼, 최근 노동시인으로 유명한 송경동의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에 실린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읽으며, 그 전봉준 장군의 좌상坐像을 여러 번 보았으면서도 그냥 스쳤던 나를 많이 자책했다. 하여, 엊그제 그 동상 앞을 지나며 추념을 하며, 그 시를 다시 읽는다. 제법 긴 시이건만, 이번 기회에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124년만의 세상 나들이인가요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
갑오년 동지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혼자 와서 섭섭하겠군요
종일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발밑으로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종로 네거리가 어리둥절하겠군요
종일 앉아 있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휴대폰이나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야속하겠군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당신의 사후가 궁금하시나요
음...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앉아 있는 감옥자리에서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온 다음날
일본 헌병들에게 교수형을 당했죠 당신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아직도 아무도 모르죠
사람들은 내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우리 가슴에도 피눈물이 흐른다며
녹두장군, 당신을 잊지 못했죠
청일전쟁에 이기고 조선왕조를 밟고
갑오농민군마저 물리친 일본군의
오랜 식민 지배가 있었죠
척양척왜 제세구민 보국안민의 길은
그후로도 참 어둡고 길었죠
식민 지배 35년 이후
다시 신탁통치 3년 한국전쟁 3년
군부독재 30년 휴전협정 70년
휴, 그 긴 암흑과 야만의 시절을
어찌 다 말하겠어요 당신의 소망이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은 아니지만
모든 인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근대국가는 세웠죠
하지만 허울뿐, 조병갑만큼이나 악독한
탐관오리와 부호들은 여전히 엄정되지 않았죠
왜倭와 미美에 부약한 자들 역시 엄정되기는커녕
호의호식 권문세가로 떵떵거리며 살죠
유림과 양반들 역시 징벌되기는커녕
여전히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전문가가 되어
나라 곳간 주변을 살찐 쥐처럼 어슬렁거리며
자자손손 번성하며 살죠 불쌍한 건
여전히 가난한 우리들뿐이죠
경자유전요 꿈같은 소리죠
토지는 여전히 분작되지 않죠
천석꾼 만석꾼도 이젠 명함 내밀기 힘들죠
정체 인구 4871만명 중 70.3퍼센트인
3475만명이 단 한평의 땅도 갖지 못하죠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사유지의 56퍼센트
상위 5퍼센트가 82.7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죠
시중에 금괴는 없어서 못 사고
몇 년 사이 뛴 땅값만 2000조라더군요
여전히 불쌍한 건 가진 것 없는 우리들뿐이죠
노비문서는 불태워졌냐고요 그럼 뭐 하나요
근로계약서라는 신종 문서에 묶인
개돼지 노동자가 2200만명이군요
계약서라도 쓸 수 있으면 다행
2년마다 잘려 새 주인 찾아다녀야 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직이 1100만명이군요
여전히 ‘칠반천인七班賤人’으로
차별받는 이가 수두룩한 계급사회죠
안색이 안 좋군요
124년 만에 돌아오셨는데
좋은 얘길 못 해줘 미안하군요
그러나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하나요
목마른가요 몽둥이에 맞아 꺾인 다리가
아직도 아픈가요 안티프라민이라도 하나 사다드릴까요
여긴 물도 사 먹어야 하는 곳이죠
여전히 돈이 최고인 세상이죠
화난 거냐고요 아니에요
나도 생계에 목매어 누군가를 찾아 나온 길이었죠
길 건너 낙원상가 뒤편 싼 국밥집에서
밥 한덩이 꾹꾹 눌러 담고
낮술 한병 걸쳤더니 늦여름 햇살이 따갑군요
당신 옆에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혼자 중얼거리고 있자니
심심하군요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세요
몇 년만 일찍 오지 그랬나요
잠시 이 거리가 갑오년 황토현처럼
인민들의 함성으로 붐비던 때가 있었죠
현대판 여왕이 되려 했던
한 얼간이를 쫓아내려 나왔죠
저희들만의 궁정에서 새로운 독재권력을 꿈꾸던
고관대작들과 정경유착 독점재벌들을
몰아내려 나왔죠 온갖 특권과 부정과 부패의 사실을
끊어내려 나왔죠 124년 전 당신의 농민군은
일본군을 앞세운 조정군에게 우금치 나루에서
모두 살육당했지만 2016년 촛불시민군의
거대한 들불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죠
군대는 다시 인민을 향한 쿠데타를 준비했지만
거리로 쏟아진 1700만의 빛과 함성에 놀라
작성해둔 계엄포고문만 만지작거렸죠
전국의 농민들이 ‘전봉준투쟁단’ 깃발 아래…
트랙터와 소를 몰고 올라와 장관이었죠
그때 당신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렇게 외롭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아쉽네요
그러니 이젠 모두 지난 일
촛불혁명이 요구한 폐정개혁 100대 과제는
다시 저들의 또다른 패권과
내로남불의 기득권과 특권
나태와 모멸과 협잡과 직무유기 속에 빠져
형체도 없군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촛불정부’…
왕조명만 바뀌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군요
사색당파는 끊이지 않고 계급사회는 여전하군요
빌어먹을, 다시 죽 쒀서 개 줬군요
다른 꿈을 꾼다는 건 여전히
뼛속 바닥까지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군요
나도 이젠 그만 가봐야겠어요
갈 곳이나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에나 절어 있는 건
생산적 복지와 근로의 의무만이 선의 전부인
이 땅에선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이어서요
그래요 힘들더라도 꿈은 잃지 않을게요
124년 만에 당신이
자신의 목을 베어 피를 뿌려달라 했던
이곳 종로 네거리로 다시 돌아오듯
되돌아오는 역사가 다시 있을 거라
믿어볼게요
그리웠었는데 만나서 반가웠어요
당신이라도 만나 주절거리다보니 기운이 나는군요
앞으로도 긴 세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심히 지나쳐 가더라도
가로수 잎들이 또 무심히 피었다 지고
모두가 돌아간 밤길
비나 눈 내리는 어두운 새벽이더라도
너무 외로워하지 말길 바라요
어쩌면 역사는 나이테 한줄도 남기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가는 저 한강 물처럼 유구한 것
다시 만날 때는 이렇게 혼자 돌아와 앉아 있지 말고
갑오년 곰나루에 이름 없이 펄럭이던
그 많던 벗들과 함께 오시길 바라요
당신은 그들과 함께 서 있을 때 빛나요
정말 갈게요 늦기 전에 무슨 일자리라도
찾아봐야죠 언젠간 나도
당신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날이 오겠죠
무명 베옷이면 그만
근사하게 청동옷 같은 걸 입고 있지 않아도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