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산골짜기 내가 그리는 신록향
김 유 정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도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同名)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이초(奇花異草)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쫄쫄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詩的)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 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 사람을 보는 듯하다. 벽촌이라 교통이 불편하므로 현 사회와 거래가 드물다. 편지도 나달에 한 번씩밖에 안 온다. 그것도 배달부가 자전거로 이 산골짝까지 오기가 괴로워서 도중에 마을 사람이나 만나면 편지 좀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도로 가기도 한다. 이렇게 도회와 인연이 멀므로 그 인심도 그리 야박하지가 못하다. 물론 극히 궁한 생활이 아닌 것은 아니나, 그러나 그들은 아직 악착한 생활을 모른다. 그 증거로 아직 나의 기억에 상해사건으로 마을의 소동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들이 모이어 일하는 것을 보아도 폭 우의적이요, 따라서 유쾌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오월쯤 되면 농가에는 한창 바쁠 때이다. 밭일도 급하거니와 논에 모도 내야 한다. 그보다는 논에 거름을 할 갈이 우선 필요하다. 갈을 꺾는 데는 갈잎이 알맞게 퍼드러졌을 대, 그리고 쇠기 전에 부랴사랴 꺾어 내려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일시에 많은 품이 든다. 그들은 여남은씩 한 패가 되어 돌려가며 품앗이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일의 권태를 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의 능률까지 오르게 된다. 갈 때가 되면 산골에서는 노유(老幼)를 막론하고 무슨 명절이나처럼 공연히 기꺼웁다. 왜냐면 갈꾼을 위하여 막걸리며 고등어, 콩나물, 두부에 이밥… 이렇게 별식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농군하면 얼른 앉은자리에서 밥 몇 그릇씩 치는 탐식가로 정평이 났다. 사실 갈을 꺾을 때 그들이 먹는 식품은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먹지 않으면 몸이 감당해 나가지 못할 만치 일도 역 고된 일이다. 거한 산으로 헤매며 갈을 꺾어서 한 짐 잔뜩 지고 오르내리자면 방울땀이 떨어지니 어느 일과 노동이 좀 다르다. 그러니 만치 산골에서는 갈꾼만은 특히 잘 먹이고 잘 대접하는 법이다. 개동(開東)부터 어두울 때까지 그들은 밥을 다섯 끼를 먹는다. 다시 말하면, 조반, 점심 겨누리, 점심, 저녁 겨누리, 저녁 이렇게 여러 번 먹는다. 게다가 참참이 먹이는 막걸리까지 친다면 하루에 무려 여덟 번을 식사를 하는 셈이다. 그것도 감투밥으로 올려 담은 큰 그릇의 밥 한 사발을 그들은 주는 대로 어렵지 않게 다 치고 치고 하는 것이다. “아, 잘 먹었다. 이렇게 먹어야 허리가 안 휘어…” 이것이 그들이 가진 지식이다. 일에 과로하여 허리가 아픈 것을 모르고, 그들은 먹은 밥이 삭아서 창자가 훌쭉하니까 허리가 휘는 줄로만 안다. 그러니까 빈창자에 연신 밥을 먹여서 꼿꼿이 만들어야 따라서 허리는 펴질 걸로 알고 굳이 먹는 것이다. 갈꾼들은 흔히 바깥뜰에 멍석을 펴고 쭉 둘러앉아서 술이고 밥이고 한데 즐긴다. 어쩌다 동리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게 되면 손짓으로 부른다. “여보게, 이리와 한 잔 하세…” “밥이 따스하니 한술 뜨게유…” 이렇게 옆 사람을 불러서 음식을 나누는 것이 그들의 예의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 집의 갈 꺾는다 하면 일부러 찾아와 제 몫을 당당히 보고 가는 이도 있다. 나도 고향에 있을 때 갈꾼에게 여러 번 얻어먹었다. 그 막걸리의 맛도 좋거니와 옹기종기 모이어 한 가족같이 주고받는 그 기분만도 깨끗하다. 산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귀여운 단란이다. 그리고 산골에는 잔디도 좋다. 산비알에 포근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침대가 된다. 그 위에 바둑이와 같이 벌룽 자빠져서 묵상하는 재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이메,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 산속에 누워 생각하자면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느끼게 된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새들도 갖가지다. 어떤 놈은 밤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 다리를 반짝 들고는 기름한 꽁지를 회회 두르며 “삐죽! 삐죽!”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얀 새가 “뺑!”하고 날아와 앉아서는 고개를 까땍까땍 하다가 도로 “뺑!”하고 달아난다. 혹은 나무줄기를 쪼며 돌아다니는 딱따구리도 있고 그러나 떼를 지어 푸른 가지에서 유희를 하며 지저귀는 꾀꼬리도 몹시 귀엽다. 산골에는 초목의 내음새까지도 특수하다. 더욱이 새로 튼 잎이 한창 퍼드러질 임시(臨時)하여 바람에 풍기는 그 향취는 일필로 형용하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개운한 그리고 졸음을 청하는 듯한 그런 나른한 향기다. 일종의 선정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짙은 향기다. 뻐꾸기도 이 내음새에는 민감한 모양이다. 이때부터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한 해 만에 뻐꾸기의 울음을 처음 들을 적만치 반가운 일은 없다. 우울한 그리고 구슬픈 그 울음을 울어 대이면 가뜩이나 한적한 마음이 더욱 늘어지게 보인다. 다른 데서는 논이나 밭을 갈 때 노래가 없다 한다. 그러나 산골에는 소 모는 노래가 따로이 있어 논밭 일에 소를 부릴 적이면 으레 그 노래를 부른다. 소들도 세련이 되어 주인이 부르는 그 노래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노래대로 좌우로 방향을 변하기도 하고 또는 보조의 속도를 늘이고 줄이고 이렇게 순종한다. 먼발치에서 소를 몰며 처량히 부르는 그 노래도 좋다. 이것이 모두 산골이 홀로 가질 수 있는 성스러운 음악이다. 산골의 음악으로 치면, 물소리도 빼지는 못하리라. 쫄쫄 내솟는 샘물 소리도 좋고 또는 촐랑촐랑 흘러내리는 시내도 좋다. 그러나 세차게 꽐꽐 쏠려 내리는 큰 내를 대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논에는 모를 내는 것도 이맘때다. 시골서는 모를 낼 적이면 새로운 희망이 가득하다. 그들은 즐거운 노래를 불러 가며 가을의 수확까지 연상하고 한 포기의 모를 심어 나간다. 농군에게 있어서 모는 그들의 자식과도 같이 귀중한 물건이다. 모를 내고 나면,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한 해의 농사를 다 지은 듯싶다. 아낙네들도 일꾼에게 밥을 해 내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리고 큰 함지에 처담아 이고는 일터에까지 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그 함지 끝에 줄레줄레 따라다니며 묵묵히 쩨 몫을 요구한다. 그리고 갈 때 전후하여 송화가 한창이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적이면 시냇면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엉긴다. 아낙네들은 기회를 타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산으로 송화를 따러 간다. 혹은 나무 위에서 혹은 나무 아래에서 서로 맞붙어 일을 하며, 저희도 모를 소리를 몇 마디 지껄이다가는 포복절도하듯이 깔깔대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월경 산골의 생활이다. 산 한주턱에 번듯이 누워 마을의 이런 생활을 내려다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지(理智)없는 무식한 생활이다. 마는 좀 더 유심히 관찰한다면 이지 없는 생활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을 만한 그런 순결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 한 사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선천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장의 화를 아직 입지 않은 곳이매, 산전벽해의 변은 없으리라. 내게 건재(健在)하기 바란다.
출처 : 김유정 작품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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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야말로 산골의 순수하고 애틋함이 묻어나는
김유정 문학의 진수라 여겨집니다~~^-^
이 훌륭한 작품을 다시 접할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회장님의 넉넉한 마음에 찬사를 보냅니다 ~~**
고문님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유정 작가님 글을 읽기만 했지요. 한 자 한자 적어본 건 처음입니다.
읽고 쓰면서 제 고향의 갈 꺾는 풍경과 모내기 등 품앗이 하는 산골 풍경이 선하게 그려지는 작품 속으로 폭 빠져들었네요.
정선 문학 탐방가는 날 기쁘게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