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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은 이마에서 흘러내린 구슬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헉헉 거렸다. 대식이가 털이 수북한 인형 옷을 탈의하고 나자 흰색의 반팔 티가 앞, 뒤로 땀에 젖어있었다.
“도대체 너 뭐야!”
내가 대식의 가슴팍 한쪽을 밀어제쳤다. 그러자 대식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을 했다.
“동탁 형이 인형 옷 입고 아이들 사탕 주는 게 힘들다고 난리법석이잖아.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한 것뿐이야.”
난 대식을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뚫어져라 봤다. 한 대식이 돈이 되는 일이 아닐 때도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계속해서 의식하고 보자 대식의 양 볼이 선홍빛으로 물들어버렸다.
대식이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몸을 움츠렸다.
“한대씩이 돈 안 되는 일에도 열정적일 때가 다 있네! 아무튼 오늘은 고, 고, 고마웠어.”
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식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대식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솥뚜껑 같이 두툼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야말로 아이들한테 공짜로 인형을 나눠줄 기특한 생각을 다하고 다시 봤다.”
대식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중이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아차! 싶어서 뒷걸음질 쳤다. 난 대식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 허락 없이 친근한 표현하지 마! 난 너랑 절대로 친해질 생각 없으니까!”
대식이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해 맑게 웃으며 내 볼을 잡아당겼다.
“우린 같은 반이잖아!”
“아얏!!”
“게다가 우린 만수무강 사우나 패밀리고!”
“?!”
난 대식이 내 볼을 잡아당기며 해 맑게 웃는 표정을 보고, 경악을 금지 못했다. 남의 볼을 억지로 잡아당기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난 비명을 지르며 대식의 정강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내가 정강이를 걷어차니까 대식이 그 자리에서 아프다고 난리굿을 쳤다. 난 그 모습을 보며 고소해했다.
“저리가! 이 잉여인간아!”
동탁은 어느덧 목탁을 치면서 고개를 숙이고 나무관세음보살을 랩을 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동탁이 정강이를 부여잡고, 선무당 뛰듯 날뛰는 대식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대식의 옆에서 동탁이 염불을 외우고 있으려니까 대식의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대식이 손바닥으로 동탁의 어깨를 밀었다.
“아, 형은 시끄럽게 하지 말고 저리로 좀 가!”
“역시 속세에 쩌들어 네 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고 있구나! 고작 이런 일로 화를 내다니! 말세로다. 말세야!”
동탁의 말에 나와 대식은 동시에 헛웃음을 지었다. 잉여인간들의 속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나는 내 앞에서 시끄럽게 말다툼을 하는 대식과 동탁을 빤히 봤다. 어느 틈엔가 대식은 목탁을 치는 동탁의 목 언저리를 팔로 휘감아 조르고 있었다. 이에 동탁이 숨이 막혀서 켁켁 거렸다.
이때, 자동 회전문을 통해서 도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도야의 양 손에 든 생화 꽃바구니에는 막대사탕이 빽빽하게 꽂혀있었다. 도야는 사탕이 꽂힌 꽃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흔들거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완성했다!”
도야가 행복감에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서로 달려들며 아옹다옹 싸우는 대식과 동탁을 불러 세웠다.
“한대식! 마동탁!”
“??”
대식과 동탁은 도야의 부름에 동시에 뒤돌아봤다. 그러자 도야가 꽃바구니를 불쑥 내밀었다. 대식과 동탁은 꽃바구니를 건네는 도야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걸 왜 우리한테 줘?”
대식과 동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야에게 물었다.
“화이트데이 기념!”
도야가 씩씩하게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화이트데이 기념이라고?”
도야의 대답에 대식이 황당해하며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러자 도야가 대식과 도야의 손아귀에 꽃바구니의 손잡이를 쥐어줬다.
“오늘 하루 종일 이것들 만드느라 고생했네.”
“아, 그런데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사탕 주는 날 아닌가?”
대식이 말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앗! 그런 거였어?”
“어.”
난 대식과 동탁의 손아귀에 쥐어진 꽃바구니를 강제로 빼앗아왔다.
‘나도야! 이 멍청이! 역시 잉여인간들은 이래서 안 되는 거야.’
화이트데이라고 꽃바구니를 준건데 그게 나한테만 주는 게 아니라 한 대식과 마 동탁한테도 주는 거였다는 게 괘씸했다. 난 강제로 뺏은 꽃바구니를 들고 씩씩거렸다.
“나도야는 화이트데이가 뭔지도 몰랐단 말이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런데 야박하니! 너 어쩌면 야박하게 준걸 빼앗아가냐?”
동탁이 내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꽃바구니를 되찾아가려 했다. 난 동탁을 피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너흰 여자가 아니잖아! 꽃바구니에도 취미가 없을 거고! 고로 내가 접수한다.”
“야박하니! 너 결국은 사탕 먹고 싶은거잖아!”
“…….”
이깟 사탕이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 도야가 정성스럽게 꽃바구니를 만들고 했떤 것이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단게 괜히 시샘이 났다. 더군다나 오늘은 화이트데이였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
그런데 내가 이 잉여인간들하고 동급이었다니!
심지어 나도야는 화이트데이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었다. 난 양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냅다 뛰어갔다.
내 뒤에는 꽃바구니를 뺐긴 동탁과 대식이 뒤쫓아 달려왔다.
땡!
곧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막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 앞에 사우나를 끝마친 이수가 있었다. 이수는 양손에 꽃바구니를 든 날 보고 풋웃음을 졌다. 난 날 보고 웃는 이수를 의아하게 봤다.
“왜 웃는 거야?”
내가 이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수가 비웃으며 말했다.
“사우나에서는 인기있나보네?”
“??”
이수는 거들먹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풋웃음을 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이지, 꼴값들을 한다.”
“너 뭐, 뭐, 뭐야!”
난 눈살을 찌푸리며 이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와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양쪽 문이 닫혔다. 난 양 손에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엘리베이터에 내려놓고, 이수를 뒤 따라 나왔다. 만수무강 사우나의 정문을 나가자 이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난 이수의 뒤통수를 향해 윽박을 질렀다.
“너 사람을 우습게보지 마! 내가 그렇게 우스워!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는 거야 뭐야!”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길을 가던 도중에 이수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을 홱 뒤돌아서더니 날쌘 동작으로 날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내 바로 코앞에 멈췄다. 이수는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눈, 코, 입 다 마음에 안 들어.”
“!!”
“여자가 예쁘지도 않고, 귀여운 구석도, 매력조차 전혀 없어.”
“…….”
난 이수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 외모가 뭐 어때서! 이정도면 나쁜 얼굴은 아닌데 왜!”
“풉!”
이수는 간드러지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내 턱을 한 쪽 손으로 억세게 붙잡았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그런데 거슬려. 거슬리니까 자꾸만 보게 돼. 왜 일까?”
“!!”
이수는 내 턱을 붙잡았던 손을 놨다. 그러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더니 허공에 뿌옇게 담배연기를 내 뱉었다.
“빵셔틀. 너 정말 이상한 여자야.”
“내 눈엔 네가 더 이상하다.”
제6장. 정줄놓
정줄놓
'정신줄을 놓았다'라는 뜻의 문장이나, '정신줄을 놓은 사람'이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내 교실 책상 위엔 성공과 CEO관련 책자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난 책장을 펼치고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다가 앞에 앉은 친구 등짝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뭐고 간에 틈만 나면 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위해서 관련 책자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책장 사이사이엔 플래그를 붙여놓고 암기해둘 것들을 표시해뒀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 구상을 해야 한다는 게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수무강 사우나에서 하루빨리 잉여인간들을 내쫓기 위해서는 좋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야했다. 난 두 눈을 깜박이다가 입가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이틀 째 다섯 시간 못 되게 잠을 잔 것 같다. 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또다시 눈을 깜박였다. 그때 내 앞으로 손이 훅하고 지나갔다.
난 턱을 괸 채 노를 젓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두꺼운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누군가 내 정신이 확 들게 내 머리통을 후렸다.
퍽.
난 내 머리를 매만지며 볼멘 표정으로 앞을 봤다. 그 앞에는 이수가 서 있었다.
“3년 안에 사업 성공하기?”
이수는 내 책상 앞에 가만히 서서 책 겉표지를 훑었다. 그러더니 큭큭. 거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또 다른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나는 성공한 CEO다. 이게 다 뭐야?”
난 이수로부터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모두 빼앗아왔다. 지난번부터 계속해서 이수는 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화이트 데이 날은 내가 자꾸 거슬린다고 말했다. 그 의도가 뭔지 모르겠으나 나 또한 나를 빤히 보거나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수가 거슬리고 있었다. 잉여인간들에 이어서 불편한 존재가 한 명 더 늘었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책장을 펼쳤다. 그러자 이수가 뚫어져라 책장을 손으로 넘기는 날 살피고 있었다. 난 뒤통수가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이수를 봤다.
“자꾸 왜 날 쳐다보는 거야?”
“너 지금 상당히 멍청해보이는 표정 짓고 있었어. 큭큭.”
“뭐?”
난 학교 가방 안에서 사면거울을 꺼내 봤다. 그랬더니 양 눈가 밑이 시꺼멓게 다크써클이 번져있었다. 게다가 흰자위는 시뻘겋게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이틀을 밤샘을 했더니 얼굴빛이 다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맙소사!”
난 큭큭. 거리며 웃는 이수를 뒤로 하고 화장실로 냅다 달려갔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틀어서 찬물에 몇 번이나 얼굴을 세안했다. 그래도 정신이 안 들어서 뺨을 힘껏 내 손으로 후렸다.
찰싹 찰싹.
마찰음과 함께 두 뺨이 얼얼했다.
“하필이면 그 재수 없는 놈 앞에서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니!”
난 혼잣말을 내 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수 앞에서는 책잡히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다. 이마 살을 찌푸리며 교실로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휑하게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수업 시간이 체육이었다.
교실 책상 위엔 정갈하게 접은 교복들이 놓여있었다. 창문 밖을 보니 운동장에서 반 아이들이 피구를 하며 놀고 있던 중이었다.
“좀 말이라도 해주고 나가지. 벌써 이십 분이나 수업시간에 늦어버렸다.”
난 주섬주섬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교복 스커트 밑으로 체육복 바지를 입고, 교복 블라우스를 벗고 체육복 윗옷으로 바꿔 입었다. 그리고 교실 문 밖으로 나가려다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아차! 교복 스커트!”
난 교복 스커트를 벗어 책상 위에 대충 걸쳐놓았다. 그리고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신고 운동장 정 중앙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내달렸다. 그러던 도중에 누군가 피구 공을 내 머리로 향해 힘껏 내던졌다.
“아얏!”
난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랬더니 피구 공을 주우러 온 것은 다름 아닌 이수였다. 난 이수를 마뜩찮은 표정으로 빤히 봤다.
“또 너야!”
난 소리를 빽. 하고 내질렀다. 그러자 이수가 장난스럽게 큭큭. 하고 웃었다.
“이런, 손이 미끄러졌다.”
“일부러 그런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난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수에게 소리를 내 질렀다. 그러자 피구를 하던 다른 애들이 얼른 공을 던지라고 성화였다. 난 마지못해 공을 주워 수비 쪽에 있는 아무나에게 공을 던졌다. 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운동장 스탠드 가운데 줄에 대식이 누워서 자고 있었다. 대자로 누워서 자는 대식을 보며 한심하기 그지없다 생각했다. 대식은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딱히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는 남자 아이들도 없었다.
특히나 이수하고 싸움이 일어난 이후로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선 보이지 않는 두 부류로 나눠지기도 했다. 맹목적으로 이수의 편을 드는 반 아이들과 이수의 편 인척 하면서도 뒤에서는 대식을 응원하는 반 아이들. 후자는 한 번씩 이수의 빵셔틀이 되었던 아이들이었다.
새롭게 피구 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흰색 선 안으로 들어갔다.
“대식인 안 깨워도 되는 거야?”
내가 묻자 반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식 이는 원래 체육에 잘 참여 안하잖아. 실기 평가는 그래도 늘 좋은 점수는 받으니까 상관없지 않나?”
“맞아. 어차피 체육 이런 것도 실기점수 잘 받으려고 하는 건데 말이야.”
“!!”
난 반 아이들의 대화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체육 시간이 안 그래도 줄었는데, 그나마 있는 것조차 그냥 실기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었다. 내년에는 다들 문과 또는 이과로 정해야하는데, 좋은 추억들을 함께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대식이도 불러와야겠어.”
운동장 스탠드 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운동장 스탠드에 누워서 자는 대식의 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대식은 가까이 다가가니 세상모르게 단잠에 푹 빠져있었다. 정작 이틀 동안 두, 세 시간밖에 못 잔건 나인데도 매일을 거의 숙면하다시피 하는 대식이 피곤해하며 자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난 발등으로 툭툭. 대식의 몸통을 쳤다. 그러자 대식이 뒤척거렸다. 대식은 자기가 잠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와서 건드리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다. 누군가 자신을 깨우면 벌떡 일어나서 타이슨의 강펀치를 때리고 나서 다시 잠드는 애였다.
“한 대식! 한 대식!”
난 대식의 이름을 부르며 발등으로 툭툭. 대식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그러자 대식이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눈은 반쯤 덜 깬 상태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
내가 소리를 내지르자 대식이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갑자기 대식이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날 자신의 품 안에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난 귀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킨 십이었다. 운동장 스탠드에 피구 공이 맞아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확연하게 들렸다. 조금만 대식이 늦게 잡아당겼더라도 또 한번 피구 공에 세게 맞을 뻔 한 순간이었다. 튕겨져 나온 피구 공을 수비수 중의 하나가 냅다 뛰어와서 도로 가져갔다.
“너 공 맞을 뻔 했다.”
“아, 아, 알았어.”
난 시뻘개진 얼굴로 대식의 품에 안긴 채 였다. 멀리서 피구 경기를 하던 반 친구들이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가느스름하게 들렸다. 난 부끄러워하며 대식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대식이 강렬한 눈빛으로 날 더 세게 껴안았다.
“따뜻하다.”
“!!”
대식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난 그런 손바닥으로 밀어제치며 대식의 품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대식과의 스킨 십 때문에 얼굴은 화끈달아올랐다. 잉여인간의 앞에서는 절대로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정신이 이탈하는 순간 이런 사고가 벌어지고 만다. 난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대식과 먼발치로 떨어졌다.
“네 마음대로 함부로 스킨 십 좀 하지 말라고!”
“히힛.”
대식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난 이렇게 생각없어 보이는 대식의 행동이 정말이지 싫었다. 상대방이 곤란해하는데도 마냥 웃는 대식을 보면 화가 들 끓었다. 괜히 잉여인간도 체육 수업에 참여하게 해야겠다고 간섭한 것이 내 실수였다.
“같이 피구하자고 깨우러 온거였으니까 피구. 할, 할 거면 하고 말거면 말고!”
난 퉁명스럽게 대식에게 말했다. 그리고 몸을 뒤돌아섰다. 그러자 대식이 두 눈이 덜 깬 상태로 내 가까이로 다가와 내 허리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따뜻한게 푹신 푹신해. 솜이불 같아.”
“!!”
난 발끝부터 머리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전기 충격을 받은 것보다도 더 할지도 모르겠다. 반 아이들은 다행히 피구 경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운동장 스탠드엔 관심 조차 없었다. 단 한 사람의 시선만 빼고 말이다. 바로 그건 피구 경기 하던 것을 관두고 시선을 아예 운동장 스탠드에 고정 시켰던 이수였다.
이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우리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봤다. 그러더니 다른 애가 품에 안고 있던 피구 공을 낚아챘다. 이수는 강렬한 눈빛으로 대식을 쏘아봤다. 이와 동시에 대식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가 기분 나쁘게 날 쳐다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이수가 널 노려보고 있다.”
난 손에 깍지를 끼고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대식을 억지로 떼어내려고 실랑이를 벌였다. 난 대식의 손을 풀려고 애썼고, 대식은 그럴수록 장난의 묘미를 느낀 건지 안 떨어지려고 힘을 줬다. 난 슬슬 짜증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바람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함께 피구 공이 정확하게 대식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퍽! 소리와 함께 대식의 고개가 약간 뒤쪽으로 넘어갔었다. 대식은 내 허리를 감쌌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방금 막 자신의 머리를 친 피구 공을 주워왔다.
“해보자는 거냐?”
대식이 멀리 서 있는 이수에게 씩씩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이수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미안! 손이 또 미끄러졌다.”
“저게!”
대식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피구 공을 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피구 공을 손아귀에 꽉 쥐고 힘껏 팔을 뒤로 젖혔다. 동시에 말릴 틈도 없이 멀리 서 있는 이수의 가슴팍을 향해 피구 공을 내 던졌다. 이수는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온 피구 공을 거뜬하게 붙잡았다. 이수는 피구 공을 두 손으로 붙잡고 피식 웃었다.
그 이후로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대식과 이수는 캐치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피구 공을 던졌다 잡았다를 수 없이 반복했다. 나중에 대식의 손을 봤을 때 엄지손톱이 빠질 정도로 피멍이 들어있었다. 피구 공으로 두 사람이 힘자랑을 했던 터라 다른 반 아이들은 체육 시간이 순식간에 지루해졌다.
“야, 이만 집에 가자.”
“어. 집에 가는 게 낫겠다.”
반 아이들이 수군거리면서 차츰 운동장을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대식과 이수는 서로 피구 공을 던지면서 씩씩거렸다. 난 그런 둘이 이해가 안 가서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둘 다 힘자랑 좀 이제 그만하지!”
“쳇!”
대식은 피구 공을 운동장 한 가운데로 냅다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맞붙은 두 사람은 서로의 옷깃을 손아귀로 꽉 부여잡았다.
“빵셔틀한테 맘대로 손대지마라.”
“너나 야박하니한테 신경꺼!”
“둘다 그만!”
난 대식과 이수를 찰싹 붙은 몸을 떼어내려고 애썼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이 고생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힘겨루기 중인 두 사람을 억지로 떼어냈다.
“야!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둘이 날 두고 지금 뭐하자는 거야?”
한 사람은 날 솜이불 취급하며 마음대로 스킨십을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거슬린다면서 빵셔틀이라고 괴롭힌다. 둘 다 하극상이었다.
“난 물건도 아니고 너희 감정 대립에 낄 이유 전혀 없는 사람이거든! 한번 만 더 날 사이에 두고 이렇게 힘겨루기 하면 둘 다 콱!”
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대식과 이수가 동시에 고갤 돌렸다. 그리고 불끈 쥔 내 두 주먹을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며 쳐다봤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 사람은 전 복싱선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 학교의 일진 짱이었다. 힘으로는 내가 안 된다.
“둘 다 콱 뭐 어쩌겠다고?”
이수가 내게 되물었다.
“어, 어! 선생님한테 이르겠습니다. 바른 생활 지도 부탁드려야죠.”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 한 뒤 꽉 쥐었던 주먹을 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오늘따라 상당부분 피곤하다. 내 어깨 위로 대식의 한쪽 팔이 슬쩍 올라왔다. 난 어깨 힘을 이용해 대식의 팔을 튕겼다.
“내 허락 없이 못된 스킨 십하지 말라고 그랬다.”
내 말에 또 대식이 장난스레 웃었다. 대식은 또 다시 자연스럽게 한쪽 팔을 내 어깨 위로 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이수의 한쪽 팔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내 양 어깨가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둘 다 이제 그만좀 해!”
“히힛.”
내가 소리를 빽. 하고 지르자 이수는 움찔거렸고, 대식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잉여인간의 뇌 속을 탐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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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 이어서 못다한 OME 에피소드와 6장의 에피소드를 섞어놓았습니다.
제목인 캘리그라피는 업 스타일님이 제공한 소스를 조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이제 인물들 간의 감정 라인이 서로 오가는 시점으로 직면을 한거죠. 큭큭. 야희화님,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