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 40년간 키 6cm 클때 허리둘레 13cm 늘어
국가표준원 ‘한국인 인체지수조사’
男 평균 키 172.5cm… 女는 159.6cm
男 47%가 비만… 女 허리둘레 줄어
다리길이 비율 늘어 서구형 ‘롱다리’
동아DB
직장인 김모 씨(38)는 지난해 산 바지의 단추가 잠기지 않아 고민이다. 3년 전 첫아이가 태어나면서 꾸준히 해왔던 운동을 쉬고 있고 바쁜 일정에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으면서 몸무게가 1년 사이 8kg 불어났다.
한국 남성의 평균 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비만의 척도인 허리둘레는 키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 허리둘레는 1979년 이후 약 40년 동안 10cm 안팎으로 늘어났고, 그 결과 남성의 절반가량은 비만으로 조사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3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8차 한국인 인체지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의류, 생활용품 등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민 인체지수와 형상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1979년 이후 5년마다 8차례 진행됐다.
이번 조사 결과 남성의 평균 키는 172.5cm, 여성은 159.6cm로 조사됐다. 2000년대 이후 평균 키는 꾸준히 늘고 있다. 1979년 1차 조사 때와 비교하면 남성은 6.4cm, 여성은 5.3cm 커졌다.
문제는 비만 남성의 비율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남성의 평균 체질량지수는 24.9였다. 1979년 22.1에서 40여 년간 꾸준히 늘었고 이번 조사 대상 남성의 47.0%가 체질량지수 25 이상의 비만이었다. 반면 여성의 체질량지수는 22.6으로 1979년 22.0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복부비만 지표가 되는 허리둘레 역시 남성은 늘었고 여성은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줄었다. 1979년 이후 20∼40대 남자의 허리둘레는 7.3∼12.9cm 늘었다.
상·하체 비율을 나타내는 다리 길이 비율은 모든 연령층에서 늘었다. 남성의 다리 길이 비율은 2004년 43.7%에서 45.3%로, 여성은 44.4%에서 45.8%로 각각 늘었다. 키에서 하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서구형 체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 두께 대비 머리 너비 비율인 ‘머리너비 지수’는 연령, 성별을 가리지 않고 0.84∼0.89였다. 머리 앞뒤가 짧고 좌우가 길다는 의미다. 키가 커지고 체형이 서구형으로 변화하는 데도 머리 형태는 동양인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종=김형민 기자
한국인의 신체 지수
지난해 20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키는 남성 172.5cm, 여성 159.6cm로 조사됐다고 국가기술표준원이 30일 밝혔다. 40년 전보다 남성은 6.4cm, 여성은 5.3cm 커졌다. 특히 키에서 하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른바 ‘서구형 롱다리’로 신체 구조가 바뀌는 추세다. 20∼40대 남성은 키가 커지는 것보다 살이 찌는 속도가 더 빨랐다. 복부비만의 지표가 되는 허리둘레가 40년 전보다 연령대별로 적게는 10.8cm, 많게는 13.9cm 늘었다. 여성은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허리둘레가 줄어들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에서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고 적었다. 동시대 한일 양국의 유골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한국 남성의 키가 평균 161cm로 일본 남성보다 6cm가량 컸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한일 양쪽의 키가 비슷해졌고, 한국의 산업화 이후 한국인의 키가 일본인을 다시 앞질렀다. 산업화로 인한 식습관 변화가 신체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은 ‘요리유신’ ‘음식혁명’으로도 불린다. 당시 일왕은 소와 닭 등을 죽이지도 먹지도 말라는 육식금지령을 1200년 만에 해제했다. 육식으로 체형을 서구처럼 크게 바꾸는 것이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서구화의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육식 장려 등으로 이후 일본인의 신체 구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됐다.
▷한국 남성의 키는 일본 남성보다 1∼2cm 정도 커 우열을 논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이에 비해 북한 남성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북한 남성의 평균 키는 158cm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남성보다 무려 15cm 정도가 작다. 특히 1990년대 대기근을 겪은 북한은 영양실조 등으로 젊은층의 신체 성장이 더뎌졌다. 군 입대 신장 하한선이 그 이전 150cm였다가 현재는 137cm까지 내렸다고 한다.
▷세계 최장신 국가는 남성 기준으로 키가 182cm가 넘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 가면 옷 치수와 생활용품의 크기가 한국과 너무 달라서 불편을 겪은 사례가 많다. 국가기술표준원이 40년 동안 신체 지수를 꾸준히 측정해 온 이유는 한국인의 몸에 맞는 제품 설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데이터를 반영해 45년째 그대로이던 지하철의 좌석 크기를 5년 전 키운 적도 있다. 그런데 다른 인종인 네덜란드와 한국의 신체 지수 격차보다 동족인 남북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산업화 이전의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것과 같은 북한의 허약한 신체 지수를 지켜보는 것은 씁쓸하다.
정원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