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페미나상을 수상한 다이 시지에의 첫 번째 장편소설 . 중국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영화감독과 소설가로 맹활약 중인 다이 시지에는 두 번째 소설 『D콤플렉스 Le complexe de Di』로 단숨에 페미나상을 거머쥐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신예 작가로 급부상하였다. 중국 정체성의 문제를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받으며, 그는 약관의 나이에 프랑스에 입문, 불과 몇십 년 만에 영화와 소설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천재적인 재능의 예술가’란 찬사를 받고 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2000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프랑스 출판계는 모두 다이 시지에를 주목했고, 미국의 유명 출판사들은 소설의 판권을 사기 위해 앞 다투어 경쟁을 벌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또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2000년 국내에서도 『소설 속으로 사라진 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마니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문화대혁명. 다이 시지에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에서 암울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개인의 문제로 끌어들여 한 편의 영화처럼, 그러나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발자크와 플로베르 등 서양소설을 둘러싼 두 소년과 바느질 소녀와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고 있다. 직접 문화대혁명을 겪은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이 소설에서 다이 시지에는 섬세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준 서양의 스승들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등에게 찬사를 표하고 있다. 또한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세대의 ‘책에 대한 동경과 찬사’를 담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하방정책下枋政策의 일환으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하늘긴꼬리닭’ 산이 있는 농촌으로 재교육을 받으러 간 두 소년과 그곳에서 만난 바느질하는 소녀와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지식인’들은 모두 농촌으로 보내져 재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시절, 고등학교에 가보지도 못한 두 소년은 부모가 부르주아계급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첩첩산골로 보내진다. 이들의 재교육이란 것은 소위 똥지게를 지고 나르거나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일 등이다. 문명의 냄새를 풍기는 유일한 물건은 주인공이 가져온 바이올린뿐이고, 두 소년은 무서운 마을 촌장을 속이면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곡을 ‘마오쩌둥 주석을 찬양’하는 곡이라며 연주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발자크를 포함한 중국어로 번역된 숨겨진 서양문학과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바느질하는 소녀와의 첫사랑이다. 마오쩌둥의 ‘붉은 어록’ 이외에는 거의 모든 책이 금서로 통했던 때 그들은 발자크와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스탕달,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등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두 소년이 읽어준 발자크 소설에 매료된 바느질하는 소녀는 소설 속 여주인공과 도시 생활을 한없이 동경하며, 급기야 긴 머리를 자르고 새하얀 테니스화를 신고 도시로 떠나버린다.
인터뷰 중에서
“물론 미래가 없는 몹시 서글프고, 힘든 시기였어요. 하지만 중국 민족은 좀 다른 사람들이에요. 마오쩌뚱이 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쪽의 어느 나라처럼 살풍경하지 않았어요. 사회 체제는 늘 가혹했는데도 사람들은 착한 아이로 남아 있을 줄 알았지요. 그들은 삶의 기쁨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고, 공산주의도 그것만은 결코 뿌리뽑지 못했지요.”
오늘날의 중국에 대한 질문에 그는 씁쓸함이 밴 어투로 대답한다.
“생활수준은 많이 향상되었어요. 그 산골 마을에도 가보았는데, 이제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더군요.”
그리고는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들에게는 이제 영화를 이야기로 들려주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것이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중국이 자유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교양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전 작품들이 도처에 있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느라고 책을 거의 읽지 않아요. 나는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세대에 속해 있지요.”
그는 마오가 사망하고, 서양문물이 중국에 마구 밀려오기 전에는 중국인들에게 독서 열풍이 일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뒤라스, 보르헤스를 발견할 수 있었던 80년대에는 굉장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문학을 사랑하는 마지막 세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