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죄의식으로 인한 정신건강 파탄이 원인
개인이익 무관, 손해 보면서까지 강대국 숭배
윤정권은 청산해야 할 광신적 사대주의의 표본
사대주의와 동전 앞뒷면인 민족허무주의
사대주의란 강대국을 떠받들고 숭배하는 굴종 사상이다. 사대주의에 물들면 강대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하면 한국도 신자유주의를 하고 미국이 가치 외교를 하면 한국도 가치 외교를 하는 식이다.
사대주의는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불신하고 깔보는 민족허무주의 사상과 통한다. 사대주의는 자기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배반하는 매국배족 행위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민족허무주의에 물들면 스스로를 불신하면서 강대국만 쳐다보는 무력하고 의존적인 인간으로 전락한다. 임진왜란 시기에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던 조선의 지배층은 자기 민족의 힘을 믿지 못하여 자력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면서 명나라만 쳐다봤다.
사대주의는 일반 백성들의 것이 아니라 반민중적 정치를 하는 지배층의 전유물이다. 백성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반민중적 지배층은 백성들로부터는 정권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 백성을 믿기는커녕 두려워하니 강대국으로부터 정권 안보를 보장받으려고 한다. 쉽게 말해 백성들이 봉기나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강대국에게 자기들을 지켜달라고 매달린다는 것이다. 원래 사대주의는 반민중적 지배층에게 고유한 것이지만 그들의 지배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사대주의에 물들 수 있다. 일제 강점기를 제외하더라도 해방 이후부터 7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자들이 한국을 지배해 왔기에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의존성이 사대주의 부른다
특정한 사회집단만이 아니라 개인들도 사대에 물들 수 있는데, 그것을 의존성이라고 한다. 개인심리 차원에서의 의존성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자신감을 발달시키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의 훈육으로 인해 아이가 자기를 믿지 못하게 되어 부모나 타인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것이 체질화하는 것이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의존적인 사람은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매사를 의존 대상에게 물어보고 그의 지시를 받아 행동해야만 안심하며, 어려운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의존 대상에게 조르르 달려가 매달린다.
개인이 사대주의를 하면 단지 그 개인의 정신과 삶만 망가지지만 국가의 지배층이 사대주의를 하면 국민들의 정신이 파괴되고 나라가 망하는 등의 심각한 결과가 초래된다. 사대주의적 지배층의 유일한 관심사는 정권 안보와 부귀영화이기에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거리낌 없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거나 배신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극우사대주의는 일제와 미군이 만든 기형적 괴물
한국의 지배층은 극우 파시스트 집단인 동시에 지독한 사대주의 집단이다. 전통적으로 서구 사회에서 극우세력은 사대주의가 아닌 민족주의와 한몸이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층인 독점자본가계급은 당연히 자기 나라 독점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독점자본가계급은 영국의 독점자본을 대변하고 독일의 독점자본가계급은 독일의 자본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독점자본가계급은 이윤 추구가 어려워지면 사회를 파쇼화하면서 이념적으로 극우화한다. 극우화한 독점자본가계급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다른 국가나 민족을 배척하고 침략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의 독일과 일본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각국의 독점자본가계급은 자국의 독점자본을 대변하기 때문에 사대주의가 아닌 민족주의– 이런 독점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민족주의를 올바른 민족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부르조아 민족주의라고 부른다- 성향이 강하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왜 서구 나라들과는 달리 민족주의가 아닌 사대주의에 물들었을까? 한국은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가장 힘 있고 돈 있는 사회집단이 된 독점자본가계급이 국가를 장악하는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발전경로를 밟아오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로 인해 아예 독점자본가계급이 형성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독점자본가계급이 아닌 미군이 국가를 장악했다. 한국을 점령한 미군은 한국 땅에 한국의 독점자본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아닌 미국의 이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독점자본을 대변하는 하수인으로 써먹기 위해서 매국적 정치세력을 키웠다.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한국에서의 정치엘리트의 탄생이 민족주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반면 사대주의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위 적폐세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한국의 지배층은 극우 집단인 동시에 사대주의 집단이다. 원래는 대척점에 있어야 마땅한 극우와 사대주의를 한몸에 품고 있는 한국의 극우사대주의 세력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미완의 해방이 만들어낸 기형적 괴물이다.
영화 <박하사탕> 주인공 자살케 만든 죄의식과 자기혐오
원칙적으로 사대주의자는 개인적 이익 때문에 사대주의를 한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사대주의를 한다는 점에서 사대주의자는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처음에 등장한 사대주의자들은 거의 다 합리적 사대주의자들이었다. 즉 애초에 그들은 정권 안보나 부귀영화를 위해 일본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을 떠받들고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대주의는 단순히 강대국을 떠받들고 숭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깔보고 멸시하는 자기혐오 심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다. 사대주의자는 또한 매국배족의 삶을 살기 때문에 죄의식을 피할 방법이 없으며 이로 인해 자기혐오 심리는 극단적일 정도로 심각해진다.
자기혐오는 사람들을 자기처벌, 자기파괴의 길로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원래 착하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80년의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다가 오발 사고로 한 여고생을 죽이게 된다. 영호는 끔찍한 죄를 지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술집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영호의 모습은 그의 자기혐오 심리를 잘 보여준다. 자기혐오는 영호를 자기처벌, 자기파괴의 길로 질주하게 만들었다. 영호는 점점 더 나쁜 짓을 하면서 망가져갔고 결국에는 자살한다. 죄의식을 제때 청산하지 못하면 사람은 정신적 파탄과 자기파괴를 면할 수 없다.
반성과 처벌 없이 마지막 자기파괴 단계 이른 광신적 사대주의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반성과 처벌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며, 죄값만큼의 처벌을 받아야만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검거되어 옥살이를 한 살인범들과는 달리 검거되지 않은 살인범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죄의식에 시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의 사대주의 세력은 반성이나 처벌 없이 긴 시간 동안 한국을 지배해왔다. 무려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죄의식을 청산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정신은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즉 사대주의 세력의 정신과 행동은 죄의식에 시달리던 초기 단계, 자기혐오의 중기 단계를 넘어서서 자기파괴로 치닫는 마지막 단계에까지 접어든 것이다.(후쿠시마 오염수나 라인 강탈 사건을 대하는 윤석열 정권의 모습은 이 단계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한국의 사대주의 세력이 합리적 사대주의에서 광신적 사대주의로 변질된 것에는 죄의식으로 인한 정신건강의 파탄이 큰 영향을 미쳤다. 개인적 이익과는 상관없이, 심지어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맹목적으로 강대국을 떠받들고 숭배하는 사대주의를 합리성을 결여했다는 의미에서 광신적 사대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은 광신적 사대주의의 표본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광신적 사대주의가 합리적 사대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합리적 사대주의자들은 시대가 달라지고 대세가 바뀌면 재빠르게 주인을 갈아탄다. 반면에 광신적 사대주의자들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주인을 바꿔야만 하는 타이밍조차 포착하지 못한다. 광신적 사대주의 집단인 윤석열 정권은 몰락하고 있는 미국과 낡은 제국주의 질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반면 러시아, 중국, 브릭스 진영과 다극화 질서를 적대시함으로써 한국을 망국의 길로 이끌고 있다. 시급히 광신적 사대주의 정권을 청산해야만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