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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라파타르, 생애의 고지(高地)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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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HIMALAYA ; Sagramatha National Park
2017—[Khumbu Himal] EVEREST.B.C. TREKKING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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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4일 (화요일) * [Evrest B.C Trekking 제9일]
<딩보체>(4,410m)↔ (고소 적응) ↔ <추쿵>(4,730m)
* [고소증이 심한 딩보체의 아침] — 청명한 날씨, 하루 하루가 새로운 날
히말라야트레킹 9일째 되는 날, 오전 5시 30분 이른 아침, 딩보체(Dingboche, 4,410m)의 ‘아마드블람 롯지’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른 아침,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가 아주 차가웠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맑을 하늘이다. 간밤의 그 자욱한 운무(雲霧)는 깨끗이 사라지고 아주 쾌청한 날이다. 동쪽의 앞산 뒤로 아마다블람(Ama Dablam, 6,814m)의 설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롯지의 마당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삼각의 설산거봉이다. 마당에 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거봉이 아마드블람이어서 롯지의 이름을 그렇게 한 것이다. 돌담의 문밖으로 나와 서쪽을 바라보니 롯지의 뒤쪽 산 너머에는 우람하게 솟은 하얀 설봉은 타부체피크(6,495m)이다.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탐세르쿠(6,618m)와 캉데가(6,613m) 설봉이 그 위용을 과시하며 솟아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해 뜨기 전, 롯지의 동쪽 정면에 보이는 아마드블람(6,814m)
우리가 유숙한 롯지와 롯지의 뒤(서쪽)에 솟은 타부체피크(6,495m)
금빛 햇살이 내리는 아마드블람 정상 (왼쪽이 주봉)
북쪽으로는 저 멀리 롯체(Lhotse, 8,516m)와 롯체샤르(Lhotse Shar, 8,382m) 연봉이 보이는데, 하얗게 구름이 피어오르는 그 산봉에는 아침의 금빛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히말라야에서 해가 뜨는 특별한 장면이다. 고도(高度)가 높은 설산(雪山)의 정상에서 햇살이 금빛으로 비추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침을 맞았다. 참으로 맑고 쾌청한 날이다.
멀리 북쪽으로 하얀 구름이 피어오르는 로체(8,516m)와 로체샤르(8,382m) 연봉
아침햇살을 받은 로체와 로체샤르 연봉
문득 기원섭 대원이 방콕에서 말한 내용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의 분위기에 맞는 좋은 말씀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전에 경향신문 기자인 유인경 작가가 내게 선물해준, 예담출판사 발행의『기쁨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혼란한 세상에서도 지속되는 행복’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달라이 라마의 망명지인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가 투투 대주교와 한 주 동안 나눈 대담을 담은 책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하루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다. 하루하루가 여러분의 생일이다.”
그렇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日日是好日]이다. … 오늘은 딩보체의 이 롯지에서 하루를 더 머물면서 해발 4,730미터 추쿵(Chukhung)까지 다녀오는 일정으로 ‘고소(高所) 적응 훈련’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어제의 산행이 무척 길고 고된 여정이었으므로 몸은 무거웠으나 오늘 아침은 여유가 있었다. 간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이진애 여사도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한 듯하여 참 다행이었다. 모두 느지막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가 유숙하고 있는 아마드블람 롯지 / 뒤쪽의 타부체피크의 위용 / 이곳 딩보체 마을의 뒷산 너머에 페리체가 있다
아마드블람
* [고소 적응을 위한 추쿵 트레킹]— 고도 300을 올렸다 내리는
오전 10시, 추쿵(Chukhung, 4,730m)을 왕래하는 ‘고소적응(高所適應) 훈련을 위한 트레킹’에 들어갔다. <고소적응 훈련>(acclimatization)은 고도(高度)가 높은 환경에 익숙하도록 적응하는 훈련이나 방법을 말한다. 고산(高山) 등반을 하는 경우 고소 적응여부가 등산의 성패를 좌우한다. 고산등반을 할 때 일정한 고도(高度)에 올랐다가 일단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고도를 높여 오르고 다시 하산하는 방법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극지등반의 방식을 말한다.
마을의 한 복판의 길에서 바라본 로체 연봉과 임자체((Imja Tse, 6,189m, 일명 아일랜드피크)
오늘은 하루 해발 4,410m 딩보체(Dingboche)에서 고도(高度) 300여 미터를 올렸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정이다. 오늘의 반환지점(返還地點)인 추쿵(Chukhung, 4,730m)이다. 추쿵은 추쿵리(Chukhung Ri)로 올라가는 입구이면서 그 동쪽으로는 ‘아일랜드 피크’로 알려진 임자체(Imja Tse, 6,189m)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추쿵리(5,550m)는 초오유, 푸모리, 롯체-롯체샤르 연봉, 마칼루, 바룬체 등 히말라야 8,000미터 내외의 거봉을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전망처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임자체(Imja Tse) 주변의 빙하는 임자콜라(Imja Khola)가 발원(發源)하는 곳이다.
화창한 날씨, 그러나 산소가 희박하여 본격적인 고소증세가 엄습한다
오늘 몸 상태가 여의치 않은 이상배 대장과 카일러는 딩보체(Dingboche)의 롯지에 남아 있기로 하고, 김준섭, 김미순, 신은영 대원 그리고 필자는 가이드 셀파 파샹(Pashang)을 앞세워 트레킹에 돌입했다. 딩보체는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마을의 중심을 관통하는 거리 좌우에는 식당과 상점, 그리고 롯지들이 즐비했다. 날씨가 아주 쾌청했다. 순도 100%의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지만, 서늘한 바람결이 아주 청신하여 아주 좋았다.
‘추쿵(Chukhung)으로 가는 길’, 딩보체(Dingboche)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의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우리가 내일 가야 할 로부체(Lobuche)로 가는 길이요, 오른쪽 길로 나아가면 추쿵(Chukhung)으로 가는 길이다. 기원섭-이진애 대원도 천천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두 대원은 언제나 자기 컨디션에 맞춰 완보(緩步)로 산행을 하는 것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 트레킹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그러나 문제는 고소증(高所症)이다. 산소가 희박한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에서 엄습하는 고소증은,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돌담을 둘러친 밭들이 이어진다. 좌우의 산들 사이로 분지 같은 평원이 펼쳐진다. 가까이는 거무티티한 암산(巖山)들이 이어져 나가고 그 한가운데 너른 분지의 지형이다. 오른쪽의 산 아래쪽에는 임자콜라(Imja Khola)가 흘러가고 그 야산 뒤로 장엄한 아마다블람(Ama Dablam)의 설봉이 하늘을 찌른다. 걷다가 돌아보니, 서쪽으로 타부체피크(Tabuche Peak)가 도도하게 위용을 뽐내고, 멀리 남쪽의 협곡 사이의 하늘에는 콩데(Kongde)의 설봉이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히말라야 이정표] (좌측) 내일 우리가 가야 할 로부체 가는 길 - (우측) 오늘 추쿵으로 가는 길
아마드블람(6,814m)의 위용 / 뒤의 것이 주봉
딩보체(Dingboche) 윗마을에서 바라본 타부체 피크(6,495m)
* [멀고 먼 평원의 길] — 희박한 산소의 악조건을 극복하라
평원(平原)의 길은 쾌적했다. 이른 봄이라 파란 잔디는 아니었지만 초원으로 이어진 고원에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나 있었다.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좌우 산들이 시립(侍立)하는 가운데, 청명한 날의 트레킹은 더없이 한가롭고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고소에서의 호흡 곤란과 두통을 동반한 가슴 답답함이었다. 4,000미터 넘는 고원에는 산소가 희박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은 이 자연의 조건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트레킹은 그 적응을 위한 훈련과정이다.
평원의 길은 멀고 멀었다. 길은 분명하지만 이정표도 없다. 30분을 가도 1시간을 가도 집 한 채 없이 펼쳐진 평원은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좌우의 산들도 거의 그 자리에 있는 듯했다. 우리가 가는 길목에는 간간히 자연석으로 만든 마니월이 있는데, 허물어지고 바람에 탈색되거나 찢겨진 타르쵸가 바람에 펄럭인다. 길이 임자콜라 가까이 이어지다가 다시 초원의 한 가운데를 지난다. 커다란 돌들과 땅바닥에 누운 향나무들이 분지의 평원을 채운다. 돌아보니 저 아래 딩보체 마을의 집들이 좌우의 산 아래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고소적응을 위해 왕래할 임자콜라 계곡
추쿵의 뒤쪽 임자체(아일랜드 피크, 6,189m)의 삼각예봉
뒤돌아본 임자콜라 주변의 풍경 / 멀리 쿰중 뒤에 솟은 콩데 설봉이 눈부신 광채를 발한다
우리가 가는 길 (임자콜라의 평원)
대명천지 멀쩡한 대낮, 숨이 막힌다
이래저래 인생은 고행이다!
옴마니반메훔!!
* [야크가 유유하게 풀을 뜯는 샬자카르카] — 숨막히는 고소에서 느끼는 생명의 무게
샬자카르카(Syalja Kharka) 부근의 초원에는 여기저기 야크(Yak)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곳의 야크는 하얀 색도 있고 갈색도 있다. ‘~카르카(Kharka)’는 야크를 방목하여 키우는 지역을 말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비브레(Bibre, 4,570m)를 경유하여 산중호수가 있는 콩마라(Kongma Lha, 5,536m)를 넘어서 로부체(Robuche)로 갈 수 있다. 소위 ‘Three Passes Trail’ 코스이다. 우리는 내일 아침 딩보체를 출발하여 두클라와 두클라 패스를 경유하여 로부체에 들어갈 예정이다. ‘~패스(Pass)’는 높은 고개를 뜻하는데 현지어로는 ‘~라(Lha)’라고 한다. 예를 '콩마라(Kongma La)'는 콩마패스(Kongma Pass)라고도 하며 우리말로 하면 ‘콩마고개’이다.
하얀 설봉을 등에 업고 성자처럼 서 있는 화이트야크(White Yak)
임자콜라 상류 북쪽 정면에 솟은 임자체(일명 아일랜드 피크, 6,189m) / 우리가 가야 할 너덜지대 돌밭길
임자콜라 동쪽에 솟은 암푸가입젠(Amphu Gyabjen, 5,630m) 암봉 -(아마드블람에서 북으로 뻗어온 산줄기)
우리가 떠나온 딩보체 마을 / 타부체피크의 위용 / 딩보체 마을 뒤 산길을 넘으면 페리체가 있다.
아마드블람 설봉(6,814m)과 암푸기압젠(Amphu Gyabjen, 5,630m) 암봉
우리가 가는 길은 임자체 콜라의 너른 평원 지대이다. 출발한지 거의 2시간을 경과했다. 카르카의 평원을 지나고 나니 너덜지대가 시작되었다. 돌밭과 작은 개울을 지나고 한 단계 높은 지대로 올라선다.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필자가 제일 앞서서 걷고 저만큼 뒤에 김준섭, 김미순 대원과 가이드 셀파 파샹이 따라오고 있었다. 준비한 물도 수시로 마시다보니 거의 바닥이 나고 배가 고팠다. 아침식사도 고소증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려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주로 물을 마셨다. 산행 중에는 비상식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곳감과 초콜렛을 준비해 왔지만 팍팍한 목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너덜지대
히말라야 고행(苦行)은 아픈 다리보다도 ‘숨쉬기의 어려움’과 ‘배고픔’이 문제다. 고소에서 호흡곤란을 겪고 보면 아, 사람이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절절하게 느낀다. 히말라야에서는 긴 산행을 하는 동안 체력 소모가 많으므로 늘 배가 고프다. 롯지에서 제공하는 딱딱한 밀빵이나 토스토, 계란 후라이, 밀티 등 네팔의 현지식으로는 체력소모를 감당하지 못한다. ‘산다는 것’은 먹고 숨 쉬는 것일진대 그 원초적 문제가 원만하지 못하니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기 희말라야에서는 실제 고소증으로 생명의 경계를 넘어가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한 고통과 어려움을 몸으로 겪게 되면, 일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편안한 삶이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겹게 실감을 하는 것이다. 생존의 절박함을 느끼는 험난한 히말라야 여정 곳에서 새삼 하늘이 내려준 우리의 생명(生命)에 대해서 생각한다. 생명의 소중함과 은혜로움을 몸으로 절감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에서 우러나오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체감하는 것, 이것이 바로 히말라야 여정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 [시선을 압도하는 설산거봉의 장관] — 임자체의 예봉 그리고 로체, 로체샤르
그렇게 힘들게 걸으면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 아일랜드피크 즉 임자체(Imjache, 6,189m) 하얀 삼각봉이 파란 하늘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왼쪽으로 가까운 산 뒤로 멀리 장대한 설산의 연봉이 솟아 있다. 머리를 풀어헤친 하얀 구름이 산봉을 휘감고 있었다. 바로 로체(Loche, 8,516)와 로체샤르(Loche Shar, 8,382m)의 연봉이었다.
* [로체(Loche)를 등정한 이상배 대장] — 히말라야
세계 제4위 고봉 저 로체(Loche, 8,516m)는 우리 이상배 대장이 2002년에 등정(登頂)한 곳이다. 아득하게 올려다보이는 로체의 설봉을 바라보면서 준엄하게 솟아있는 산봉을 오른 이 대장을 생각했다.
☆… 히말리스트 '이상배(李相培)' 대장은 세계 7대륙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초오유(8,201m), 가셔브롬2봉(8,035m), 세계 4위 로체(8,516m), 에베레스트(티벳루트 초모랑마, 8,840m) 등 히말라야 8,000m급 산봉을 등정하였다. 일찍이 이 대장은 1990년 미국의 요세미티100주년을 기념하는 암벽 등반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4,101m), 유럽 알프스산맥 종주, 대만의 옥산(3,952m), 일본의 북알프스(3,190m) 종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7회 등정, 남미의 안데스사맥의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 3회 등정, 유럽 알프스 몽블랑(4,810m) 10회 등정, 이란 최고봉 다마반드(5,671m), 히말라야 메라피크(6,654m) 등정과 북미 최고봉 맥킨리(6,194m)에 산악스키, 유럽의 최고봉 엘부르즈(5,642m) 등을 등정하였고, 2010년에는 히말라야 히무룽(7,126m) 한국 초등(初登)한 전문 산악인이다. 그리고 2001년에는 일본 산악인 노구치 켄과 함께 에베레스트 클린원정대를 조직하여 등산루트에 버려진 쓰레기를 청소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 외 패러그라이딩, 산악스키 등의 활동도 하였다. 2008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훈하였으며, 현재는 한국히말라야클럽 이사, 사단법인 영남등산문화센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히말라야 트레킹가이드로 여러 차례 다녀온 그야말로 네팔, 히말라야 원정의 베테랑이다.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
1999년 가셔브롬 2봉(8,035m) 정상에 오른 이상배 대장(좌)
로체의 바로 옆 로체샤르는 로체의 아우처럼 나란히 서 있지만 실제로 산악인들에게는 등정(登頂)하기 아주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01년 시사팡마에 오름으로써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이 로체샤르와 얄룽캉(캉젱중카의 위성봉)까지 올라 16좌를 완등한 기록을 세웠다. 특히 로체샤르 등정은 그에게 히말라야 등반에 있어 생애적인 사건이다. 다음은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글이다.
구름에 정상이 가려진 로체와 그 우측의 로체샤르
* [엄홍길의 로체샤르(Loche Shar) 등정기] — 처절하게 사투를 벌인 히말라야 이야기
그의 마지막 고봉(高峰)인 로체샤르(Loche Shar, 8,382)는 그를 쉽사리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2001년, 2003년. 2006년 세 차례의 실패를 거쳐 2007년 네 번째 도전에서 성공한 등정(登頂)이었다. 더욱이 2003년 등반에서는 정상을 150m 놔두고 후배 대원 2명이 눈사태로 수천 미터 절벽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다. 2006년 세 번째 도전 때는 루트를 바꿨다. 그런데도 두 번째 등반 때 사고를 당한 설벽(雪壁)으로 접어들었다. 눈이 먼저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는 등 상태가 무척 나빴다.
2007년 로체샤르 원정은 ‘내 인생에 마지막 심판대’라는 생각으로 나섰다. 이번에 히말라야의 신(神)이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죽음으로 끝장나리라는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초반에 제2캠프로 향하던 셰르파가 500m나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연히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다. 천우신조인지 셰르파는 무릎만 탈골되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엄홍길은 ‘로체샤르의 신(神)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성공할 징조’다 싶었다. 그러나 막판까지도 로체샤르는 끝까지 그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네 번째 도전에서 후배 두 명과 함께 어렵사리 정상(頂上)에 올라서는 순간 모든 것이 잘 끝났다 싶었다. 그러나 후배 한 명이 설맹(雪盲)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후배를 안전하게 하산시키는 일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하다 싶었다. 후배를 로프에 묶어 칼날 설릉(雪稜)을 어렵게 통과하고 설벽(雪壁) 구간에서는 후배를 먼저 내려 보낸 다음 뒤이어 내려서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2007-한국로체샤르 로체남벽 원정대>가 13시간 10분간의 사투
끝에 2007년 5월 31일 오후 6시 50분 해발 8,362m 로체샤르 정상에 올랐다. [자료사진]
등반을 시작한 지 만 하루 만에 마지막 캠프에 돌아온 엄홍길은 툭 건드리면 쓰러질 만큼 지쳐 있었다. 그래도 후배를 아이젠과 신발을 풀어준 뒤 텐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죽음과도 같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16좌 완등의 축하 팡파레는 꿈속에서도 울리지 않았다. 죽음의 지대에서 살아 내려서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엄홍길(嚴弘吉)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운명은 정해 있는 것 같아요. 캉첸중가에서 사고를 당한 ‘다와’는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아 뒤따라오라 했는데 느닷없이 앞장섰다가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고, 로체샤르에서 사고를 당한 ‘박주훈’도 계속 뒤에서 오다가 어느 순간 저를 앞지르더니 눈사태에 휩쓸렸어요. 사고를 당했을 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자일이 없는 상태에서 2천m 절벽 위에 칼날처럼 형성된 설릉(雪稜)을 가로지르는 일이 급한 일이었으니까요. 150m 길이의 설릉을 빠져 나오는 데 몇 년 걸린 기분이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두 후배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2008년 에베레스트에서 박영석과 함께
이상배 대장(검정색)과 엄홍길 대장(흰색 상의)
2004년 10월 초오유(Cho Oyu, 8,201m) 등정 50주년 행사에 네팔 정부로부터 초청받은 이상배 대장
초오유를 초등한 헬베르트 <우>와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및 14좌를 최초로 등정한 라인홀트 매스너 <좌>
* [아득하고 험악한 돌밭길] — 오두막집을 지나 험악한 너덜지대를 지나다
오늘 추쿵 가는 길목에서 온몸에 압도해 오는 로체(Loche, 8,516m)를 바라보면서 이상배 대장의 투혼의 장정을 생각하고, 그 옆에 나란히 솟은 로체샤르(Loche Shar, 8,382m)를 바라보면서 엄홍길의 사투의 장거를 생각하였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숨 막히는 도전에 경의를 표했다. 에베레스트(Everest, 8,848m)는 로체 연봉의 뒤쪽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 산봉들은 모두 마하랑구르히말(Maha Langur Himal)에 속하는 산줄기로 네팔과 티벳의 경계를 이룬다.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오른쪽은 뒤로 물러난 아마드블람(Ama Dablam, 6,814m)과 거기에서 뻗어온 시커먼 암봉이 가까이에서 압도해 오는데, 바로 암푸기압젠(Amphu Gyabjen, 5,630m)이다. 길은 험난한 돌밭의 너덜지대이다. 개울을 지나 한 단계 올라서니 오두막집이 한 채가 올려다 보였다.
암푸가입젠(Amphu Gyabjen, 5,630m) 그 뒤의 설봉이 아마드블람
하얀 구름에 휩싸인 로체 연봉
정각 낮 12시를 넘기고 있는 시각, 작은 오두막집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돌들로 벽을 쌓고 넙적한 돌판으로 지붕을 한 작은 외딴집이었다. 아주 허름하고 오래된 집이었다. 돌벽에 난 문 안으로 들어가니 음료와 과자 등을 파는 가게였다. 너무 고요하여 폐가인줄 알았는데 사람이 살고 장사를 하는 집이었다. 까만 눈동자의 소녀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의 대원들이 저만큼 떨어져서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아일랜드피크(6,189m. Imjache)가 보이는 산 아래, 몇 채의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추쿵(Chukhung, 4,730m)이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였으나 한참을 걸어도 쉽게 이르지 못했다. 사실 딩보체에서 추쿵까지 다녀오는 코스는 ‘고소(高所) 적응’을 위해 반나절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가벼운 여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걸어 보니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빤히 보이는 곳도 쉽게 거리가 좁혀지는 게 아니었다. 히말라야에는 이정표가 거의 없다. 이정표가 있어도 주로 고도(高度)를 표시한다. 히말라야에서는 사실 고도가 문제이지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이드 파샹이 주위의 산을 가리키며 말한다. 왼쪽으로 가깝게 보이는 산봉이 낭카르샹(5,616), 오른쪽은 아마드블람의 산줄기의 암푸기압젠(5,630)이다.
아일랜드피크(6,189m. Imjache)로 가는 돌밭길
아마드블람의 산줄기의 날카로운 암푸기압젠(5,630m) 암봉
딩보체(Dingboche)에서 추쿵(Chukhung)으로 가는 길은 임자콜라[작은 강]가 흘러내리는 계곡의 평원이었다. 오두막돌집을 지나고 나니 이어지는 것은 크고 작은 험악한 돌밭 길이었다.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돌밭길 너덜지대를 걷고 걸었다.
* [고도 300미터를 올린 추쿵] — 모래알을 씹는 듯한 점심식사, 그리고 하산
오후 1시가 넘어 천신만고 끝에 추쿵(Chukhung, 4,730m)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곳 5,000m미터 가까운 고도에 올라 적응훈련을 하는 것이다. 내일은 4,910m의 로부체까지 올라야 한다. 추쿵에는 돌밭 언덕에 아주 규모가 큰 롯지 두어 채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추쿵은 추쿵리(5,550m)나 아일랜드 피크(임자체, 6,189m)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길목의 거점이다. 네팔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는 마할랑구르 히말의 로체와 로체샤르와 도면상 거리가 아주 가까운 곳이다. ‘마할랑구르히말(Mahal Langur Himal)’은, 네팔과 티벳의 경계를 이루는 쿰부지역의 히말라야 산맥의 네팔식 명칭이다. 이 산맥에는 서쪽의 초오유(Cho Oyu, 8,201m)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아중캉(Gyachungkang, 7,922m), 푸모리(Pumo Ri, 7,165m), 에베레스트(Everest, 8,848m), 로체(Lhotse, 8,516m), 로체샤르(Lhotse Shar, 8,382m) 등의 거봉들이 포진되어 있다.
추쿵의 롯지 레스토랑 / 뒤의 설봉이 아일랜듳피크
추쿵의 뒤쪽에 솟은 로체와 로체샤르 - 하얀 구름에 싸여 있다
김준섭, 박미순, 신은영 대원 그리고 호산아 등 우리 일행은 ‘추쿵 리조트’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네팔의 전통음식인 ‘달밧(Dalbat)’을 주문하여 식사를 했다. 문제는 배가 고파도 그 밥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소증으로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녹두죽에 비빈 오돌돌한 쌀알이 입안에서 모래처럼 굴러다녔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물을 마시며 오래 씹어서 꾸역꾸역 목구멍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먹어야만 또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진한 상태에서 다시 돌아가야 할 여정을 남겨두고 있으니 밥을 약처럼 먹어야 한다.
추쿵의 롯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주변의 고산 설봉을 감상하며 그 아름다운 장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누르고 하산(下山) 길에 접어들었다. 돌아가는 길은 올라온 길의 고행(苦行)을 되돌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래도 팍팍하게 먹은 달밧과 따끈한 밀티가 요기가 되어 몸이 좀 안정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길은 멀고 멀었다. 저만큼 오두막집에 빤히 보이는 데 쉬 닿지 않았다. 옛날에는 빙하지역이었을 이 지역이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빙하(氷河)가 녹고 거대한 분지의 계곡이 형성되었고, 그 막막한 길을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지만 바람결이 선선하여 걷기 좋았다.
아마드블람을 배경으로 (추쿵의 롯지 앞에서)
딩보체로 내려가는 길
내려오는 길,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고 구름이 몰려와 타부체피크를 덮어버렸다
딩보체의 숙소 롯지로 돌아오다
* [이틀째 딩보체의 밤] — 신은영 대원의 생일을 축하하며
딩보체(Dingboche)에서 이틀째 밤을 맞이하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오늘이 우리 신은영 대원이 생일(生日)이라고 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초코파이에 심지를 꽂아 불을 밝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생일 축하'를 해 주었다. 신은영 대원은 기원섭 대원이 참여하는 독서클럽 ‘북투어’의 회원으로 이번 우리와 함께 이번 트레킹에 참석했다. 고운 얼굴에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어 험난한 히말라야 트레킹에 걱정이 많았을 터인데, 오늘까지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대원 중에 가장 젊은 나이, 그래서 저력이 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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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자연을 보는것 만으로도 추쿵 이
아니라 심쿵해집니다
경이로운 사진들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