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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1일 연중 제 15주일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지팡이가 가지는 의미
오늘 예수님께서 세상 속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지금 같으면 여행가방 속에 칫솔, 비누 등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핸드폰과 충전기가 꼭 들어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필수품이 된 핸드폰이 없으면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곁에 놓아야 수업이 잘되는 학생도 있고, 수업시간에 뒤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도 있습니다. 나는 수업시간에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싫어해서 핸드폰을 가지고 만지거나 사용하면 학점을 깎았습니다. 그런데 비단 학생들뿐인가요? 우리 신자들도 미사시간에 그렇게 주의를 주고, 심지어 신부님께서 핸드폰이 울리면 강론내용을 잊어버린다고 끄기를 신신당부를 하여도 그 때 뿐이고 미사 중에 전화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는 곳에 사람들에게서 필요한 것을 조달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팡이 외에는 다른 것들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검소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 없는 것을 간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제자들은 많은 시험과 시련을 부과하시는 예수님은 모험이 가득하신 분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함께 살면서 서로 친교를 맺으며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지팡이를 들고 가라고 하셨을까요?
1) 지팡이는 위험에서 보호해 줍니다.
사막을 건너거나 산길을 건널 때 이리나 뱀들의 공격에서 벗어나야 하고 양들을 돌볼 때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위험한 사자를 맞섰을 때 지팡이는 자신을 보호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데 가장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2) 지팡이는 의지가 되는 도구입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 많은 길을 걸었을 때 지팡이는 많은 도움을 줍니다. 자신을 받혀주고 구부러진 허리를 의지하고 아픈 다리를 도와줍니다. 양차 대전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살았는데 지팡이를 짚고 거동을 하였고, 없어진 다리를 보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주교님은 복음을 봉독할 때 지팡이를 잡고 지팡이에 의지하시는데 지팡이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는 주교님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3) 지팡이는 목자를 상징하는 표지입니다.
양치기는 지팡이를 가지고 양을 기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을 기르는 목자들의 지팡이를 목장(牧杖)이라고 합니다. 주교님께서 짚는 지팡이도 목장(牧杖)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 사람들을 돌보는 참된 목자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목자의 신분을 잊지 말라고 지팡이를 가지고 가게 하셨을 것입니다. 사목자의 지팡이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 16)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권고의 말씀이 새겨져 있는 것이죠.
4) 지팡이는 지시와 지휘할 때 아주 요긴한 도구입니다.
군인들의 지휘관은 지휘봉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팡이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뻗자 주님께서 우레와 함께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탈출기 9, 23) 지팡이에는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것과 같이 이루어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지휘에 의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에 의해서 살고 있습니다. 지팡이는 주님의 제자임을 상징하기에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그 모든 권한을 받았음을 상징합니다.
5) 지팡이는 아주 중요한 안내와 인도자의 역할을 합니다.
맹인들은 지팡이의 인도를 받고 안내를 받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고 말하는 경찰은 우리 생활을 안내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많은 사람들을 안내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6) 지팡이는 주님을 상징합니다.
가장 중요한 상징입니다. 우리 전부를 의탁할 수 있는 분이심을 상징합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상징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 20)고 하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제자들과 항상 같이 하시며 의지가 되시고, 새로운 방향을 인도하시고, 하늘나라를 안내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지팡이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은 주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축일7월 11일 성 베네딕토 (Benedict)
신분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 지역 :누르시아(Nursia)
활동 연도 :480?-547년?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는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로마(Roma)에서 수학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도시 생활의 윤리적 타락과 유혹에 환멸을 느껴 고향 근처의 고요한 광야를 찾아갔다. 그는 500년경 로마 동쪽 내륙의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준비 없는 독거 생활이 영성 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동방교회의 사막 은수자처럼 살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3년 동안 그 동굴에 살았는데, 자신을 그곳으로 인도한 로마누스(Romanus)라는 은수자가 가끔 밧줄에 매달아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고독 속에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육신의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온전히 독수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성덕과 엄격한 생활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공동체에 알려져 그들로부터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 베네딕투스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까지 하자 다시 수비아코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가 그를 찾아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하나로 육체노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수비아코는 곧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인근 본당의 사제인 플로렌티우스가 그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고 하자, 그는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비아코를 떠나 529년경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 신에게 헌정된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에 물든 인근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근 피우마롤라(Piumarola)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초대 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또다시 많은 제자가 몰려왔다.
그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흐트러진 수도 생활을 바로잡고 서방교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금욕생활 속에서 기도와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도록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 생활 정신을 온전히 담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했는데, 이후 서방교회에 새로 설립되는 수많은 수도원의 규칙에 적용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토를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정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도 힘썼다. 또한 동고트족 토틸라(Totila) 왕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한번은 그의 명성을 듣고 토틸라 왕이 그를 찾아와 먼저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들여보냈지만 단번에 그가 가짜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성 베네딕투스는 토틸라 왕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선종하고 얼마 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6일 전에 미리 무덤의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선종 당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두 수도승의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 채로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21일이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이미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1969년 전례력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보편 전례력에서 7월 11일로 확정되었다. 동방정교회는 3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수도 규칙서나 그를 독살하려 했던 일을 상징하는 뱀이 들어 있는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그리고 독이 든 빵을 물고 있거나 날아가는 까마귀와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베네딕토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