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공회와 로마 카톨릭이 닮은 점
1. 중앙집권제
산헤드린공회는 절대적인 중앙집권제다. - 이들에 의해 결정된 것은 절대적으로 유대인은 어디에 거하든 따라야 한다.
이들은 종신제다, 결원 발생 시 산헤드린에서 결정한다.
로마카톨릭도 철저한 중앙 집권제로 모든 행위가 산헤드린공회와 동일하다
2. 재정관리
지방에 구성되어 운영되는 산헤드린공회의 헌금은 중앙의 산헤드린공회에 보내져야한다.
이를 거부할 경우 파면 또는 징역이라는 형벌이 가해지며 이의를 제기 할 수 없다.
로마카톨릭도 모든 교회의 헌금은 로마카톨릭 본부로 전달되어야 하며 이를 거부 할 수 없다.
3. 종교재판
산헤드린 종교재판은 지방에서 1차 재판 후 이것이 상급 산헤드린에서 재심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중앙에 있는 산헤드린에 의해 재판을 실시하였으나 이를 뒤엎을 기관이 없었다.
로마 카톨릭도 동일한 것으로 안다.
4. 달력의 제정권
산헤드린은 매월 월삭이 도래함을 알기 위해 전통적으로 성전꼭대기에서 달을 관찰하여 나팔을 불어 달의 시작을 알렸으며 달력의 제정권이 있었다.
현재 사용되는 세계의 달력도 그래고리력으로 로마카톡릭의 달력이다.
5. 신앙교리 제정권
산헤드린은 신앙의 교리 및 규례를 만들었고 율법에 대한 해석을 하였다.
예수님에게도 자신들이 만든 규례로 안식일을 지키라고 요구하였다.
로마 카톨릭도 성경위에 자신들의 교리를 세워 성경보다 교리를 순종하도록 만든다.
6. 군사력
로마는 산헤드린공회에 군사권을 부여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통치할 권한을 부여한다.
로마는 초대 로마카톨릭에 군사권을 부여하여 이로 세상을 통치하도록 만든다.
7. 산헤드린이 쇠태 할 때부터 로마 카톨릭이 부흥 함
산헤드린공회는 AD70년 로마가 이스라엘을 완전하게 점령할 때 당시 로마의 군대장관에게 자신들이 티베리우스에 거하며 산헤드린공회가 유지되도록 요구하며 그 후 AD425년 힐렌2세가 마지막 공회 때까지 이곳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산헤드린 공회는 이곳에서 기독교의 핍박을 계속한다.
로마 카톨릭은 AD325년 콘스탄티누스가 주관한 니케야 회의로 국교가 되고 콘스탄티누스의 마나님이 사용하던 왕궁을 카톨릭 본부로 사용하면서부터 부흥한다.
8. 역사 변조
산헤드린공회는 유대교 안에 헬라문화를 접목하였으며, 메시야를 거부함으로 역사를 변조하였다.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기독교에 접목하였고 초기 로마 교회를 쫒아내고 현재의 로마카톨릭을 세운다.
9. 산헤드린은 제사장의 권위를 행하였고 로마카톨릭은 하나님의 권위를 행한다.
산헤드린공회(서기관, 사두개인, 바리세인 포함)는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자행하였다.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의 권위에 앉아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10. 정보력
산헤드린공회는 로마권력이 인정하는 범위에서 정보원을 운영하였다.
정보원들에 의해 산헤드린공회의 결정을 유대인들에게 전하였고 유대인의 동태를 확인하고 죄인들을 잡아드린다.
이들 정보원들에 의해 당시 성도들이 산헤드린공회에 고발당하고 핍박을 받고 순교한다.
로마카톨릭의 정보력은 미국의 정보원 보다 이스라엘의 정보원보다 영국의 정보원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것을 세계가 인정한다.
AD325년 이후 만들어진 천년이상의 정보력이다.
*. 현재의 로마 카톨릭을 보면 세상 다신교의 집합체가 아니라 산헤드린공회의 후신인 것 같다.
산헤드린이 역사의 변천을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신들의 위치를 무수히 변화시키며 명목을 유지하였던 것 같이 현재의 로마카톨릭을 보면 산헤드린공회가 로마카톨릭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자들 같아 보인다.
어쩌면 티베리우스에서 마지막까지 존재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들이 탈을 쓰고 로마 카톨릭으로 숨어 들어가 권력과 손잡고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