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 대부분 소작에 의존하고 그나마 조금 깨우친 가정은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장사를 해 풋돈을 벌어서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 가정을 꾸렸다
마을 동갑내기 친구 중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나만 육군3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중졸자 한 명 고졸자 4명이고 나머지는 초등졸업자다 고졸자 중 2명은 여자친구다 그들은 우리 마을에서 부잣집에 속한 친구들이다
초등,중졸자들은 60년대에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면서 온갖 잡일을 하거나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아들딸 낳고 모두다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한 우물을 팟기에 그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지금까지 일하는 친구도 있다 오늘 날에는 친구들이 했던 직업이 3D업종 지금은 외국인들을 고용해서 하는 일이다
친구 중 두 명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 영면에 들어갔다
오늘은 제주에 정착해서 부축적에 성공한 친구 얘기를 하고자 한다
그 친구는 60년대 제주로 들어가 당시 동방금고"라는 마을 형이 운영하는 간판 만 있는 가게(회사)에 취직을 해서 외판원을 했다고 한다
제주에 동방금고가 처음들어가 장사가 엄청 잘돼 월급도 받지만 파는 수량에 따라 각각 수당이 떨어졌다고 한다 월급보다 수당이 수십배 더 많아서 짭짤했다나...
그 친구는 월급과 수당을 받으면 꼬박꼬박 적금하여 돈에 맞는 땅이 나오면 삿다고 한다 모아둔 돈을 무두 땅에 투자해 성공한 우수 사례다
그당시 그린벨트에 묶긴 땅 한 평에 몇 백원 대에 감귤나무를 심을 목적으로 삿다고 했다
90년대부터 개발이 되면서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그 땅에 큰 도로가 나 땅값으로 받은 돈으로 호텔을 지어서 지금은 떵떵거리며 살지만 건강을 잃어서 측은한 생각도 든다 중풍에 맞아 좌측팔을 자유롭게 쓰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에 나에게 안부전화를 하면서 우리 마을에서 그시절에 태어난 용띠 친구들과 한 두살 아래와 한 두살 위의 사람들을 초청해서 2박3일 여행도 하고 밤샘 얘기를 하고 싶단다
이 기회에 못 만나면 살아서는 못 볼 것 같다면서 어렸을 때 마을에서 함께 놀았던 비슷한 또래 사람들을 한번 만나보고 죽겠단다
제주에 오고 가는 여비는 개인들이 부담하고 숙식제공 및 관광에 들어가는 제반비용은 본인이 부담하겠단다 몇년 전에도 고향마을에 500만 원 기부했단다
친구의 진심을 믿지만 공수표일 수도 있으니 내가 너무 앞서 나가지 않았나 싶다 성사된 후 갔다와서 올려도 늦지 않을 텐데... 이해해주세요 실행 후 후속편은 추후에...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동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고향 분께서 하버호텔을 찾아주시면 친절히 모시겠답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 진도읍 지도리 또는 양섬 마을"이라고 합니다
내 친구 이름은 박용준 진도초등학교 57회입니다
고향 분께서 많이 이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