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길 따라 도동서원에 들다
여름이 깊어지면 오래된 집들은 꽃을 품는다. 기와의 검은빛이 짙어질수록 배롱나무 꽃은 더욱 붉어진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돌담 곁에서 피어난 꽃을 보고 있으면 시간에도 빛깔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으로 향한 날도 그랬다.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흘렀고, 비를 머금은 바람에는 여름 끝자락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서원에 가까워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와지붕 너머로 솟아오른 배롱나무였다. 가지마다 분홍빛 꽃이 수북했다. 오래된 한옥의 검은 기와와 선명한 꽃빛이 묘하게 어울렸다. 꽃이 건물을 장식한다기보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벗처럼 보였다. 한쪽에는 소나무가 우산처럼 넓은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배롱나무만은 제 안에 햇살을 간직한 듯 환했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곳이다. 전신인 쌍계서원이 1568년에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05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1607년 선조가 ‘도동서원’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을 품은 이름이다. 2019년에는 다른 여덟 곳의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수백 년 전 학문을 닦고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던 공간이 이제는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 된 셈이다.
그러나 막상 서원 앞에 서니 그런 거창한 설명보다 먼저 마음을 붙드는 것은 작은 것들이었다. 돌담 위에 포개진 기와, 그 틈을 비집고 나온 담쟁이, 바람에 흔들리는 배롱나무 꽃 한 송이였다. 오래된 기와에는 이끼와 얼룩이 내려앉아 있었다. 금이 간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그 틈으로 초록 잎이 뻗어 나왔다. 세월은 낡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낡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키우기도 하는 모양이다.
누각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더욱 깊었다. 붉은 기둥 사이로 배롱나무가 보이고 돌담 너머로 산자락이 이어졌다. 바람이 누각을 통과했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책장을 넘기던 소리도 이런 바람 속에 섞여 있었을까. 학문이란 결국 세상을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원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한층 느려진다. 마당을 가로질러 걸을 때마다 발밑의 흙이 조용히 밟힌다. 사람의 목소리도 저절로 낮아진다. 오래된 공간에는 사람의 걸음을 늦추는 힘이 있다. 빨리 보고 빨리 찍고 다음 장소로 옮겨가는 여행에 익숙해졌지만, 도동서원에서는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은행나무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굵은 몸통에서 수많은 가지가 갈라져 하늘로 뻗어 있었다. 너무 오래 살아온 까닭에 몇몇 가지는 돌기둥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나무는 지지대에 몸을 기대면서도 여전히 무성한 잎을 펼쳐 놓았다.
문득 늙는다는 것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 서는 것만이 강함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때로는 지팡이 하나에 몸을 맡기면서도 자기 안의 푸른 잎을 놓지 않는 것. 삶은 끝까지 홀로 견디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받아 주며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에게 사람의 한 생은 얼마나 짧을까. 누군가는 이 나무 아래에서 과거를 준비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을 것이다. 기쁜 소식을 품고 이곳을 찾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세상살이에 지쳐 잠시 나무 그늘에 기대었던 이도 있었으리라. 사람은 떠났지만 나무는 남았다. 그리고 떠난 사람들의 시간을 제 몸속에 나이테로 간직했을 것이다.
다시 배롱나무 쪽으로 걸었다. 배롱나무는 흔히 백일홍나무라 불린다. 한 송이가 백일을 견디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핀 꽃이 지면 다른 꽃이 피고, 그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뒤를 잇는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한 나무가 백일 동안 계속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실이 새삼 마음에 남았다. 오래간다는 것은 하나가 끝까지 버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지면 다른 누군가가 피어나고, 한 세대가 물러서면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것. 도동서원이 수백 년 동안 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어짐 덕분이 아니었을까. 스승이 제자에게 학문을 전하고, 선대가 후대에게 삶의 태도를 남겼다. 배롱나무 꽃이 차례로 피어나듯 정신도 그렇게 이어졌다.
돌담 너머의 배롱나무를 바라본다. 꽃송이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더 붉어지지도 않는다. 피어야 할 때 피고, 질 때가 오면 미련 없이 떨어진다. 그 단순한 생의 방식이 오히려 사람보다 깊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려 한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남보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러다 정작 자신의 계절이 어떤 빛깔인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배롱나무는 그런 사람에게 말없이 꽃 한 송이를 내민다. 남의 계절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때에 자신의 빛깔로 피면 된다고.
누각의 현판을 다시 올려다본다. ‘도동’이라는 두 글자가 세월을 건너와 오늘의 방문객을 맞는다. 학문의 길도 삶의 길도 결국 하루하루 자신을 닦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수백 년 전 선비들이 찾았던 답과 오늘 우리가 찾는 답이 완전히 다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서원을 나서는 길에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기와 위로 배롱나무 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꽃 아래에는 오래된 돌담이 있고 그 뒤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떠나는 길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여행은 먼 곳에 다녀오는 일이지만 때로는 자기 안으로 돌아오는 일이기도 하다. 낯선 풍경을 만나러 떠났다가 오래 잊고 있던 마음 하나를 찾아 돌아오는 것. 도동서원에서 만난 것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만이 아니었다. 오래 견디는 법, 때가 되면 피어나는 법,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면서도 다시 푸른 잎을 내는 법이었다.
바람이 불자 배롱나무 꽃잎 몇 장이 돌담 아래로 떨어졌다. 지는 꽃이 아쉽지 않았다. 그 뒤에서 또 다른 꽃망울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동서원의 여름은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오래 남는 삶이란 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지고 난 자리에서도 다시 무엇인가를 피워내는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