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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초승분법본경 상권
수(隋) 달마급다(達摩笈多) 한역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婆伽婆]께서 사라바실제성(舍囉婆悉帝城)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 앉아서 의논을 하였다.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을 말하자면, 세존께서는 일찍이 무량한 법문으로써 12분연생(分緣生)을 말씀하시되, 그 최초에 무명(無明)을 연설하셔서 연생의 바탕[體]으로 삼으시니, 무슨 인연(因緣)이 있어서 일체의 번뇌와 모든 행(行)의 연(緣)에서 오직 무명만이 연생의 바탕이 된다고 하셨을까? 이 무명에서 어떠한 특별함[勝異]을 보셨을까?”
모든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 앉아 의논이 끝나지 않는 동안 세존께서는 종일토록 정행(定行)에 드셔서 사람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 귀[天耳]로 그들의 의논을 들으시고, 날이 저물 무렵 정행에서 나와 그들이 앉아 있는 법당으로 가셨다. 법당에 이르러 비구들의 앞에 항상 시설되어 있는 자리 위에 앉으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슨 까닭에 법당에 모여 앉아 의논이 끊이지 않았는가? 여기에 모여 앉아서 무엇을 의논하고 있었는가?”
비구들이 말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이처럼 많은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 앉아서 이러한 의논을 하였습니다.
‘모든 목숨이 있는 것들을 말하자면, 세존께서는 일찍이 무량한 법문으로써 12분연생을 말씀하시되, 그 최초에 무명을 연설하셔서 연생의 바탕으로 삼으시니,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일체의 번뇌와 모든 행의 연에서 오직 무명만이 연생의 바탕이 된다고 하셨을까? 이 무명에서 어떠한 특별함을 보셨을까?’
대덕이시여, 저희들 여러 비구는 법당에 모여 앉아서 아직 의논을 마치지 못했으며, 이러한 것을 의논하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연생초승분(緣生初勝分)이란 법문이 있으니, 잘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어떤 것이 연생초승분의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반연이 특별함[攀緣勝異]과 종상이 특별함[種相勝異]과 유서가 특별함[由緖勝異]과 등기가 특별함[等起勝異]과 전생이 특별함[轉生勝異]과 전도가 특별함[顚倒勝異]과 상이 특별함[相勝異]과 업이 특별함[業勝異]과 장애가 특별함[障礙勝異]과 순박이 특별함[順縛勝異]과 대치가 특별함[對治勝 異]이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바르게 하고, 한쪽 어깨를 벗어 세존을 향하여 합장하고 몸을 숙이고는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無明)의 반연이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인(因)과 과(果)가 모두 허물이 되고 악(惡)하여서 일체가 오염된 부분[染分]인 것과, 인과 과가 모두 공덕(功德)이어서 일체가 청정한 부분[淨分]이 있으니, 이것이 무명의 반연이 특별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여, 어떤 것이 무명의 종상이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진실을 덮고 진실하지 못함을 드러내니, 이것이 무명의 종상이 특별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유서가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일체의 번뇌염(煩惱染)과 업염(業染)과 생염(生染)에게 유서와 근본적인 주처(住處)가 되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의 번뇌염(煩惱染)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간략히 세 가지 번뇌를 말하리라. 일체의 번뇌염이란, 이른바 지혜가 없는 번뇌[無慧煩惱], 의심하는 지혜의 번뇌[疑慧煩惱], 삿된 지혜의 번뇌[邪慧煩惱]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의 업염(業染)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대략 말하건대 자체의 모양인 세 가지 차별[신(身)․구(口)․의(意)]과 장애와 대치의 세 가지 차별된 모습[장애는 비복(非福)을 말하고, 대치는 복(福)과 부동(不動)을 말한다.]이 업염(業染)을 모두 포섭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 종류의 생염(生染)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간략히 말하건대 세 가지의 수(受)가 세 가지의 고(苦)에 의지하는 까닭에 생염(生染)을 모두 포섭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 종류의 번뇌염과 업염과 생염이 모두 무명으로써 유서(由緖)와 근본적인 머무를 곳을 삼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실제(實諦) 가운데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이니, 생기지 않은 번뇌염은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점점 커져서 더욱 많게 하며, 생기지 않은 업염은 생기게 하고, 만약 이미 생긴 것은 다시 쌓고 모이게 하며, 생기지 않은 생염은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변하지 못하게 하니, 그러므로 일체 종류의 번뇌염과 업염과 생염은 모두 무명으로써 유서와 근본적인 머물 곳을 삼는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명의 유서가 특별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등기(等起)가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무명이 내생의 고제(苦諦)에 포섭되어 다시 태어난 몸에 대하여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며, 현재의 고제에 포섭되어 이미 태어난 몸에 대하여서도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니, 이 어리석고 미혹함을 말미암아 섭취연생(攝聚緣生)과 전출연생(轉出緣生)과 화합섭취(和合攝取)와 화합전출(和合轉出)이 있다. 이 두 가지 연생과 내세와 현재의 두 몸의 우혹(愚惑)이 모두 무명으로써 등기의 연을 삼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처음의 무명(無明)이 연이 되어 행(行)이 있고, 행이 연이 되어 식(識)이 있고, 이렇게 하여 명색(名色), 6입(入), 촉(觸)이 연이 되어 수(受)가 있으니, 이것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전출연생과 화합전출 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제2의 무명을 연하는 가운데서 수(受)가 연이 되어 애(愛)가 있고, 애가 연이 되어 취(取)가 있고, 취가 연이 되어 유(有)가 있고, 유가 연이 되어 생(生)이 있고, 생이 연이 되어 노사(老死)가 있으니, 이것이 전출연생과 화합연생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처음의 무명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에게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한 무리가 다시 태어나는 몸[更生身:後有]에 대하여 어리석고 미혹하므로 알지 못하여 다시 태어나기를 구하니, 이와 같은 어리석고 미혹하므로 다시 태어나기를 구하는 까닭에, 다시 태어나는 가운데서 좋은 일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못한 경계에 대하여 집착함을 말미암아 분별하는 까닭에 비복행(非福行)을 짓는다. 이른바 여러 가지의 살림살이[資具]에 대하여는 탐심을 내고, 손해나고 번뇌스러운 것에는 진심을 내고, 상응(相應)하는 까닭에 좋고 나쁜 일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곧 방일하고 미혹한 행을 지으며, 다른 세상의 악한 일도 생각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 비복행은 무명이 연을 짓는다. 만약 다시 태어나는 가운데 좋은 일을 보거나 벗어나는 길[出道]을 보면 즉시에 복행(福行)과 부동행(不動行)을 지을 것이니, 혹은 설법을 듣고 깨닫거나 스스로 정려(靜慮)를 닦아 그의 깨달은 생각 가운데 선심(善心)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바른 사유[正思]가 아니다. 그는 이러한 까닭으로 다시 태어나는 미혹에 이끌린다. 이른바 다시 태어나는 몸에 대하여 좋은 일을 보는 것도 겁약하지 않기[不怯弱] 때문이며, 벗어나는 길을 보는 것도 겁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 복(福)․비복(非福)․부동행(不動行)의 악대(惡對:障碍)와 대치상(對治相) 따위는 6식신(識身) 안에서 함께 나고 함께 멸하면서 현재에 보식(報識:異熟識)이 생멸하는 가운데에 모든 행의 훈습(熏習)을 안치(安置)하는 것이다. 뒤에 새로 생길 모든 종자를 섭취(攝取)하고 상응(相應)한 까닭에 모든 종자는 이미 모두 섭취되었다. 뒤에 만약 출생하면 차례가 있을 것이니, 이른바 명색․6입․촉 등이 점차로 출생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 명색 따위는 현재의 보식 안에서 다만 인상(因相)만을 내고 과상(果相)은 없으므로 섭취연생이라고 한다. 비구여, 이것이 제1의 무명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에 대하여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이 전출연생과 화합전출에 대하여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어떤 이들은 현재의 몸에서 미혹(迷惑)을 일으켜 6입(入)과 촉(觸)을 연으로 하여 수(受)를 내고는 즉시 그 맛을 안다. 맛을 아는 까닭에 오는 세상[當來]에도 이러한 수를 구하며, 구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취(取)를 일으킨다. 낙수(樂受)에서 갈애(渴愛)를 연으로 하여 욕취(欲取)가 생기는데, 욕취라는 것은 욕(欲)을 분별하는 까닭에 그것이 우두머리가 되니, 바야흐로 욕계의 모든 번뇌가 있다. 만약 새로운 수[新受]를 연하면 무유갈애(無有渴愛)가 생기니, 함께 싫어하여 멀리 여의려는 행을 한다. 이는 염리와 상응하지만 도리는 아니다. 그가 갈애(渴愛)에 의지하여 그릇된 방편으로 구하기를 때가 없이 하면 곧 출리사견(出離邪見)과 결정사견(決定邪見)과 그 두 가지의 의지사견(依支邪見)[의(依)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합하여 네 가지가 된다.]이 있다.
이러한 갈애로 하여금 취(取)를 내게 하고, 만약 다시 취로써 의지를 삼으면 욕을 여의지 못한다. 이렇듯 하여 죽을 때에는 이 네 가지 소견과 욕계의 번뇌가 욕계의 갈애를 연으로 삼아 취를 낸다. 만약 욕탐을 여의거나 색탐을 여의면 색계의 갈애와 무색계의 갈애가 생겨서 항상 있게 된다. 만약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에서 번뇌가 생길 때에는 색계나 무색계의 취(取)를 일으킨다. 저들 색계나 무색계의 번뇌와 이들 모든 소견은 혹 색계의 갈애가 연이 되어 취를 내고, 혹은 무색계의 갈애가 연이 되어 취를 낸다. 이렇듯 갈애는 취의 연이 되는 까닭에 이미 모든 행을 얻고, 보식(報識)을 훈습하여 취와 함께 생긴다. 그 취를 포섭한 뒤에는 먼저부터 모든 행의 소유(所有)인 갈애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이곳저곳에 곧 나타나서 자기의 몸이 전출(轉出)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출생이 있으니, 그러므로 행(行)은 유(有)가 된다고 한다. 취의 힘으로 행은 이미 유가 되었으나, 여기에 서 죽으면 먼저부터 섭취한 것으로서 마땅히 출생할 것에는 연이 되어서 전출하게 하니, 그러므로 유는 생을 연한다고 한다. 전출하는 동안 출생하였을 때와 모양이 부서져서 예전과 달라지고, 다시 저쪽에 이르면 죽음이 있어 수명을 마치니, 그러므로 생은 노사(老死)를 연한다고 한다.
비구여, 이것이 제2의 무명이 전출연생과 화합전출에 대하여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전출연생 가운데의 갈애와 취(取) 두 가지를 모든 행의 연이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와 취의 분제(分齊)가 다른 까닭이다. 마치 욕계의 갈애와 취가 색계와 무색계의 부동행(不動行)을 짓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경계가 아닌 까닭이다. 마치 욕계의 갈애가 부동행 가운데에서 이렇듯이, 색계의 갈애는 무색계의 무색 갈애(渴愛)에서, 욕계․색계의 색의 갈애는 욕계에서도 그러하다.”
비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욕계의 갈애와 취는 복(福)․비복행(非福行)에게 연이 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현전에 있는 모든 경계에서 애(愛)와 불애(不愛)로 증상을 삼고, 욕계의 갈애가 있으므로 선하지 못한 근(根)을 일으켜 비복행을 짓는다. 모두 인과를 말미암으며, 비복행 안에서 그 악함을 모르는 까닭이니, 이른바 마음이 악하고 지은 바가 악한 것이다. 알지 못하는 까닭에 비복행을 일으키되 마음과 지은 악 따위는 오직 무명으로써 연을 삼지 않으니, 같은 경계가 아닌 까닭이다. 만약 욕계의 갈애로써 복행을 지으면 믿음을 의지하여야 지어지리라. 이른바 죽으면 반드시 생하고, 생하면 반드시 인연을 따르는 것임을 믿음으로써 포섭하는 까닭에, 갈애와 취는 다만 장부무기(障覆無記)라고 나는 시설한다. 만약 법이 장부무기라면 능히 행을 일으키지 못하리라. 인과와 복행 모두에 대하여 벗어남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사랑스러운 생(生)을 구하여 복행을 지으므로 비록 복행이라 하나 또한 무명으로써 연을 삼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색계의 갈애와 취(取)는 색계의 부동행에게 연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욕심을 여의지 않는 이는 색계의 갈애에 낳지 못하며, 머무를 곳을 얻지 못하여 저것이 있지 않을 때 주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색계의 부동행에게 연을 지어 그로 하여금 일어나게 할 수 없다. 색계의 갈애와 같이, 색계의 부동행에서나 무색계의 갈애가 무색계의 부동행에서도 그러하다. 색계의 몸과 무색계의 몸에 허물이 있는 곳에 좋은 일을 보고 생각하되, 혹 설법을 인하거나 혹 교수하는 법을 인하여 이렇게 바르지 못한 생각이 있어서 행에게 연이 된다. 그러나 이 바르지 못한 생각은 무명에게 끌리는 것으로 바르지 못한 생각의 결과는 무명과 함께 화합하여 부동행에게 연이 된다. 그러므로 저 부동행은 또한 무명으로써 연을 삼는다. 마땅히 알라. 비구여, 또 어떤 이는 무유갈애(無有渴愛)에 의지하여 복행과 부동행을 짓는다. 무유갈애에 의지하는 까닭에 모든 유의 허물을 보게 되니, 어찌 즐거이 오는 세상[當來]의 유를 다시 구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또 무유에 대하여 여실히 알지 못하고, 또 대치하는 도를 얻지 못한 까닭에 대치가 아닌 것에 대치라는 생각을 내어 곧 복행과 부동행을 짓는다. 비구여, 이러한 까닭에 다만 무명만이 행을 연할지언정 갈애와 취가 연이 되지 않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행이 6식신(識身) 안에서 화합하여 함께 낳는 것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행이 식을 연한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6식신 안에 복․비복․부동행이 화합하여 함께 생기고 함께 멸하거니와, 보식 안에서는 모든 행의 훈습(熏習)을 안치하여 뒤에 새롭고 다르게 출생할 보식에 대하여 이끄는 방편이 된다. 그러므로 행은 식을 연한다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명색․6입․촉․수의 모든 분이 식 가운데서 동시에 종자를 섭취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차례를 따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오는 세상에는 차례로 생겨 움직이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명색․6입․촉․수 따위를 선마(禪磨)라 말씀하시되, ‘한 번 받은 과보가 죽기 이전의 총명(總名)이니, 처음으로 생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함께 인(因)하여 수용(受用)하여 의지(依止)하는 것이며, 또 함께 인하여 수용하는 것인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명(名)만이 생하고 색(色)이 없으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명이 색(色) 가운데 머무르지 않으면, 선마가 상속하여 움직이되, 상응하지 못하리라.”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색(色)만이 생하고 명(名)이 없으면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이 만약 명과 합하지 않으면 섭지(攝持)를 입지 못하므로 반드시 부서져서 자라나지 못하리라.”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식(識)이 6입만을 연한다 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가 시작할 때에는 6입이 원만하지 못하고 오직 신근(身根)과 의근(意根)만이 있어서, 그에서 변하여 나온 것은 있을 수 없으니, 이 두 가지 근(根)의 체(體)는 명과 색뿐이다. 차례차례로 6입에게 만족하게 연이 되니, 그러므로 명색이 연이 되어 6입이 있다고 설한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6입만 만족하면 이 선마(禪磨)가 구경(究竟)한데, 무슨 까닭에 다시 촉과 수를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6입의 선마가 구경하면 수용(受用)하여 의지(依止)하는 것이 구경한 것이지만, 수용이 구경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수용이 구경하려면 함께 인(因)하여 받아들여야[領受] 하리라. 그러므로 수용하여 의지하는 것이 구경한 것과 수용이 구경하여야 선마가 구경하다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명이 연이 되어 갈애가 있다 하시고, 또한 수(受)를 연한다고도 하시니, 만약 무명만이 연이 되어 갈애가 있다고 하고, 수를 연하지 않는다 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세 가지의 갈애와 세 가지의 유(有)가 일시에 움직여 생기는[轉生] 까닭이다. 그러나 수가 연이 되어 갈애가 있는 까닭에 서로 의존하는 것[相待]이 힘이 되어 움직여 생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만 무명만이 연이 되어 갈애가 있다고 하지 않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수가 애만을 연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모든 갈애는 모두 수로써 연을 삼지만, 다시 갈애의 연이 되지 않는 수가 있으니, 곧 모든 갈애를 멸하게 하는 연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가 갈애만 연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갈애가 유에게만 연이 되고 취의 연이 되지 않는다 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는 구하는 것이니, 저 악취(惡趣)를 구하는 이는 없지만, 지은 비복행(非福行)으로 비록 선취(善趣)를 구하나, 항상 서로 어긋난다. 과보가 움직여 생길[轉生] 때에는 갈애로써 연을 삼지 않고 취로써 연을 삼아 그가 생겨나게 한다. 비구여, 말한 갈애가 없으면 구하는 것이 없다 하고, 이 구하는 것이 없는 것은 비록 어긋난 것이지만 복행과 부동행을 짓고 결과가 또한 움직여 생긴다. 이러한 인연으로 다만 갈애는 유에게 연이 되지 않는다.”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취가 연이 되어 유가 있고, 유가 연이 되어 생이 있다면, 무슨 까닭에 취와 유로써 집제(集諦)를 삼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가 네 가지의 업을 짓는 까닭이니, 첫째는 자기 몸의 경계인 수(受) 안에서 맛에 탐착하고 얽매이는 업을 짓는 것이며, 둘째는 갈애가 취(取) 안에서 출현하게[等起] 하는 업을 짓는 것이며, 셋째는 행이 유(有) 안에서 끌어당기는[牽引] 업을 짓는 것이며, 넷째는 죽은 뒤에 상속하여 속박하는 업을 짓는 것이니, 그러므로 갈애만을 집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생(生)이 있고 노(老)가 있고 사(死)가 있는데, 무슨 까닭에 명색과 6입과 촉과 수 등 선마의 모습[相]에서 노와 사의 이름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에게 있는 태어난 것의 모습[出生相]은 세 가지의 괴로움으로써 속박에 따르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생은 어떠한 고통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행고(行苦)를 나타낸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노(老)는 어떠한 고통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괴고(壞苦)를 나타낸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사(死)는 어떠한 괴로움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고고(苦苦)를 나타낸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네 가지의 출생한 모습은 생․노․사와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네 가지의 출생하는 모습은 차례를 따라서 생기며, 또는 비슷한 것을 따라서 생긴다. 그가 출생할 때의 출생하는 모습이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출생하는 모습이 차례로 생긴다 하시니, 어떠한 것이 비슷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가 처음에 종자를 내리면 곧 생이 있으니, 그가 차례로 자라나서 생하고, 그가 차례로 태에서 나오고, 그가 차례로 자라나서 생하고, 그가 자라나서는 능히 세속을 수용하여 생하니, 이것이 차례로 생하는 것이다. 또 어디에서 생기는가? 중(衆:蘊)과 계(界)와 입(入)에서 생기지만, 나[我]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5중(衆)들이 자라나고 흘러가는 것이 무상한 까닭이며, 명근(命根)의 힘이 한량 있는 시간에 머무는 것도 무상에서 생기는 까닭이다. 비구여, 저 네 가지의 출생하는 모습은 시분(時分)이 부서지면 곧 다섯 가지의 쇠악(衰惡)을 이루니, 이것을 늙는다[老]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의 쇠악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첫째는 터럭이 쇠악함이니 머리가 빠지고 빛깔이 줄어드는 까닭이며, 둘째는 의지[依]가 쇠악함이니[의(依)는 몸≺身≻을 이른다.] 육체의 색과 힘이 주는 까닭이며, 셋째는 업이 쇠악함이니, 말할 때에는 상기가 되고 숨이 차며, 섰을 때는 소의 잔등과 같이 굽어지는 까닭이며, 앉았을 때에 앞으로 숙여지는 까닭이며, 다닐 때에는 지팡이를 의지하는 까닭이며, 의지는 얽매이고 생각은 약하고 적어지는 까닭이며, 넷째는 수용이 쇠악함이니 현전의 여러 가지 살림살이[資具]를 수용함이 변변치 못한 까닭이며, 모든 기뻐할 만한 유희에 대하여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색근(色根)이 자기 경계에서 속히 행하지 못하거나 행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다섯째는 명근(命根)이 쇠악함이니 목숨이 다하고 죽음이 가까워서 조그만 죽을 인연을 견디지 못하는 까닭이다. 비구여, 저 네 가지의 출생하는 모습 가운데 또 여섯 가지 죽음의 차별이 있으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진경사(盡竟死)이며, 둘째는 부진경사(不盡竟死)이며, 셋째는 자상사(自相死)이며, 넷째는 부진경사분(不盡竟死分)이며, 다섯째는 진경사분(盡竟死分)이며, 여섯째는 비시시사(非時時死)이다. 비구여, 그 중에 자상사라는 것은 식이 몸 안에서 나와 딴 곳으로 가고 색근(色根)이 멸하여 부서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비구여, 명색 등이 출생하는 모습이 생․노․사와 더불어 이러한 차별이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세 가지의 갈애가 모두 연이 되어 생에게 원인이 된다 하셨는데 무슨 까닭에 오직 욕계의 생만을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욕계의 생은 거친 까닭이며, 가히 찬탄할 수 없고, 또 알게 할 수 없는 까닭이며, 돌아오기[廻還] 때문에 해탈의 법체가 아닌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이 섭취연생(攝聚緣生)과 전출(轉出)을 12분(分)으로 말하건대 몇 가지가 능섭취분(能攝聚分:能引)이며, 몇 가지가 소섭취분(所攝聚分:所引)이며, 몇 가지가 능전출분(能轉出分:能生)이며, 몇 가지가 소전출분(所轉出分:所生)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무명과 행과 그리고 일부분의 식은 능섭취분이며, 일부분의 식과 명색과 6입과 촉과 수는 소섭취분이며, 일부분의 수와 갈애와 취와 유는 능전출분이며, 생․노․사는 소전출분이며, 또한 일부분의 명색․6입․촉․수도 소전출분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들 능섭취분과 능전출분은 일시에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차례로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일시에 일어나는 것을 차례로 말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능섭취분과 능전출분이 이미 일시에 생긴다면 무슨 까닭에 처음에 능섭취분을 말씀하시고, 뒤에 능전출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소섭취분을 말미암아 다시 전출이 있으니, 그러므로 소섭취를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명은 바르지 못한 생각을 연하는데, 무슨 까닭에 무명만 연이 된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 무명이 바르지 못한 생각을 말미암아 자기를 이끌고, 행에게 연이 되고, 무명에서 생긴 촉이 수와 갈애에게 연이 되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간략히 말하면 몇 가지의 모양으로 연생을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략 세 가지의 상을 말하면 연생을 알 수 있으니, 첫째는 부동연생(不動緣生)의 모습[니리하(泥梨賀)를 번역하면 부동이니, 이것은 공(空)의 뜻이다. 공인 까닭에 움직임이 없다.]이며, 둘째는 무상연생(無常緣生)의 모습이며, 셋째는 감능연생(堪能緣生)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네 가지의 연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인연과 무간연(無間緣)[구역은 차제연(次第緣)이다.]과 반연(攀緣)과 증상연(增上緣)[또 생연(生緣)이라고도 한다.]입니다. 대덕이시여, 그 중의 어떠한 연들로써 무명이 행에게 연이 되며 내지 어떠한 연(緣)들로써 생이 노사에게 연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모든 행은 더욱 같은 상[同相]을 움직여 생기는[轉生] 까닭에 내가 네 가지의 연을 말하니, 이들 뜻에서 오직 증상연(增上緣)만이 무명이 행을 연하고 내지 생이 연이 되어 노사가 있다고 설한다. 그 증상연에 다시 불상착(不相著)과 상착(相著)이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불상착증상연(不相著增上緣)이며, 어떤 것이 상착증상연(相著增上緣)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바르지 못한 생각이 생기기 전에는 순면(順眠:수면)이 모든 행에 집착[著]하지 않고 연이 된다. 만약 생긴 뒤에는 곧 서로가 집착[著]한다. 비구여, 그 바르지 못한 생각이 행과 합하고 6식신(識身)과 화합하여 함께 나니, 생긴 것이 멸하지 않으면 식과 서로 집착하지 않고 연을 지으며, 만약 생긴 것이 멸하면 곧 서로가 집착한다. 비구여, 죽음에 이르지 않은 식(識)은 명색(名色)에게 집착하여 연을 짓는 것이 아니다.[범본(梵本)에는 “식(識)은 명색(名色)에게 집착하여 연을 짓는 것”이라는 이 구절≺句≻이 역시 없다.] 식이 명색에 대한 것이 이와 같은 것처럼 거두어 모인[攝聚:所引] 명색(名色)이 전출(轉出:所生)한 명색에게도 그러하며, 명색이 명색에 그러한 것과 같이 6입(入)이 6입에게, 촉(觸)이 촉에게, 수(受)가 수에게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이 행에 그러한 것과 같이 무명이 갈애에게, 갈애가 취에게, 취가 유에게도 또한 그러하다. 식이 명색에 그러함과 같이 명색들이 명색들에게도 그러하며, 유가 생에게도 그러하다. 또 비구여, 생 가운데 태속에서나 동자일 때나 소년일 때는 노사(老死)와 서로 집착하지 않고 연이 되거니와, 만약 근(根)이 익어지고 수명이 다할 때에는 서로 집착[著]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일찍이 공인(共因)․공연(共緣)․공유(共由)의 법문에서 갈애를 인하는 까닭에 법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무슨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유(有)가 포섭하는 업은 갈애를 인하는 까닭이라 하니, 이것이 비밀한 뜻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인(因)은 어떠한 뜻으로써 볼 수 있으며, 연(緣)은 어떠한 뜻으로써 볼 수 있으며, 유(由)는 어떠한 뜻으로써 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뒤에 날 곳의 종자를 안치(安置)하는 까닭에 인의 뜻을 볼 수 있으며, 반드시 주지(住持)하여 그 생이 전출(轉出)하게 하는 까닭에 연의 뜻을 볼 수 있으며, 죽은 뒤에 태어날 곳으로 나아가고 향하여 태어나게 하는 까닭에 유의 뜻을 볼 수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연생(緣生)이란 어떠한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제각기 인연이 있어 함께 모이고 상속하는 까닭에 이 모든 분(分)이 생기는 것이다.”
연생초승분법본경 하권
달마급다 한역
김성구 번역
비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오직 이 출생하여 상속하는 연생(緣生)뿐입니까, 다시 다른 연생(緣生)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덟 가지 부문의 연생을 말하리라. 첫째는 세속을 수용함이니, 이른바 눈이 색을 연하여 안식(眼識)을 내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있으며, 촉이 연이 되어 수가 있는, 이와 같은 것들이며, 둘째는 도와서 지니는 연생이니, 마치 4식(食)이 연이 되어서 근(根)의 대(大)가 머무르게 되며 자라남과 같은 것이며, 셋째는 도와서 지니는 원인의 연생이니, 마치 모든 곡식의 종자가 논이나 물의 연이 있는 까닭에 싹 따위가 있음과 같은 것이며, 넷째는 출생함이 상속하여 얽매이는 연생이니, 마치 능섭취분(能攝聚分:能引)과 능전출분(能轉出分:能生)이 소섭취(所攝聚分:所引)와 소전출(所轉出分:所生)을 내는 것과 같은 것이며, 다섯째는 출생한 것이 계속하여 얽매이는 연생이니, 마치 세계의 인이나 연이 차례차례 이루어지고 부서짐과 같아서 가히 알 것이며, 여섯째는 출생한 이의 들어가는 연생이니, 마치 불선(不善)과 선(善)의 유루업(有漏業)을 말미암아 3악취(惡趣)와 천취(天趣)와 인취(人趣)들이 차별되어서 가히 알 것이며, 일곱째는 청정한 이의 연생이니, 마치 남의 소리와 스스로의 바른 생각으로써 인을 삼아서 바른 소견이 생기는 까닭에 무명이 없어지고, 무명이 멸하는 까닭에 행이 멸하고, 이와 같이 하여 내지 생이 멸하는 까닭에 노사(老死)가 멸함과 같은 것이다.”
비구가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차례대로 무명 등이 연이 되어 행 등이 생긴 것과 같이, 역시 차례대로 이와 같이 멸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렇지 않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저것이 어찌하여 차례로 멸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분(分)은 공능[能]을 냄이 없는 까닭에 뒤의 분(分)으로 곧 무생법(無生法)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비구여, 생기지 않는 모습이 멸할 적에 차례로 움직일 까닭이 없다.
여덟째는 자재한 이의 연생[自在者緣生]이니, 마치 비구가 생각을 잘 다스려 선정을 닦으면, 닦는 것이 연이 되는 것과 같다. 만약 이와 같이 믿고 아는 것[信解]을 따르면 곧 이와 같이 저 개별적인 것[別異]이 없게 된다. 비구여, 이것이 내가 말하는 여덟 가지 부분의 연생이라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세존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업을 인하는 까닭에 생을 받고, 갈애를 인하는 까닭에 전출(轉出)한다’ 하셨다면, 어떠한 비밀한 뜻이 있기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무명이 연이 되는 까닭에 갖가지의 복(福)․비복(非福)․부동행(不動行)이 옛적에 유(有) 안에서 이미 짓고 이미 모아서, 갖가지의 몸을 받을 종자를 모아서 포섭하였다. 그 중에 갈애(渴愛)가 아직 소멸되지 않았으면 갈애를 인하는 까닭에 도리어 유에서 그 몸을 전출(轉出) 하니, 저 행의 공능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갈애가 없지 않으므로 ‘업을 인하는 까닭에 생을 받고, 갈애를 인하는 까닭에 전출한다’라고 하였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갈애를 인하는 까닭에 전출한다면, 무엇 때문에 취만이 연이 되어 유가 있다 하시고, 갈애는 연이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갈애에 만약 취가 없으면 능히 비복행을 연하여 악취에 태어나게 하지 못하리라. 또 갈애(渴愛)가 없고 취가 없으면 복과 부동행이 연이 되어서 능히 비정지(非定地:不定地)의 몸과 정지(定地)의 몸인 두 가지 선취(善趣)에 태어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갈애만이 연이 되어 유가 있는 것이 아니며, 취도 또한 연이 되어 유가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일찍이 대유법문(大由法門)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난타야, 저 모든 중생들이 모든 중생들의 종류에서 태어나되, 혹 생이 없되 생이 있는 이도 있거니와, 만약 일체의 종류가 모두 없으면 생이 연이 되어 노사(老死)가 있는 것 역시 가히 알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어떠한 비밀한 뜻이 있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비밀한 뜻이란 섭취(攝聚)의 생과 전출(轉出)의 생이며, 노사의 증상연에 대하여 서로 집착하지 않음[不相著]과 서로 집착함[相著]이니, 이것이 비밀한 뜻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미 연생의 어구의 뜻[句義]은 말씀하셨으나, 연생의 뜻[義]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대략 말하건대 열한 가지의 연생의 뜻이 있으니, 이른바 작자(作者)가 없는 것이 연생의 뜻이며, 원인과 함께 는 뜻과 중생이 없는 뜻과 다른 이가 내는 뜻과 움직이지 않는 뜻과 무상한 뜻과 생각마다 공한 뜻과 인과가 상속하여 끊임없는 뜻과 갖가지 인과의 뜻과 비슷한 인과의 뜻과 결정된 인과의 뜻이 연생의 이치이니, 이렇게 보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심히 깊은 것은 이 연생이라 하셨으니, 이 연생의 심히 깊은 뜻을 어떻게 하면 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는 열 한가지의 뜻으로 다섯 가지의 매우 깊음을 볼 수 있으니, 이른바 인(因)이 매우 깊고, 상(相)이 매우 깊고, 생(生)이 매우 깊고, 전주(轉住)가 매우 깊고, 발전(發轉)이 매우 깊은 것이다. 비구여, 다시 다섯 가지의 연생이 매우 깊은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상(相)이 매우 깊고, 섭종(攝種)이 매우 깊고, 인(因)이 매우 깊고, 과(果)가 매우 깊고, 전출(轉出)과 인과(因果)와 차별(差別 )과 대치(對治)가 매우 깊은 것이다. 비구여, 다시 다섯 가지의 연생의 매우 깊음이 있으니, 이른바 섭(攝)이 매우 깊고, 순(順)이 매우 깊고, 역(逆)이 매우 깊고, 취(取)가 매우 깊고, 경계(境界)가 매우 깊으니,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등기가 특별한 점[等起殊勝]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무명의 전주(轉住)가 특별한 점[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대략 말하건대 무명에 네 가지의 전주(轉住)가 있으니, 이른바 순면전주(順眠轉住)[구역(舊譯) 이름은 사(使)이다.]와 기처전주(起處轉住)[구역은 박(縛)이라고 하며, 또한 상심(上心)이라고도 한다.]와 상응전주(相應轉住)와 독불공전주(獨不共轉住)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누가 전주하면서 무명으로 연을 삼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바깥[外] 범부(凡夫)가 바르지 못한 생각으로써 네 가지의 무명을 이끌어 복․비복․부동행에게 연이 되어 준다. 비구여, 이 바깥 범부가 만약 복․부동행과 상응하는 선업의 마음일지라도 이는 바르지 못한 생각의 기분이다. 비구여, 내법(內法)의 방일한 범부는 불공무명(不共無明)은 차치(且置)하고, 나머지 무명에서 방일을 이끌어 내고 행에게 연이 된다. 비구여, 이 내법의 방일하지 않는 범부인 학자와 성학자(聖學者)가 망념(妄念)으로 세 가지의 무명을 이끌어서 비복에게 연이 된다. 그러나 그 비복은 능히 악취의 유가 되지 못하니, 이러한 까닭에 비복(非福)을 무명이 연이 되어 행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일찍이 말한 불공무명(不共無明)은 내법의 방일하지 않는 범부인 학자일지라도 끊지 못하고 성학자라야 영원히 끊는다 고 한다. 방일하지 않는 범부가 만약 복행과 부동행을 내면 바른 법에 대하여 바른 생각과 상응하는 마음을 내게 되니, 그때 해탈의 인(因)과 해탈의 회향[向]도 모두 발생한다. 저들이 늘어나는[增上] 까닭에 두 가지의 선취(善趣)가 생겨 곧 전출(轉出)하거니와, 네 가지의 무명이 늘어나는 까닭은 끊지 못한다. 그러나 비구여, 성학자가 불공무명을 끊은 까닭에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있었던 옛 업은 순면(順眠:睡眠)의 힘을 말미암아 제거하지 못했으면 그를 자주자주 접촉함으로써 다하게 한다. 이와 같이 무명이 행을 연함은 생마다 점점 줄어들어 다시 늘어나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내법(內法)의 학자가 무명이 행을 연하지 않는 줄을 알아야 한다. 비구여, 바깥의 범부를 위하는 까닭에 내가 발기하여 물들고 더러운 연생을 수순하여 만족히 말하였거니와, 내법의 무리를 위함이 아니다.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전주가 특별한 점이다.”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전도가 특별한 점[顚倒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들 네 가지의 무명은 모든 제법[諦] 가운데서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비방하는 두 가지의 전도가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있는 것을 없다 하는 두 가지의 전도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네 가지의 인연인 까닭이니, 이른바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이르고, 법을 법이 아니라 보며, 천취(天趣)와 해탈 가운데에서 방편이 아닌 것을 방편으로 보는 것이니, 이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는 전도(顚倒)이며, 삿된 소견인 까닭에 모두가 비방하여 말하기를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있는 것을 비방하여 없다고 하는 전도이다.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전도가 특별한 점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상모가 특별한 점[相貌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두 가지로써 볼 수 있으니, 첫째는 미세한 자상(自相)의 차별이며, 둘째는 애(愛)와 불애(不愛)의 두 가지를 겸한 전도된 경계의 동상(同相)이 차별됨이다. 비구여, 이렇게 하여 기처(起處)의 무명도 미세하여 알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순면이겠는가. 상응(相應)의 무명도 미세하여 알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불공이겠는가. 모든 애와 불애와 두 가지를 겸한 것이 전도된 경계 위에 진실상을 덮고 전도상(顚倒相)을 보되 동등하게 움직여 운행[轉行]하니, 그 밖의 번뇌인즉 그렇지 않다. 만약 신견(身見) 따위의 동상(同相) 번뇌도 또한 무명으로 의지를 삼아 전생케 하니, 이것이 무명의 상모가 특별한 점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작업이 특별한 점[作業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대략 말하건대 무명에 두 가지의 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일체의 종자를 일으키고 굴려 의지의 업이 되어 주는 무명이며, 둘째는 일체의 종자를 등지에 굴려 장애하는 업이 되어 주는 무명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의 종자를 일으키고 굴리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혹은 처전생(處轉生)이거나 혹은 전생(轉生)이거나 여전생(如轉生)을 일체의 종자가 일어나고 구르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처소에 전생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유전(流轉)하는 갈래에서 자아가 분별하는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법이 전생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외의 모든 입(入)으로서 자아의 섭취(攝聚)를 말미암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떻게 전생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업과 과보가 상속하여 일어나고 구르니, 자아의 분별과 삿된 분별을 쓰는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 종자가 등져서[背] 구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대략 네 가지의 등져서 구르는 것을 말할 것이니, 이른바 첫째는 의지를 등져서 구름이며, 둘째는 연을 등져서 구름이며, 셋째는 사념(思念)을 등져서 구름이며, 넷째는 과성(果成)을 등져서 구름이다.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작업이 특별한 점[作業殊勝]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악대가 특별한 점[惡對殊勝:障礙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수승한 법을 악대하는 무명과 자세한 법을 악대하는 무명이 있으니, 이 두 가지를 보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수승한 법을 악대하는 무명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5근(根) 안에서 이것으로써 섭취하고, 이것으로써 화합하는 것은 이른바 혜근인데, 그를 악대하는 것은 무명이다. 그러므로 수승한 법을 악대한다고 말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자세한 법을 악대하는 무명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듣는 지혜와 생각하는 지혜와 닦는 지혜를 악대하는 것은 무명이니, 그러므로 자세한 법을 악대한다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지혜가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면, 그것이 없는 것이 어찌하여 무명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렇지 않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지혜가 없는 것이 무명이라면, 어떠한 허물이 있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비구여, 만약 그러하다면 무명의 모습이 안립(安立)하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비구여, 문체지(聞體智)에는 사체지(思體智)가 없고, 사체지에는 수체지(修體智)가 없으며, 세간의 수체지에는 출세간의 수체지가 없고, 출세간의 유학[學]의 지혜에는 무학(無學)의 지혜가 없으며, 무학 성문지(聲聞智)의 지혜에는 여래의 지혜가 없다. 그가 이렇게 되면 그는 지혜가 있기도 하고 그는 지혜가 없기도 할 것이니, 이렇듯 무명이 있는 까닭에 그 모양이 안립할 수 있다. 또 비구여, 내가 세 가지 선근(善根)에서 무치(無癡)를 말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어리석음[癡]이 없는 것을 무치라 하였으나 어리석음이 없는 이것이 그 무치라 하지 않았다. 이제 또한 명(明)이 없으므로 무명이라 하지는 않는다. 또 심수법(心數法)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무명이라 하고, 또는 심수법이 진실을 아는 까닭에 지혜라 한다. 또 비구여, 만약 반드시 없는 것이 무명이라면, 이 안의 열한 가지의 무명이 특별함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明)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악대가 특별한 점[惡對殊勝]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순박이 특별한 점[順縛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유정취(有頂趣)에 이르도록 삼계의 중생이 이들 진리에 대하여 만약 지혜가 없으면 저들 빈틈이 없는 순면(順眠)이 항상 속박한다. 또한 그 까닭에 그 중생들을 구족박(具足縛)이라고 한다. 또 선취(善趣)와 악취(惡趣)의 인과의 부분에서 지혜가 없으되 저 미세한 이는 무색계의 중생이며, 다음에 중간 또래는 색계이며, 가장 높은 것은 욕계이다. 그러나 저들 미세와 중간과 가장 높은 것이 모두 오는 세상[當來]에 태어나면 법이 본래 그러하여
속박에 따르게 된다. 또 비구여, 만약 아라한이 모든 누(漏)가 다하였을지라도 응지지장(應知之障)은 또한 무명의 속박에 따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명은 멀리서부터 행하는 속박임을 또한 가히 볼 수 있으리라.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순박이 특별한 점이다.”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대치가 특별한 점[對治殊勝]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두 가지의 지혜가 있어 무명을 대치하니, 첫째는 남의 음성을 인하거나 혹은 인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소분법계지(少分法界智)이며, 둘째는 남의 음성을 의지하되 소분만이 아니니, 이는 무량법계지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소분법계지는 무엇을 반연하며, 어떠한 모습이며, 어떠한 업을 지으며,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소분법계지는 4념(念)을 반연하고, 열여섯 가지의 행상이며, 무명과 함께 번뇌의 업에 대하여 모든 잡염을 내고, 멀리 여의는 업을 지으니, 이렇게 보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생고(生苦)는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내인고(內因苦)가 의지하고, 외인고(外因苦)가 의지하며, 저 두 가지의 고(苦)가 의지해야만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내인고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병고(病苦)․노고(老苦)․사고(死苦)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외인고(外因苦)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운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不愛和合苦]과 사랑하는 이를 여의는 괴로움[愛別離苦]과 구하려 할 때에 얻지 못하는 괴로움[若欲求時不得苦]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저 두 가지의 의지가 되는 고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간략히 말하건대 5수(受:陰)의 무리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갈애(渴愛)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현재의 몸에서 탐애(貪愛)가 있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갱유(更有)의 갈애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오는 세상의 몸에 대하여 원하고 구함이 있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희욕(喜欲)과 함께 행하는 갈애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미 섭취에서 현재의 경계를 수용하는 동안 맛들이고 집착함이 있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곳곳에서 희욕하는 갈애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갖가지 얻지 못한 경계에서 갖가지로 추구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러한 갈애는 어찌하여야 남음이 없이 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견도(見道)에서 응당히 끊어야 할 번뇌가 끊어져야만 하며, 하분(下分)과 상분(上分)의 결(結:번뇌)이 끊어져야만 하며, 오는 세상의 고과(苦果)인 갈애가 끊어져야만 하며, 현재의 고과(苦果)인 갈애가 끊어져야만 끊어진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버리는 것[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견도(見道)에서 마땅히 끊어야 할 번뇌가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구경변(究竟邊)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수도(修道)에서 마땅히 끊어야 할 번뇌가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다하는 것[盡]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하분결(下分結)이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여의는 것[離]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상분결(上分結)이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멸하는 것[滅]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필경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적정한 것[寂]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미래의 고과(苦果)인 갈애가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몰[沒]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현재의 고과인 갈애가 끊어져야 한다면, 곧 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보는 것[正見]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증견시(證見時)의 앞에 행하는 지혜[前行智]와 증견시의 지혜[智]와 증견시의 뒤에 얻는 지혜[後得智]가 알아야 할 방편과 교행(敎行)을 초월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분별하는 것[正分別]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3보(寶) 가운데에서 바르게 알고 난 뒤라면 바른 믿음에 의지하는 까닭에 그 공덕을 따라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이론(異論:외도의 이론) 따위의 가르침을 초월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말하는 것[正語]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성현께서 사랑하시는 계(戒)와 무루(無漏)에 포섭되는 무루의 사유를 함께 굴리면 네 가지의 구업(口業)을 멀리 여의고 악취(惡趣)를 초월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일하는 것[正業]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성현께서 사랑하시는 계와 무루에 포섭되는 무루의 사유를 함께 굴리면 이는 세 가지의 신업(身業)을 멀리 여의고 악취를 초월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생활하는 것[正命]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성현께서 사랑하시는 계와 무루에 포섭되는 무루의 사유를 함께 굴리면 이는 삿된 생활[邪命]로 일어난 몸과 입의 업을 멀리하고 악취를 초월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일으키는 것[正發:正勤]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위의 해탈에 의지하여 즐기고 욕구하는 이는 정진을 일으켜 악대(樂對)를 멀리하고 대치를 만족히 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기억하는 것[正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지관(止觀)을 상응할 때에는 세 가지 모양[相]으로 의지를 삼고, 때때로 이 세 가지의 모양에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함께 정주(正住)에 들면 경계를 연(緣)하는 가운데 심수(心數:心所)를 잃지 않고, 수도(修道)하는 동안에 불상응(不相應)을 초월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게 집중하는 것[正定]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이들 일곱 가지 선정을 갖추어 닦고 일심으로 전향(專向)하고. 내지 이들 일곱 가지[七種]와 차별된 행에게까지 의지가 되며, 특별한 공덕을 내는 데 의지가 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그러하다면 염처(念處)와 모든 각조법(覺助法)은 모두 도에 포섭되는데, 무슨 까닭에 오직 성스러운 8분도(分道)만을 도(道)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성스러운 8분도는 모든 각조법을 포섭하는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러한 괴로움 가운데 네 가지의 모습이 있으니, 그 중 어느 것이 무상(無常)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괴로움 가운데 생멸하는 법을 보면, 그것이 무상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고(苦)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저들 생멸하는 법에 의하여 의지를 삼고, 만약 세 가지의 괴로움이 속박 되어 있음[順縛]을 보면, 그것이 고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공(空)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괴로운 가운데에서 만약 아(我)를 떠난 물건을 보면, 그것이 공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아(無我)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괴로운 가운데서 아(我) 자체를 여읜 모습을 보면, 그것이 무아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와 같이 네 가지가 집(集)의 모습이 되니, 그 중 어떤 것이 인(因)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갈애에서 고의 종자를 심는 것을 보면,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집(集)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에서 만약 상속이 일어나는 인(因)의 체(體)를 보면,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생(生)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에서 만약 5취(趣)의 차별이 일어나는 인의 체를 보면,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연(緣)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에서 만약 다른 연을 집지하는 인의 체를 보면,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와 같이 멸제(滅諦)에도 네 가지의 모습이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이 멸(滅)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해탈 가운데서 만약 번뇌를 멸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그치는[止]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해탈하는 가운데 괴로움 그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미묘한[妙]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해탈해서 만약 죄 없이 맑은 업을 보면, 이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벗어난[出]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해탈해서 만약 무상을 벗어나면 그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와 같이 네 가지로써 도제(道諦)의 모습을 삼으면 그 중에 어떤 것이 도(道)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도제에서 만약 소지(所知)와 상응하는 것과 전도(顚倒)가 없음을 보면, 이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여(如)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도제에서 만약 세상을 벗어나는 무루(無漏)를 보면, 이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흔적[跡]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도제 가운데서 만약 순행(順行)을 행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승(乘)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도제 가운데서 만약 위없음을 보면, 이것이 그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다만 4성제(聖諦)만을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인과(因果)와 함께 염(染)․정(淨)이 모두 이에 포섭되는 까닭이다.”[인과와 함께한다는 것은 물들면 곧 인과도 함께 물들고, 깨끗하면 곧 인과도 함께 깨끗해지는 까닭에 함께한다고 하였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 고제들은 무슨 까닭에 점차로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병(病)과 원인[由]과 벗어남[脫]과 약(藥)과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병은 고(苦)이고, 원인은 집(集)이며, 벗어남은 멸(滅)이고, 약은 도(道)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 4성제는 일시에 깨칩니까, 차례로 깨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도리가 있는 까닭에 일시에 깨치고, 도리가 있는 까닭에 차례로 깨친다.”[도리(道理) 역시 인연(因緣)이라 하고, 또한 방편(方便)이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일시에 깨치려면 어떠한 도리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안으로부터 제법(諦法)을 아는 참된 지혜의 경계와 반연은 비안립(非安立)의 뜻으로서 총상(總相)을 반연하는 까닭에 일시에 깨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점차로 깨치려면 어떠한 도리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미 치지(治智)와 후득(後得)을 닦은 이는 자체상(自體相)의 인과(因果)에서 그 모습을 관찰하되 총상으로 반연하지 않는 까닭에 점차로 깨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4성제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까닭에 다시 2제(諦)인 세속제[世諦]와 최승의제(最勝義諦)를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법주지(法住智)의 경계라면 그는 세속제이며, 만약 안으로부터의 최승의지의 경계이거나 비안립지(非安立智)의 경계라면 그것은 최승의제이니,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러한 4성제는 성인[聖]이 아닌 이에게도 진리[諦]이며, 성인에게도 진리인데, 무슨 까닭에 이 성스러움으로써 이 제를 말씀하십니까? 성스러운 진리[聖諦]인 까닭에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비록 성자(聖者)가 아닐지라도 또한 이 진리의 법체(法體) 안에 지혜는 없지만 믿음이 있는 까닭이며, 성자는 이 법체 안에 지혜가 있고 믿음도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이들을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니, 응당히 보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소분(少分)이 아닌 무량한 법계(法界)의 지혜는 무엇을 반연하며, 어떠한 모양이며, 어떠한 업을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또한 4성제로써 반연(攀緣)을 삼고, 청정히 제(諦)를 생각하는 것으로 모습을 삼고, 일체 종류의 제에 들게 하는 것으로 모습을 삼고, 일체 중생에게 일체의 의리(義利)를 짓는 것으로 모습을 삼는다. 또 소분의 법계의 지혜는 성문(聲聞)이 중생의 의리를 등지지 않고 현전하지 않는 것으로 모습을 삼고, 연각은 중생의 의리를 등지는 것으로 모습을 삼는다. 또 무량한 법계의 지혜는 멀리 여의는 것으로 업을 삼으니, 이른바 일체 종류의 번뇌와 소응지(所應知)의 장애를 여의는 까닭이며, 의지가 되는 것으로 업을 삼으니, 이른바 일체 종류를 변지(遍智)로써 선정(善淨)의 법계에 이르게 하되 의지가 되는 까닭이며, 덮어서 보호하는 것으로써 업을 삼으니, 이른바 모든 중생들이 모든 곳에서 고뇌에 시달리는 것을 보호하는 까닭이다. 비구여, 이것이 무명의 대치가 특별한 점[對治殊勝]이다.”
여러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거룩하십니다. 대덕이시여.”
여러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아주 기뻐하며 묵연히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기뻐 모두가 크게 환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