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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8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주일 아침,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며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립니다.
주님의 보혈이 이처럼 성령의 소낙비가 되어 나의 의와 자기주장의지 등 옛 사람으로 행한 죄의 티끌들을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공동체로 모이는 주일 예배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소낙비가 부어지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되게 하소서.
아직 주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은혜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1-11
제목 : 현세적 회복을 구하나, 생명의 회복을 주심.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의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나의 묵상
데오빌로 각하여, 제가 저번에 썼던 글에서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가르치신 말씀을 비롯하여 주께서 선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교훈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예수님과 관련된 내용을 다 기록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 받으신 후에 사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으며 또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모이셨을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려라.
약속의 내용이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너희는 얼마 있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그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이에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오직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므로 너희가 알 것이 아니다.
다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름이 주님을 가려서 더 이상 주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올라가실 때에 사도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 곁에 섰습니다.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은 사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여, 여러분이 어찌하여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본서 저자인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기 전에 먼저 누가복음을 써서 데오빌로에게 보냈었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데오스와 필로스라는 합성어로서 데오스는 하나님을 뜻하며 필로스는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한 사람의 이름인 것이다.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불렀다.
이런 면에서 데오빌로는 로마의 고위관리인 것이 분명하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모였을 때에 주님께 묻는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므로 너희가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예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회복하다’는 말은 헬라어 아포카디스테미로써 이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쓰이며 마지막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바른 질서가 회복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불의의 세력을 멸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다.
제자들과 주님께서 대화를 나누는 시점은 아직 성령이 임하시기 전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것을 정치적 회복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때가,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로마의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인가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는 눅 24:21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이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참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지 못하고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정치적 메시야 곧 민속 메시야로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처럼 예수님을 오해한 자였다.
나는 모태신앙인으로써 부모님 덕에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접하게 되었고 예수는 나를 잘 되게 해주는 그런 신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회복하여 다윗 시대의 번영을 구가하게 해주는 그런 민속 메시야로 알았던 유대인들이나 제자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공부를 잘 못하는 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면 공부를 잘 하게 되고, 사업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 기도하면 바닥을 치던 사업이 불이 활활 타오르듯 일어나게 되며, 건강을 잃고 아픈 이들이 기도를 하면 건강이 회복되어 나음을 입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런 신앙은 철저하게 이 세상 곧 만물 안에 갇힌 신앙으로써 내가 믿는 주님은 만물 위에 계신 분이신데 나는 그 주님을 알지 못하여 땅으로 끌어내려 만물 안에 갇힌 신으로 오해하며 신앙하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소속이 다르며 본질이 다르고 생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 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위로부터 나신 이는 항상 만물 위에 계시지만, 아래에서 난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만 생각하고 말할 뿐이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이처럼 주님께서는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얻어 ‘태어난 생명’을 가지셨지만, 나는 아담의 본성을 가지고 모태로부터 태어난 ‘만들어진 생명’이기에 그런 것은 당연하다.
이는 자신이 보고 아는 것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의 석학이자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을 잘 몰랐다.
그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면서 놀라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예수님과의 대화가 뚝뚝 끊어지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거듭남(헬, 아노쎈)은 위로부터 태어나다는 뜻으로써 니고데모는 이를 오해하고 있었다.
태어난다는 말 자체를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것 외에 다른 것으로 태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요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는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듭남은 그런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거듭나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자동으로 거듭나는 줄 알았다.
성경을 깊이 있게 묵상하지 않았고 제대로 읽지도 않았기에 거듭남이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라는 의미 또한 잘 몰랐던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성령세례라는 것이 성령을 통하여 방언이나 무슨 불덩이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상을 올라가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거하는 땅, 만물 안, 이 세상으로 하늘, 만물 위, 창세전에 계신 주님을 자꾸만 끌어내려서 만물 안에 가두려고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님이 나를 잘 되게 하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최고의 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때는 미국의 조엘 오스틴이라는 사람이 쓴 ‘긍정의 힘’이나 ‘잘 되는 나’라는 책을 섭렵하면서 이 땅에서 어떻게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주님의 도우심을 입으면 내가 잘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잘 되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을 알고 보니까 이런 사상은 지극히 유대교적 사고방식이었다.
이 땅에서 예수 믿고 내가 현실적으로 잘 되는 것, 그것은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다윗 왕 시대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철저히 만물 안에 갇혀서 살므로 그것을 많이 받으면 복을 받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 것으로 믿는 것, 이것이 유대교의 신앙이다.
이제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가 할 일은 오직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아들의 태어난 생명 곧 영생을 얻게 하여 그 생명으로 날마다 영생을 현재로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거듭남은 곧 생명이 바뀌는 것이며 소속과 주소가 바뀌는 것이다.
이는 물과 성령 곧 말씀과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나 승천하실 때까지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명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엉뚱한 생각에 빠져 엉뚱한 짓만 일삼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 자기 자신을 내어 드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요 6:63) 살리는 것(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이는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할 때만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씀이다.
내가 사는 지금은 성령이 이미 오셨기 때문에 말씀 곧 복음을 선포하면 그 안에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임한다.
이러한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제자의 삶이요, 진정한 사도의 삶인 것이다.
나의 일상이 이런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
내 영이 어두워져서 성령에 둔한 자가 아니라 늘 깨어 있어서 성령에 민감하여 주님과 늘 교제하는 자로 서기를 원한다.
오늘도 나의 생명 되신 주님과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교제하며 나아갈 수 있음이 보배다.
내 안에 보배 되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나는 질그릇이라도 좋다.
나는 더 낮아지고 오직 주님만 높이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본질이 다르고 소속과 주소가 다르니 생각하는 것이 주님과 다를 수밖에 없고, 행동하는 것이 주님과 전혀 다르기만 하였습니다.
이를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던 이 죄인을 주님께서는 인자와 진리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생명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얼마나 날뛰었는지요?
주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관념적으로만 믿어왔던 나를 주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주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생명으로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이 자리가 나의 영생의 자리임을 믿사오니 주님, 나를 버리지 마시옵고 온전히 주의 것 삼아주소서.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복음이게 하시고 나와 같이 미련하고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성령 안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