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역술과 점
(문) 역술, 점과 정법(올바른 질서, 올바른 법)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설명해 주십시오.
역술, 점과 정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우선 단언해 둡니다.
역술이나 점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사람은 저마다 운과 불운이 있고, 내일의 생명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역술이나 점으로, 개운(開運)을 꾀하고
잘못이 없는 인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 기원은 인정(人情)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술, 점은 원래 과거와 통계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 같고,
또 이것을 찾는 사람의 조건과 상대방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70%정도라고 할 정도의 평균치가 나오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에 따라서는 어긋난 것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맞다, 안 맞다가 있는 것 자체가,
역술과 점의 한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역술, 점이 금생만을 기본으로 두고
세상사를 본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현생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전생이 있기 때문이며,
전생윤회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역사를 모르고
금생의 운과 불운만을 보려고 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의 일생이, 이러한 점괘나 생년월일, 성명판단 등에 의해서 결정되고,
혹은 바뀌어 진다고 하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때문에 태어났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더우기 점을 치는 목적이,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불행을 피하고 항상 안락만을 추구한다면,
문제는 대단히 크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진실한 자세로부터 본 인생항로는 혼의 수행입니다.
자신의 혼을 연마하고, 슬픔과 즐거움의 집착에서 벗어나,
평화로 가득찬 인간다운 인간의 자각과,
지상(地上)에 불국토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 진짜 나"의 인간을 믿는다면,
이러한 역술이나 점에 현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본래의 모습은,
역술이나 점을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의 길 방위는 서남쪽이고, 동쪽은 귀문(鬼門)에 해당한다.
올해는 액년이니 자중하여 움직이지 않겠다,
점성(占星)으로 본 생년월일은 청신호이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라고 하는 방식으로 사람이 움직인다고 하면,
점(占)은 자기보존을 만들어내어,
개운(開運)의 이름하에 사람은 많은 집착을 마음속에 키워 갈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산이 있고, 계곡이 있고, 될 수 있으면 난관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정(人情)입니다.
좋아서 난관을 받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운(開運)에 집착하면,
이번에는 부자유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저렇게 하면 안돼, 이렇게 하면 안돼, 라고 하는 사이에
개운을 위한 점이 불행을 초래하는 원인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목적이 혼의 수행에 있다면,
생년월일, 사주나 점술로서 "나쁘다"하는 결과가 나왔다 해도,
필요하다면 굳이 결행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신을 알기에는,
행운일 때보다 불운할 때야말로 찬스일 터입니다.
올바른 생활에는 현증(現證)이 붙습니다.
그러므로 정도를 믿고, 반성과 정도의 생활을 보내게 되면,
신(神)은 그 사람을 결코 버리는 것은 없습니다.
그 불운을 유유히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인간은, 한결같이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 저
(오로지 팔정도의 생각)
역술가들이 학문, 또는 확율이라고 하는 말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이 학문이다, 확율이다 라고 하는 말들을
신지 선생님은 그대로 받아들여서 말씀하신 듯 합니다.
이 점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해마다 봄이라는 시간이 되면 싹이 나고 농사를 시작했다는 것을
학문(=법칙)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착각이라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봄이라는 시간이 되어서 싹이 난 것이 아니고,
온도가 올라가서 싹이 나는 것인데,
모내기를 하는 때가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늦어지는 것은 온도 때문입니다.
남쪽에서부터 봄의 전령이 올라가는 것은 온도가 올라가서
싹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적도와 북극은 어떻습니까.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닙니까,
진리라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주, 육십갑자, 옛날의 시간단위,
시간이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끊임없이 연이어서, 마치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인간들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끊어 놓은 것이 시간이지요.
상상속으로 말이지요
시간의 단위는 상상 속의 단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속의...
인간의 머리속에만 그려져 있는...
흘러가는 강물을 시간단위로 끊어서,
앞의 물은 성질이 차갑다, 바로 뒷물은 성질이 어떻다?
흘러가는 강물, 시간, 어디에 성질이 있고 색깔이 있습니까.
그 시간의 단위에 편의상 붙여 놓은 이름, 쥐, 소, 호랑이, 용....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용이란 동물의 성질.
이것은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상상의 성질을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다니,
모든 것을 스스로 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삼,
위대한 가르침으로 다시 감동하면서,
절대자를 만들어 놓고선,
그것에 기대고 매달리는 이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비교하게 됩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