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즘과 신국론
2테살 3,6-10.16-18; 마태 23,27-32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2024.8.28.
오늘도 마태오 복음서 안에서 매우 신랄한 어조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비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백성 안에서는 제법 존경받던 바리사이들이 왜 유독 예수님께 비판을 받고 또 야단을 맞았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하느님 안에서 찾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과 의지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해 준 전통을 고수하며 강조했습니다. 이런 노선을 계승한 고대교회의 교부가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아우구스티노입니다. 그는 영원불멸할 것 같던 로마제국이 로마의 용병으로 고용된 군대에 의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로마제국과 달리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하느님 나라 즉 신국이 영원히 스러지지 않고 세워지리라는 희망으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신학을 담은 저술이 바로 신국론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다 돌아와서도 또 다시 그리스계 왕조가 혹독하게 유다인들의 전통적 신앙을 박해하니까, 이스라엘의 주류에 속하던 유다인들 가운데 하시딤이라 불리우는 개혁적 일파들이 유다이즘의 부흥을 외치고 나섰습니다. 그 일환으로 율법을 회복하고, 이를 엄격하게 실천하기 위한 구두 주석 즉 탈무드와 하가다를 저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바리사이즘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에 담긴 그 유다인 개혁파들의 의지는 본시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던 경건한 신심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구약성경의 두 기둥인 율법과 예언 중에서 예언 사상을 버리고 오로지 율법만은 취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언자들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외쳤던 바 하느님께서 움직이시는 자비의 은총을 기다리는 순수함을 접고, 자신들의 영민함과 율법적 열성으로 백성들을 이끌고 가려는 과잉 의욕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 하시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종교적 율법을 확립하는 데에서 찾으려 하면서도, 율법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기술자 직업을 지닌 중산층의 경제적 지위를 더욱 강화하는 등 세속적인 이익과 힘을 숭상했습니다. 비옥한 갈릴래아 지방의 농지들을 부재지주로서 소유하기도 하고, 포도원도 소유하여 소작농들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죄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합니다. 종교적 정체성과 현실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런 모순이 왜 저질러졌을까요? 그 까닭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주도권을 위해서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지위도, 기술자로서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지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주도권이 사라져버리는 결정적인 비극이 여기서 싹이 틉니다.
한 마디로 그들 바리사이 유다인들은 로마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표방하면서도 또한 그들 로마 식민통치자들의 폭력을 흉내 낸 이중적 위선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십계명에 근거를 둔 율법은 길 없는 사막에서 만들어내는 길처럼 ‘하느님의 길’로서 표현된 것일 뿐, 원초적 하느님의 길 즉 토라는 무상으로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해 주신 자비와 정의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예언자들이 결코 타협없이 전해 주며 고수했던 노선으로서 출애굽, 즉 이집트 탈출의 영성이요 파스카의 신비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그 은총스런 선택을 본받으라고 가르쳐준 길이 십계명이요 그로 인한 해방의 길이 율법이었지만, 그들은 손가락만 쳐다보고 정작 그 손가락이 가리켰던 달은 보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애국심이 뜨겁고, 율법에 대한 열성이 또한 뜨거웠으며, 독립을 향한 열정이 지나쳐서 그 길을 따라오지 못한 저급한 부류와 분리되고자 ‘바리사이’라고 불리는 일도 감수하던 무리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때 열성적인 바이사이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을 전환한 사도 바오로의 선교 활동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계승하던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방인들 안에서 전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성령 강림을 체험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 안에 현존하심을 확신한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세우신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공동체 전통을 확립하는 한편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보여주신 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전통을 활발하게 실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2테살 3,6) 라고 엄중하게 지시하며 경고해 마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상 그가 선교하려던 이방인들은 다신교 풍습에 물들어 우상을 숭배하며 불륜을 제사라고 착각하는 도덕적 타락에 빠져 있었으며, 노동을 천시하는 대신 힘과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타락까지도 서슴지 않는 나쁜 전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로마제국의 끔찍한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한 이 아름다운 전통에 감화된 로마인들이 늘어나면서 끝내 신앙의 자유를 얻고 국교로까지 승인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제국를 지배하던 상층부의 도덕적, 경제적 타락은 멈추지 않았고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로마제국의 멸망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선교 활동으로 전해 주었던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계승하려던 아우구스티노는 주교요 학자로서 마치 구약시대의 예언자처럼, 로마제국의 멸망을 안타까이 지켜보며 ‘신국론’을 남겼습니다. 향후 천년을 내다보며 이 불멸의 저술을 남긴 그 배경과 동기가 이러합니다.
4세기 중엽에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마니교의 이단 사상에 물들어 타락한 생활을 했었지만,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어린 기도와 암브로시오 주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회개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로마 제국이 멸망해 가는 이 어두운 기간에 사제와 주교의 직무를 통해 이단을 물리치며 신앙과 교회의 전통을 수호하는 데 뛰어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고트족이 로마를 침탈하는 대혼란 속에서 거짓 신을 섬겨오던 로마인들 중 일부가 이 로마 파괴라는 재앙의 탓을 그리스도교에 뒤집어 씌우려고 하느님을 모독하려 드는 데에 분개하여, 하느님의 집과 도시에 대한 열성에 붙타서 ‘신국론(神國論)’을 집필하게 되었는데, 로마 제국이 망하더라도 하느님의 도시 즉 신국은 영원하리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 덕분에, 모진 박해 끝에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제국과 일체화되었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게르만족을 집단 개종시켜 유럽 가톨릭교회로서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로마’라는 이름의 영예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후계세력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아우구스티노는 ‘신국론’ 저술을 통해서 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정체성 위기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시작하였고 사도 바오로도 계승했던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신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외교인들이 자행하는 부당한 공격과 이론에 응수하는 이론적 무기들을 제공하면서 ‘구원(久遠)- 아주 멀고 먼 - 의 역사’라는 고고한 시선으로 인간 역사를 바라보는 경지를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과거 250년 동안 로마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신앙의 자유를 누리던 신앙인들에게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철학적 신학적 성찰의 계기를 얻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게 하고 역사의 지평을 넘어서는 선의 궁극적 승리와 영구한 평화를 내다보고 희구하도록 호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국론’은 한 지성인이 구상할 수 있는, 거창하고도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인류 지성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대 서방 세계에서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쳐 건설된 로마 제국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경이에 해당되는 문명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예는 어디까지나 세속적인 명예에 지나지 않았고, 영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문명 속에 야만적인 군사적 업적이 위주로 되어 있고, 세속적인 다신교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으며, 비인간적인 통치행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교회는 후대에 이러한 로마의 세속적 명예를 정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가톨릭교회의 공식 언어로 사용되었는가 하면, 문자로서는 여전히 주요 문서의 공식 문자로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로마의 영광을 가톨릭교회를 통해서 재현하려는 유럽-로마주의자들의 복고주의적 경향에 대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비유럽-보편주의자들이 파스카 과업을 위한 교회의 복음적 쇄신을 내걸고 상호 간에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실도 우리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는 현 주소를 잘 말해줍니다. 사도 바오로와 성 아우구스티노가 계승하려던 예수님의 길, 즉 초대교회의 전통은 이 두 세력이 힘을 합해 세워 놓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력으로 긴장과 경쟁 속에서도 매우 느리게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분께로부터 정체성의 뿌리를 찾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노력과 의지만 남게 되어 정체성을 상실해 버리는 위기는 상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화에 있어서 교회나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바리사이들의 역사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주도권에 따라서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공동체를 이루는 한편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정통적인 전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