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장. 갑툭튀
갑툭튀
'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준말이다.
만수무강 사우나에는 꽃미남 잉여인간 세 명이 기거하고 있다.
한 대식, 나 도야, 마 동탁.
이 세 사람은 근 일 년 가까이 만수무강 사우나에 기거하면서 판매수익을 엄청나게 올리고 있는 고등학생들이다. 아버지는 이들 잉여인간들 덕분에 아주머니와 여고생들이 자주 찾게 됐다면서 헤벌쭉 웃으셨다. 오늘도 아버지는 음악방송을 하기 전에 금고 안에서 만 원짜리 지폐들을 꺼냈다. 그리고 만 원짜리의 끄트머리에서 엄지와 검지로 한 장씩 빠르게 돈을 셈하고 계셨다.
자동으로 돈을 계수하는 기계를 사다놓고서도 아버지는 직접 손으로 돈을 세시곤 했다. 등받이 의자에 앉아 돈을 세는 아버지 뒤로 내가 불쑥 다가섰다. 아버지는 돈을 세느라고 정신이 없으셨다. 딱봐도 오늘 하루 매출 역시 쏠쏠하였다.
아버지는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작은 금고에 돈을 가지런히 챙겨 넣으셨다.
“아빠!”
“너, 넌, 넌 왔으면 인기척을 해야지!”
아버지는 황급히 돈을 금고 안에 집어넣고 뒤통수를 긁적이셨다.
“도대체 돈 계수기는 왜 산거야? 사용하지도 않을 거면서!”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아버지는 껄껄껄. 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곤 날 빤히 봤다.
“사업 아이템 구상은 하고 있는 중이냐?”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내게 물으셨다. 영 못미더워하는 내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 지금 똥줄 타고 있어.”
“낄낄낄. 거 봐라!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우리 삼돌이들을 내쫓는 계획은 이제 그만하고…….”
난 아버지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바닥을 내저었다.
“말도 안 돼! 난 꼭 기막힌 사업아이템을 갖고 와서 잉여인간들을 다 만수무강 사우나에서 내쫓을 거야! 두고 봐!”
난 목소리에 힘을 빡 주고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영 못미더워하는 눈치였다.
“하늬야, 너는 그렇게도 삼돌이들이 싫은 거야?”
“뭐, 딱히 그렇게 끔찍하게 싫기보단……”
난 아버지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요 근래 들어서 잉여인간들의 색다른 모습들을 발견했다. 의외로 따뜻한 구석도 있기도 하고, 나를 도와주는 일도 있었고!
내가 머뭇거리자 아버지가 온화한 표정으로 웃으셨다.
“다들 독특하기는 하지만 나쁜 아이들은 아니다. 내 보기에는 하늬 너도 그 아이들이 영 싫기만 한건 아닌 것 같은데?”
“서, 설마!”
난 아버지한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랐다. 역시 부모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헤드셋을 머리에 쓰시면서, 흥에 겨워서 양 어깨를 들썩이셨다. 아버지의 헤드셋은 항상 스피커에 연결되어있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백곡의 음악을 듣곤 하셨다. 워낙에 음악을 좋아하시기도 했고, 따라서 부르는 것을 좋아하시기도 했다.
“아빠는 이렇게 음악이 좋으면 가수가 되지 그랬어?”
“뭐?”
아버지가 잘 안 들리셨던지 내게 되물었다.
“아, 아니야. 그냥 음악 들어.”
아버지는 원래부터 이 만수무강 사우나를 운영하고 싶으셨을까? 란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난 멀찌감치 떨어져서 헤드셋을 끼고 그루브를 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다. 이렇게 사우나에 음악 방송실을 따로 만드실 정도로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의 진짜 꿈은 뭐였을까?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음악 방송실 밖으로 나왔을 때 평상 위에서 동탁이 대자로 누워있었다. 태양 빛에 두 눈이 따가웠다. 내가 동탁의 곁으로 다가서자 그림자가 동탁의 몸 위로 드리워졌다. 동탁은 자는 도중에도 습관처럼 나무관세음보살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면서도 염불을 외우는 동탁이 신기해서 한참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잉여인간들 중에서도 마동탁은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종교도 없으면서 목탁을 들고 다니면서 절에 들어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동탁. 때론 스스로 자기 입을 닫아버리고 묵언수행을 하기도 했다.
내가 뚫어져라 동탁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였다. 타월로 젖은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대식이 나타났다. 대식은 흰색의 나시티 하나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스트링 팬츠를 입고 있었다.
대식은 평상으로 다가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여기서 뭘 빤히 보고 있어?”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대식은 나와 동탁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염불을 중얼거리며 자는 동탁을 보고 풉! 하고 웃었다.
“이 형은 자면서도 늘 염불외고 이런다니까!”
대식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동탁의 허리춤에 묶인 목탁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목탁을 빼앗아가서 마구 목탁을 두드렸다. 그러자 동탁이 깜짝 놀라서 몸을 벌떡 일어섰다.
“아, 뭐야!”
동탁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대식에게서 목탁을 바로 빼앗아왔다. 대식은 큭큭. 거리면서 장난스럽게 웃어댔다. 이에 동탁이 뿔이 났다. 동탁은 화가 나면 외국어로 속사포로 중얼거리는데 길어질수록 표정이나 제스처로 보아 욕을 하고 있단 게 느껴졌다.
“한국말로 해!”
대식은 귀지를 파면서 동탁에게 말했다. 동탁은 딱 한 마디를 내 뱉었다.
“귀찮아.”
“정말 그 말 한거야? 무슨 한 마디 하는데 그렇게 길어?”
대식은 평상 위로 몸을 드러누웠다. 그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태양빛에 노출되어 까무잡잡한 구릿빛 피부와 섹시해 보이는 팔 근육이 돋보였다. 날카로운 턱선 높은 콧대 때문에 다비드 상을 연상케 했다.
최근에 잦아진 스킨 십 때문인지 몰라도 눈감고 자는 대식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홍조 빛으로 변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고 마음의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양 볼을 내 손바닥으로 마구 두드렸다. 양 볼이 얼얼해졌다.
두근두근.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봄이 되어서 싱숭생숭하게 된 것인가? 봄바람을 타고 마음에 이상한 기운이 깃든 걸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날 동탁이 의아하게 봤다. 아마도 내 태도가 희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 자학하는 버릇도 생긴 거야?”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동탁의 물음에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내 방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리고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인터넷을 통해서 난 좋은 사업 아이템이 없을까요? 란 질문 글을 올렸다. 그러자 어떤 누군가가 그런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라는 답변 글이 곧바로 올라왔다. 난 어이가 없으면서도 맞는 말이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자기가 해버리면 그만이지. 남에게 알려주겠어?”
혼잣말을 내뱉으며 침대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때였다. 휴대폰으로 문자 한통이 도착했다. 예전에 중학교 때 친하진 않았지만 같은 반이었던 해미란 애였다. 연락바랍니다. 라는 문자를 보고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전혀 연락이 없던 애가 갑자기 나한테 왜 연락을 취한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답문도 안하고 30분쯤 흘렀을 때였다. 이번엔 해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난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무슨 일 때문에 내게 연락을 한건지 궁금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나 강혜미야.”
“어, 오랜만이다!”
내 말에 해미는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 걸어봤어.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
“너 대명 고에 들어갔단 소리는 들었는데 말이야. 중학교 졸업하고서 한 번도 못 봤잖아.”
“그랬지.”
“혹시 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니?”
“그건 아니지만, 알았어. 주말은 바쁘니까 힘들고 내일모레 학교 수업 끝나고 보는 걸로 하자.”
“응. 그래. 내가 너희 학교 앞으로 갈게.”
“아니, 그럴 것 까진 없는데……”
“내가 갈게.”
난 해미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갑작스레 내게 연락한 것도 그렇고 우리 학교까지 오겠다고 그러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대로 오후 늦게 해미는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해미는 교복 차림이 아닌 평상복의 차림이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단발머리. 까무잡잡한 피부에 여드름이 난 얼굴이었다. 해미는 중학교 시절에도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다. 말수도 적었고,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있을 때가 많아서 일부러 해미를 피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게 중학교 일 학년 때였다.
난 해미가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는지도 궁금했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있었어?”
“그게 중학교 때 졸업앨범을 보니까 휴대폰 번호가 있어서 혹시나 해서 걸어봤어.”
“아! 그랬었구나!”
난 오랜만에 만난 해미를 보고 무슨 말을 이어가야할지 어색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때, 교문을 통해서 빠져나가던 대식이 날 발견했다. 대식은 나와 해미의 대화 도중에 불쑥 손을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
“야박하니!”
“!!”
나와 해미를 보며 해맑게 웃는 대식을 보고 난 시선을 피했다.
“누, 누구니?”
해미는 대식을 보고 내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신경 꺼. 쟤는 잉여인간이야.”
“어?”
“쓸모없는 인간의 리더야. 괜히 말 섞으면 피곤해지는 타입이니까 아예 상종하지 않는 게 좋아.”
“근데 되게 섹시하게 생겼다.”
“어, 어?”
해미의 말에 난 나도 모르게 고갤 끄덕이고 수긍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섹시하긴 뭐가 섹시해! 딱 봐도 쟤 얼굴 노안이잖아.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얼굴이야. 저게 어디 이제 갓 중학교 졸업한 남자애의 얼굴이냐? 그리고 저 몸말이야. 너무 인위적이야. 징그럽잖아!”
“별로 안 그런데?”
해미는 대식을 뚫어져라 봤다. 대식을 보는 해미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대식은 해미에게 속닥거리는 내 말을 엿들었다. 그리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야박하니! 너 어떻게 처음 본 여성분에게 막말을 하고 그렇게 야박하게 굴 거야? 저 분이 날 보고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대식은 해미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난 그런 대식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제쳤다.
“넌 상관하지 말고 네 갈 길이나 가!”
내가 대식을 향해 빽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대식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야박하니! 정말 너무 야박하다.”
“너 오늘 사우나 아르바이트 안 할 셈이야?”
“쳇!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대식이 내게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해미의 손을 붙잡고 근처의 빵집으로 향했다. 해미는 가는 도중에 고갤 뒤돌아보며 대식을 힐끗 쳐다봤다.
“너 쟤랑 친하니?”
“안 친해.”
“그래? 그런데 나 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해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뭐가 생각났는지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 맞다. 복싱 경기하는 거 본 적 있었다. 쟤 말이야. 복싱선수 맞지?”
“어떻게 알았어?”
“그 때 유명했었는데! 나오자마자 5분 만에 K. O패로 실려 나가서!”
“그, 그랬었지.”
난 해미의 말에 말을 더듬거렸다. 워낙에 복싱 계에서도 희한한 일이라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잊히지 않는 일 일거다. 그래도 난 그 말 없고 조용하던 해미가 복싱에도 관심이 있는 줄은 전혀 생각 못했었다.
해미는 빵집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와 팥빵을 트레이에 받쳐왔다. 우리는 빵집의 창가 쪽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나한테 연락을 하고 학교에 찾아온다고 해서 좀 놀랐었어.”
내 말에 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아주 좋은 아이템이 있어서 널 찾아왔어.”
“아이템?”
“오늘 잠깐 시간 되면 나랑 종각역에 좀 가자.”
“거긴 왜?”
“내가 홈페이지로 쇼핑몰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너도 정보 좀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나도 거기에서 쇼핑몰 하면서 꼬박꼬박 통장에 몇 백만 원씩 들어오고 있거든!”
해미는 자랑하듯 말을 주구장창 늘어놓았다. 나와 해미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있을 때였다. 투명한 빵집 가게 유리문 밖으로 불쑥 대식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대식은 빵을 먹는 나와 해미를 뚫어져라 봤다.
그러더니 자신의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배고파서 그런가본데 들어와서 같이 먹자고 하자.”
해미가 수줍어하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난 대식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봤다. 그리고 손으로 들어오란 제스처를 취했다. 대식은 금방 밝은 표정으로 변하더니 뛰어서 빵집 안으로 들어왔다. 해미는 조심스럽게 빵 한 개를 대식에게 건넸다. 빵을 건넨 해미의 양 볼이 붉어졌다.
‘도대체 빵 한 개 건네주고 뭘 부끄러워하는 거야!’
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해미를 봤다. 해미는 빵을 건네고 나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홀짝이며 마셨다.
“한대식! 넌 그것만 먹고 일어나.”
“응!”
대식은 빵을 먹고 난 뒤 갑자기 내 아메리카노 커피를 빼앗아갔다. 그리고 내가 입을 덴 스트로우에 입술을 갖다 대고 홀짝이며 마셨다. 난 짜증인 난 표정으로 대식에게서 아메리카노 컵을 빼앗아왔다. 이건 공공연한 간접키스였다.
“왜 남의 것을 허락도 없이 마시는 거야! 이건 분명히 간접 키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내 말에 대식이 헤벌쭉 웃었다. 난 기분이 나빴다.
“왜 웃는 건데?”
“네 말대로라면 우리 둘이 키스한 거네?”
“키, 키스를 한 건 아니지.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대식은 갑작스럽게 내 볼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두 눈을 깜박이면서 해 맑게 웃었다. 너무 황당해서 어떤 말도 나오질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해미 역시도 상당히 황당한 표정이었다.
“너 저리 안 꺼져!”
난 대식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대식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야박하니! 너 나 싫은 거 아니지?”
“!!”
“그러면 앞으로 내가 너한테 다가간다!”
난 헤벌쭉 웃으며 손을 흔드는 대식을 뚫어져라 봤다. 도무지 잉여인간의 뇌 속은 알 수가 없었다. 난 내 첫 뽀뽀를 한 대식과 한 것이 당황스러웠다. 해미는 붉어진 내 양 볼을 보고 김이 샌 표정이었다.
“둘이 사귀는건가보네.”
“어? 그런 거 절대 아니야!”
“그런데 쟤가 너한테 뽀뽀까지 했잖아. 너도 마음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 보여.”
내가 한 대식한테 마음이 있어 보인단 해미의 말이 귓가에 거슬렸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스킨 십 때문일 거다. 원래 남녀가 만나서 스킨십을 하다보면 없던 정도 다 붙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해미와 함께 일어섰다.
“그런데 어떻게 쇼핑몰로 돈을 그렇게 잘 벌 수 있다는 거야?”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미에게 물었다. 내가 관심 있는 표정을 짓자 해미는 사무실에 가 보면 잘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냥 사업 설명회만 듣고 나와도 괜찮아. 다단계나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나도 처음엔 그런 건줄 알고 몇 번이고 조사해봤다니까!”
해미는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빵집을 나온 해미와 난 도로변에서 택시 하나를 붙잡아 탔다.
“종각역까지 부탁드려요. 기사님!”
종각역에 도착하자 해미가 택시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내가 먼저 택시에서 내리고 해미가 뒤따라 내렸다. 해미는 나를 이끌고 어느 높다란 건물 앞에 섰다. 난 뭔가 꺼림칙했다. 그래서 주저하고 있는데 해미가 내 손을 붙잡아 당겼다.
“정말로 이런 좋은 사업 아이템이 없다니까!”
해미의 자신만만한 그 말에 난 그녀를 뒤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빽빽했다. 원형의 탁자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맞은편에 앉은 상담사로부터 한참 뭔가를 설명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진짜 다단계 아니야?”
내 물음에 해미는 고개를 내저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중년 아저씨 분들도 많았고, 대학생 쯤 되보이는 언니와 오빠들도 많았다. 난 머뭇거리며 빈 탁자 앞에 앉았다. 해미는 그런 날 보며 밝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조금 있으면 사업 설명회 해주시는 강사분이 오실거야. 저기 들어가서 한 번 들어보면 너도 무슨 사업인지 잘 이해가 갈 거야.”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정말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면! 그렇다면 만수무강 사우나의 세 명의 잉여인간들을 내 쫓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난 해미를 따라서 사업 설명회를 한다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실 안에는 빔 프로젝터가 놓여있었고, 그 앞에는 투피스로 된 정장차림에 곱상하게 생긴 여자 강사 분이 서 계셨다. 머리는 포니테일로 질끈 묶고, 귀에는 진주 귀걸이를 한 게 어딜 봐도 깔끔한 인상이 풍겼다.
“여러분 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역시 불과 두 달 전에는 여기에서 사업 설명회를 듣고 정말로 돈 버는 일이 이렇게나 쉬울까 의구심을 갖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이제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버는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최세희입니다.”
여자 강사의 빼어난 외모 때문인지 몰라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박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요즘 장기 미취업에 사업 아이템 찾기 정말로 힘드시죠? 죽어라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은 결국 학자금 대출로 나가버리니까 속상하시죠? 대학교 졸업하면 뭐하나요? 빚만 천만 원 이천만원이 넘는데 말입니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여자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말하는 도중에 다단계로 여기서 숙소하나 잡아 가둬놓고 그런 거 아니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란 농담까지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껄껄. 하고 웃었다. 나도 어색하게 그들을 따라 웃음을 지었다.
사업의 내용은 이러했다. 쇼핑몰의 도메인을 설정해주면 생필품을 살 때마다 포인트를 주고 그것이 현찰이 되어 내 통장으로 입금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수백만 원 버는 일도 쉬워진단 것이었다.
난 그런 내용이 영 못미더웠다. 하지만, 가방 안에서 해미가 실제 자신의 통장을 펼쳐서 보여줬을 때 말이 달라졌다.
“이게 공이 다 몇 개야?”
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통장을 접었을 때 해미가 말했다.
“삼백만 원이면 도메인을 개설할 수 있어. 그리고 그게 삼천만원이 되어서 너한테 돌아올 거니까 절대로 걱정하지 마!”
해미는 계속해서 나를 안심시켰다. 난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오는 입구 옆에 있는 안내 데스크로 다가섰다. 그리고 머뭇거렸다. 내 지갑 안에는 체크카드가 있었다. 그리고 딱 3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어려서부터 친척 분들에게 받은 용돈과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비로 받았던 돈을 모은 것이었다. 난 두 눈을 질끈 감고 카드를 내밀었다. 한번에 3백만 원이란 거액의 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좋은 선택을 한거야. 앞으로 한 달 동안만 여기 와서 강의를 들으면 어떻게 홈페이지 관리하면 되는 건지도 알게 될 거야.”
해미는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결제를 끝마친 내 손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이때였다. 문을 열고 헐레벌떡 한 대식이 들어왔다. 대식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화가 난 표정으로 내게 윽박을 질렀다.
“너 벌써 결제한 거야?”
“??”
“넌 어떻게 된 게 애가 이렇게 멍청하냐!”
“!!”
대식은 방금 결제된 카드 영수증을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거 당장 취소시켜요!”
대식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게 특별한 사유 없이 카드 취소는 어렵습니다.”
“어려워도 하란 말이 예요! 당신들 다 큰 어른들이 고작 여고생이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이렇게 단 숨에 날로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이래가지고 어떻게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믿겠습니까!”
대식이 윽박을 지르는 통에 사무실 안이 술렁거렸다. 대식은 발로 안내 데스크를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목재로 된 안내 데스크에 흠집이 났다.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경찰! 경찰 어디한번 불러보시죠. 다단계 업체가 아니라면 당당하게 경찰을 부르겠죠! 안 그래요?” 대식은 당차게 말하며 계속해서 소란을 피웠다.
“얼른 환불하라고요! 아니면 진짜 경찰을 부르던가!”
“!!”
안내 데스크에 있던 안내는 상당히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수화기를 들고 내선을 연결했다. 곧 어느 사무실 안에서 덩치가 제법 되는 아저씨 두 명이 나타났다. 딱 봐도 조직 폭력배의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두 명의 아저씨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리고 대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 대식!”
난 순간 당황하여 소리를 내질렀다. 방금 사무실 안에서 나온 아저씨들은 대식이 어리다고 해서 봐 주는 거 없이 주먹질을 휘둘렀다.
퍼억―
대식의 고개가 돌아가며 거먕빛의 피를 입에서 토해냈다. 대식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냈다. 그리고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러자 이빨 하나가 툭. 하고 바닥 위로 떨어졌다. 그 바람에 탁자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잇따라 비명을 지르며, 사무실 안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누구하나 대식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탁자 밑으로 몸을 웅크리고 숨어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다.
대식은 힘으로써 그 둘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그래도 맞는 중간마다 아저씨들의 턱을 향해 잽을 날렸다. 의외의 반격에 아저씨들도 당황해 몇 대는 얻어맞았다.
“요 놈 봐! 제법인데?”
“허어억.”
싸움이 길어지자 대식의 호흡이 가팔라졌다. 대식을 향해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 손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경찰들이었다. 때 마침 나타난 경찰 분들 때문에 싸움은 종료되었다. 나와 대식은 경찰서로 가서 진술을 해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미는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전화를 걸어도 해미는 전화를 도통 받질 않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당했구나!’
경찰서 안으로 속속들이 다단계 업체와 관련된 사람들이 붙잡혀서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흠씬 얻어맞은 대식을 빤히 봤다. 미안함과 두려움이 뒤 섞인 감정이 들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자 대식이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해맑게 웃었다.
“멍청아! 너 나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냐!”
대식은 울먹이는 나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 뒤통수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줬다.
“직감이 너무 안 좋아서 따라와보길 잘 한 것 같아.”
대식이 울먹이는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잉여인간들을 내 쫓기 위한 사업 아이템도 수포로 돌아갔고, 열심히 모았던 내 용돈 3백만 원도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마음이 희한하게도 무겁지가 않다. 다단계에 속아 돈도 잃었고, 친구도 잃었고, 사업 아이템도 얻어내질 못했지만 다른 뭔가를 얻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대식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난 고개를 들어 대식을 빤히 봤다.
“아까 많이 아팠지?”
“아프긴…….”
대식이 환하게 웃는데 윗니 한 개가 비어있었다. 난 대식의 이빨 나간 모습을 보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난처해졌다.
“이, 이, 이빨이 하나 부러지고 없어졌어. 큭큭.”
“야박하니! 넌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도 야박하게 웃냐?”
대식이 볼멘 표정으로 내게 섭섭하다고 했다. 난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고 혼났다. 아버지는 대식의 부러진 이빨의 원인이 다단계에 속은 나 때문인 것을 알고 내 대신 치과로 데려가 치료받게 했다. 그리고 대식의 이빨 치료 값 삼백만원은 내게 지불각서를 쓰게 했다.
“아빠, 조금만, 조금만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박하늬! 너 당분간 학교 사우나 외에 아무데도 돌아다니지 마라. 어떻게 한 순간에 6백만 원을 해먹나! 엉!”
“아, 아빠! 죄송해요. 그래도 조금만 깎아주시면!”
“떽!”
아버지는 내게 윽박을 지르면서 눈을 무섭게 부릅뜨셨다. 난 그 기세에 눌려 깨갱거렸다. 난 삼백만원을 갚겠단 지불각서에 지장을 찍으며 눈물을 머금었다. 아버지는 상당히 계산적이신 분이셨다. 뒷장에 이어서 약속한 기일에 못 지키면 전체금액에 20%에 해당하는 이자까지 받겠다는 상세한 내용을 덧붙였다.
“아빠, 아빠는 사우나 대표가 되지 않았으면 고리대금업자가 됐을 것 같아. 정말로 딸인데도 너무해요!”
아버지는 내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 아빠의 꿈은 말이다. 가수였어. 어딜봐도 가수지.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