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침대에 꼭 붙어 마주잡은 손을 통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이제껏 차마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놓은 세 사람은
그제야 자신을 온전히 보여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세 사람은
새벽녘에야 나른한 몸짓으로 폭신한 이불을 뭉그적거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었다.
세 사람이 눈을 뜬 것은 점심때를 한참이나 놓쳐버린 시각이었다.
간단하게 때늦은 점심을 챙겨먹고
수진과 현아를 배웅하고 돌아온 윤하가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불의 서늘한 감촉이 스르륵 윤하의 맨살에 쓸렸다.
그 기분 좋은 느낌에 취해있던 윤하는
달콤한 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 눈을 감아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윤하는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마 근래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많이 고단했었나 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으레 깨질 것 같이 아파오던 관자놀이와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 나쁜 갑갑함을 느끼던 윤하는
오늘은 웬일인지 상쾌하리만치 가벼운 몸에 놀라버렸다.
침대에 누워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듯 두 눈을 깜박거리던 윤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굳게 닫힌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슬며시 밀었다.
열린 창으로 한밤의 산뜻한 바람이
윤하의 머리카락을 건들고 집안으로 몰려들었다.
윤하는 지극히 충동적으로 집을 나섰다.
다른 때와 다르게 유달리 밝은 달빛에 이끌린 건지도 몰랐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날아든 희미한 풀냄새도 한 몫 단단히 한 것도 같았다.
가벼운 옷차림만큼이나 가로수 길을 걸어 내려가는
윤하의 개운한 기분에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큰 새가 날개를 퍼덕이듯
그렇게 자신의 팔을 휘휘 저으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유쾌한 기분이었다.
쭉 늘어져 있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따라 윤하의 발길이 옮겨졌다.
기도를 타고 들어간 청량한 공기가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한껏 들이마신 희미한 풀냄새를 담은
이 공기가 온 몸을 타고 돌고 돌아
자신의 몸도 풀냄새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던 윤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 여기까지 걸어 내려온 것 인지
큰길에는 차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뭔가 부족한 듯한 기분에 아쉬운 걸음을
자신이 걸어왔던 길로 되돌렸다.
한적한 길을 홀로 걸어가는 기분이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오른 윤하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쳐다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보며 마주 웃어주었다.
복도 벽을 장난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쓸며 걸어오던 윤하의 눈에
자신의 오피스텔 문 앞에 주저앉아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고요한 수면위로 누군가가 돌팔매질이라도 한 듯
겉잡을 수 없이 출렁거리는 물결처럼
삽시간에 윤하의 가슴에 풍랑이 일었다.
머뭇거리는 마음에 반해
두 다리는 어느새 눈을 감고 문에 기대어 있는
강하의 앞으로 윤하를 데려다 놓았다.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약한 숨을 내 쉬는 강하는 술을 먹은 듯
싸한 알코올 냄새가 내 뱉는 숨에 섞여 있었다.
하루 만에 털어버릴 수 있을 거란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덜어 내 버리자고 생각했었다.
나 스스로 조급해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고.
나조차도 알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만.
그러다 보면 확 줄어든 기분에
허전해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확 파헤쳐진 아픔에
울지 않아도 될 것이고.
정말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한강하란 사람을 내 안에서
흔적도 없이 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자신의 집과 우리 집을 헷갈릴 만큼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강하를 일부러 모른 체 하지는 말자며
윤하는 강하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기요. 저기요.”
강하의 어깨를 흔들던 윤하의 손끝이
어쩔 수 없는 긴장감에 살짝 떨려왔다.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도 깨어날 기미가 없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하의 오피스텔 문 앞으로 다가가 벨을 눌렀다.
몇 번인가를 더 누르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와 주었으면 했지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디지털도어락인 강하의 오피스텔 문 앞에 망연자실서서
애꿎은 손잡이만 돌려보던 윤하가 자신의 오피스텔 문 앞에 앉아서
술에 취해 잠이라도 든 것인지
고른 숨을 뱉어내는 강하에게로 복잡한 시선을 옮겼다.
자기의 생각에도 어이가 없었다.
자기보다 30cm 정도나 차이가 나는 키와
더군다나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남자를
자신이 어떻게 집안으로 데리고 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냥 복도에 내버리고
자기혼자만 들어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강하를 업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강하의 거대한 몸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문을 여는 것만 해도
거짓말 조금 보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강하의 뒤에서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강하의 팔을 잡고는 끌던 윤하는 여의치 않았던지
강하와 거리를 두고 있던 몸을 강하의 등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가 두 팔로 강하의 몸을 안아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자신이 신고 있는 슬리퍼를 던지듯 벗어버리고는 강하의 신발을 벗겨냈다.
윤하에 의해 안으로 들어온 강하의 다리는
거의 바닥에 질질 끌렸지만 윤하에게는 그것마저도 힘이 들었다.
숨이 절로 가빠져오고,
손바닥에서는 땀이 배어나왔다.
강하의 몸에 닿은 몸이 뜨거웠다.
세차게 방망이질하는 가슴이
강하의 등에 닿는 것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아무리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라지만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들키기라도 한 듯 얼굴로 확 열이 뻗쳤다.
침대 앞에서 잠시 멈춰서 강하의 몸을 다잡고는
침대위로 거의 내던지다 시피 강하의 상체를 내려놓았다.
풀썩 소리를 내며 침대에 상체가 걸쳐진 강하를 보다가
침대위로 힘겹게 기어 올라가
강하의 다리를 마저 침대 위로 끌어올린 윤하의 입에서
‘끄응’하는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한번 훑어내고는
배를 깔고 누워있는 강하의 몸을 뒤집어 바로 해주고는
강하의 머리 밑에 베개를 대어주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냉장고 앞에 서서 차가운 물을 마시며 열을 식히던 윤하가
물이 담긴 컵을 들고 침대로 다가가 스탠드 불을 켰다.
은은한 불빛이 침대에 누워있는 강하의 얼굴위로 쏟아졌다.
컵을 스탠드 옆에 내려놓은 윤하가
강하의 머리맡에 조심스럽게 앉아
사정없이 요동치는 감정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강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자신의 눈앞에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는 강하의 모습이 믿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몇 번의 심호흡이 도움이 되었던지
처음보다 나아진 자신의 상태를 느끼며
윤하는 강하의 얼굴을 지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강하의 가슴께로 시선을 내렸다.
숨은 쉬고 있었다.
왜인지 그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의 모습에
설핏 웃음이 나왔다.
원래 술에 만취한 사람들은 다들 그런것인지
자신이 그렇게 난리를 피우며
현관 앞에서 부터 침대까지 끌고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죽은 듯 잠을 자고 있는 강하가 신기했다.
조금만 귀기울려도 이렇게 강하의 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데...
두근두근 울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강하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정신이 하나도 없던 윤하의 이마에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제야 꿈은 아닌가 보다고 생각했다.
꿈이라고 하기엔 강하의 숨소리가
그만의 특유의 체취가
너무 생생하니까.....
강하의 숱 많은 속눈썹이 얼굴위로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렇게 속눈썹이 길었던가?
자신의 속눈썹 보다 더 길어 보이는 강하의 속눈썹을 한참을 응시하던 윤하가
이마위에 답답하게 흐트러져 있는 강하의 앞머리에 떨리는 손을 갖다 대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리해주고는
저도 모르게 잘생긴 이마 위에 가만히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짙은 눈썹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가볍게 뒤척이는 강하 때문에 놀란 윤하가
‘훅’하고 숨을 들이켜고는 손을 얼른 떼어냈다.
멎은 줄 알았던 심장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뛰고
강하의 이마에 닿았던 손가락 끝이 데인 듯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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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올린 10편이 분량이 너무 적었지요 ㅠ.ㅠ
그런데 어딜 다녀오느라 어제도 올리지 못하고.;;
원래 11편이랑 12편은 수진과 강하의 이야기를 넣을려고
혼자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걸 번외로 넣을까하고.;;
뒤로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뭔가 어색하게 보일지도...
아, 그리고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9편 조회수를 보고.
또 민망하였습니다.
껑충 혼자 뛰어오른 조회수에 기쁜 마음보다 우울해지네요.
솔직한 심정은..우스워서..
에고고 무슨말을 또 늘어놓는 건지..;;
이치치님이랑 옥이님 너무 감사드린다는..
매번 꼬릿말로 응원해주시고 관심가져주셔서
제가 힘을 냅니다.ㅎㅎㅎ
옥이님은 어딜 가신다고 하시던데 어여 돌아와 주세요.^^
또 여기까지 읽어 주신 님님님님!!!
너무 고마워요 ㅎㅎㅎ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중편 ]
Runner's High [11]
소심한얍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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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3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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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하에 대한 윤하의 심정을 뚜렷하고 정확하게 글로 표현해주셨군요~^^읽으면서 막 머릿속에 강하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다는...[제가 쫌 변녀기질이 다분;;;쿨럭~]ㅋㅋ사람의 감정이란게 참 자기 뜻대로 흘러가주지가 않죠~^^근데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간절한게 아닐까요??..지금 윤하의 심정처럼 말이죠!!ㅋㅋ껑충 뛴 조회수때문에 우울하시다는 소녀님!!.그것또한 소녀님의 관심이라고 생각해주시면 훨씬 맘 편히 받아들일수 있을꺼예요~^^ㅋㅋ이치치~너무 맘에 드는거 있죠~^^다음편도 기대하는거 알죠??건필!!^^그리구 여름더위 조심하세요^^
저도 소녀 너무 맘에 들어요 ㅎㅎㅎ 엑 근데 9편이아니고 8편이었네요. ㅋㅋ 이치치님도 이 살인적인 더위를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어요. ^^ 항상 행복만 하세요.^^
옥이가 돌아왔어요 ^^ 그 무거운 강하를 자기 집까지 데리고온 친절한 윤하씨.. ㅋㅋㅋ -ㅅ- 강하도 윤하에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좀 친절해졌으면 좋겠네요..
강하가 너무 어이없이 태도 돌변을 하였습니다.ㅡㅡ;; 민망하여서 에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