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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9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일 이후 첫 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나의 영육을 성령으로 장악하여 주시고 세상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붙잡아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밤새 오염된 영혼을 정결하게 하소서.
나를 주장하는 옛 사람은 십자가로 못 박습니다.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행하는 새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12-26
제목 : 궐(闕)이 난 가룟 유다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 또 한 사람의 맛디아가 되다.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이나 되더라. 그 대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 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 나의 묵상
예수께서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승천하신 것을 보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처소인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있던 제자들과 사람들의 이름은 이렇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및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거기에 모여 한 마음으로 온전히 기도하였다.
그들이 모인 수가 약 120명 정도 되었다.
그 때 베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성령께서 다윗을 통해 유다에 관해 말씀하신 것 중에, 유다가 예수님을 잡은 사람들의 앞잡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다는 우리와 같이 행하던 자였으며 우리처럼 사도직을 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옳지 못한 행동을 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이 옳지 못한 밭에서 거꾸로 떨어져 배가 터지고 창자가 밖으로 나온 채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밭을 자기들 말로 아겔다마라 부릅니다.
이는 피밭이라는 뜻입니다.
시편에는 그의 집을 폐허로 만드시고 아무도 그곳에 살지 못하게 하소서, 또 시편 다른 곳에서는 다른 사람이 그의 직책을 차지하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다니시던 동안, 우리와 같이 다녔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뽑힐 사람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던 때부터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때까지 우리와 함께 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우리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유스도라고도 하고 바사바라고도 하는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추천하였다.
그 때 사도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택하셨습니까? 자기 직분을 버리고 자기가 원래 속했던 곳으로 간 유다를 대신해서 이 사도의 직분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한 후에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가 뽑혔다.
그 때부터 맛디아가 다른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뜻인 영생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그에게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셨으나 만드신 그 때로부터 영생의 존재는 아니었다.
만들어진 사람의 생명과 주시려는 아들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약속하신 것이 영생인데, 이 영생은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이 창세전에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면 만들어진 사람이 그 아들을 믿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전 1:20, 쉬운성경)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리스도를 택하시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보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을 입고 아들이 세상에 오면 그 아들을 믿어 영생의 존재가 될 수 있음에도 아담은 사탄의 꼬임에 빠져 아들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범죄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담을 버리시지 않고 징계하시면서 그에게 두 차원의 복음을 주신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는 존재적 복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존재 자체가 복음이다.
또 한 차원은 메시야적 행위로써의 복음을 말한다.
이는 아담을 대신하여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메시야가 되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와 함께 그 옷을 입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복음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사람들과 늘 함께 하시겠노라 하는 약속으로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여 보내주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리고 실제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
(마 1:21-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제 그 아들이 때가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죄와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
(갈 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구원의 옷, 공의의 옷을 주실 메시야를 예언하신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처럼 죄로 인하여 부정한 자가 되었으나 메시야이신 주님께서 당신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으며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아버지 집으로 승천하셨기에 오늘 우리도 그의 옷을 입어야만 그의 생명을 얻어 살 수 있으며 우리도 날마다 주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 날마다 만물 위로 올라가는 삶을 살 수 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니라 주님의 구속사건에 나도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을 통하여 얻는 영생이다.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위의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곧 믿는 것이란,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며 그를 먹는 자는 주님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 6:55-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따라서 아들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생명의 양식인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갸룟 유다의 죽음으로 인하여 궐(闕)이 난 사도의 자리를 맛디아로 채운다.
그의 자리는 단순히 무슨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는 생명을 주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리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는 자기 자신이 먼저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생명을 얻어야 하는 자리이다.
내가 먼저 먹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한 생명의 양식을 나눠줄 수 있다.
나는 오늘 또 한 사람의 맛디아가 되어 궐이 난 사도의 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 직분이 탐이 나서가 아니다.
그 자리가 멋져 보여서도 아니다.
그 자리는 고난의 자리요 때로는 무덤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생명을 먹는 자리요 생명을 나눠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나는 기어이 그 자리에 가서 앉는 것이다.
이전에는 맛디아와 내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저 그는 가룟 유다 대신에 사도의 반열에 들어간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이 묵상을 통하여 내가 맛디아의 자리에 가서 앉을 수 있는 것은 나 또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사명을 가진 자로서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내가 먼저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이 자리가 때로는 무덤이지만, 무덤을 통해서만 생명으로 나아올 수 있기에 나는 기꺼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게 입혀주신 구원과 공의의 옷, 그리스도 보혈의 옷을 입고 이 자리에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영생의 기쁨을 누린다.
묵상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어찌나 불안하고 초조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묵상을 마치려는 순간, 주의 생명이 나를 장악한다.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그저 자리만 채우는 여느 맛디아가 아니라 정말 그 자리에서 아들의 생명을 얻는 자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그 자리를 용납하며 그 안에서 주님의 생명을 얻어 주와 함께 늘 연합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세상의 어떠한 쾌락과 즐거움(fun)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으로 만족한 자 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joy)이 나를 새 생명 가운데서 일어서게 하소서.
내가 오늘 또 한 사람, 맛디아가 됩니다.
생명을 얻는 자리, 또한 생명을 나눠주는 자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여 내 안에 주의 생명으로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하며 늘 주님을 양식 삼게 하소서.
그 생명의 양식을 풍족하게 나눠주는 사도적 사명을 다하는 주의 종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기뻐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