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였던 열여덟 살 소녀가
하루아침에 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것도 노비 신분으로 떨어져서 애처롭게
물러나야 했습니다.
남편은 왕위를 빼앗긴 채 영월로 유배를 갔고
그녀는 서울 동대문 밖 초라한 초가집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64년을 살았습니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영월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면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녀가 죽고 나서 177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왕비로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을 기다린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 씨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겠습니다.
1440년, 여산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태어난
송 씨는 어릴 때부터 공손하고 검소한 성품으로
주변의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효성이 깊기로 유명했는데, 바로 이 점이
왕실의 눈에 들었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 왕실은 왕비를 간택할 때 집안의
배경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인성과 품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송 씨는 이러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후보였던
것입니다.
1452년, 송 씨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운명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단종의 왕비로 간택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송 씨가 단종보다
한 살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보통은 왕이
왕비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갑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왕실에서는 좀 더 성숙한 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혼인식은 성대하게 치러졌고, 송 씨는 조선의
왕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왕비가 된 송 씨의 삶은
처음에는 평범했습니다. 아니 평범하다는 표현이
맞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는 그랬습니다.
왕비의 삶이 평범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단종은 어렸지만 총명했고, 송 씨는 총명한
왕비로서 내조를 잘했습니다.
궁궐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고, 왕실의 어른들에게도
예의도 바르게 행동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1년도 채 가지도 못했습니다.
1453년, 송 씨가 왕비가 된 지 1년 만에 조선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수양대군의 쿠데타, 계유정난(癸酉靖難)이었습니다.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노골적으로
탐냈고 결국 권력을 장악한 뒤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정확히는 "선양(禪讓)"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강제로 빼앗은 것입니다. 단종은 열세 살의 나이에
왕위에서 물러나야 했고 송 씨는 하루아침에
왕비에서 의덕왕대비로 격이 바뀌었습니다.
의덕왕대비라는 호칭은 겉으로는 격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왕비는 현재 왕의 부인이지만, 대비는 이전 왕의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송 씨는 열다섯의 나이에
이미 과거의 사람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더 비극적인 건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짜 지옥은 2년 뒤에 찾아왔으니까요. 1455년,
단종 복위를 꾀하던 사육신을 비롯한 신하들의
계획이 발각됩니다. 세조는 이를 빌미로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영월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또다시 단종 복위 움직임이
있었다는 이유로 단종은 영월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정확한 죽임의 방식은 기록마다 다르지만 사약을
받았다는 설과 목을 졸려 죽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열일곱 살의 어린 왕은 그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것입니다. 남편이 유배를 가자
송 씨에게도 징벌이 내려집니다. 의덕왕대비에서
군부인으로 강등된 것입니다.
군부인이라는 건 대군의 부인 정도 되는 신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세조는 한 발 더
나아가 송 씨를 노비 신분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왕비였던 사람을 노비로 만든 것입니다.
다만 실제로 노비 노동을 시키지 못하게 했는데,
이건 명분상 체면을 차린 거였습니다. 결국 송 씨는
궁에서 쫓겨나 서울 동대문 밖 정업원이라는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정업원은 원래 폐비나 죄를 지은
궁녀들을 가두는 일종의 유폐 장소였습니다.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고 시설도
형편없었습니다. 송 씨는 그곳에서 초라한 초가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18살의 나이에 왕비에서 노비로
화려한 궁궐에서 누추한 초가로 떨어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송 씨의 삶은 기록에 따르면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동망봉이라는 언덕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을 생각하며 곡을 올렸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덕에 올랐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세조가 죽고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가
일찍 죽고 성종이 즉위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즉위했을 때는
송 씨는 60대가 되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송 씨는
변함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82세에 송 씨는 세상을 떠납니다.
세월이 흘러 숙종 때 단종은 정상적인 왕으로
복권됩니다. 단종이 왕으로 복권됨으로 자연적으로
송 씨도 왕비로 복위되어 "정순왕후"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무덤도 사릉(思陵)이라는 능호를 받게 됩니다. 사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습니다.
단종의 능은 장릉(莊陵)으로 지금도 영월에 있습니다.
죽어서도 함께할 수 없는 비운의 왕비였습니다.
조선 역사에서 훈구공신(勳舊功臣)이라는 말이 시작된 것은
세조 때부터라고 합니다. 정통성이 모자라니 많은
공신들을 만들어서 자기 세력화하여 정권을 유지하였던
것입니다. 그 폐해가 결국 조선의 망국을 재촉한 빌미가
된 것입니다.
백성은 정통성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것이 그 뜻입니다.
친구들, 어느덧 2월도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세월의 빠름이 화살과 같습니다. 정신줄 놓지 마시고
건강 잘 챙겨서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끝"
첫댓글 남자들의 영욕속에 여자들은 언제나 뒷전이였던,그래서 몰랐던 역사 한 페이지 잘 배우고 갑니다.
날씨가 들죽날죽합니다. 감기조심하이소.
요즘 '왕과 사는 남자' 영화가 대 성황입디다.
누적 관객 700만 육박.
계유정란이라면 세조와 '한명회'를 뺄 수 없죠.
청주 한씨.
저 불렀어요?
수양대군 세조는 단종 친형제 사육신 등 그렇게 마니 죽었는데 피부병과 귀신증에 걸러
엄청난 고통과 천벌을 받아 죽어지요 ~푸틴도 빨리 죽어야 겠지요 ~
요즘은 착하게 안 살면 당대에 귀신이 바로 잡아 간답니다 ~ 다들 착하게 삽시다~...
정사와 적당한 허구를 결합하여 스토리를 만들면 히트합니다.
왕의 남자,광해군,왕과 사는 남자 등등.
역사는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특히 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