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21)
“又文殊師利 菩薩摩訶薩 於後末世 法欲滅時 有受持是法華經者
於在家出家人中 生大慈心 於非菩薩人中 生大悲心 應作是念
<如是之人 則爲大失 如來方便 隨宜說法 不聞不知不覺
不問不信不解 其人 雖不問不信不解是經 我得阿褥多羅三藐三菩提時
隨在何地 以神通力 智慧力引之 令得住是法中>
(安樂行品 第 十四)
●이 부분에 대한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또한 문수사리보살이여, 보살마하살로서 장래 말법시대에 법이 단멸하려고 할 때
이 법화경을 수지하는 자는 재가자와 출가인에게 큰 자애의 마음(慈心)을 내고, 보살이
아닌 사람에게는 큰 연민의 마음(悲心)을 내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큰 이익을 잃을 것이다. 여래께서는 방편법으로 근기에 따라 법을
설하시는데, 지금 이들은 불법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더라도, 내가 무상정등정각을 얻을 때
어떤 곳에 있든지, 나는 신통의 힘과 지혜의 힘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이 묘법 가운데
머물게 하리라.”
* * * * * * * *
★문제의 경문: 於在家出家人中 生大慈心 於非菩薩人中 生大悲心
<출가한 사람이건, 출가하지 않은 사람이건 가리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대자심을 보여라
(於在家出家人中 生大慈心).>
이는 비단 대보살뿐만 아니라 모든 불자가 지녀야 할 지극히 당연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어느 누가 감히 손사레를 치며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겠나.
문제는 그 다음 구절이다.
<보살이 아닌 사람에게는 대비심을 보여라(於非菩薩人中 生大悲心).>
시중의 대부분 번역서는 <보살이 아닌 사람에게도 대자심을 보여라.>고 번역한다.
또 일본 Kosei 출판사는 <give rise to great compassion for people who are
not yet Bodhisattvas>라 번역해 놓았다.
재가출가인은 물론이고 아직 보살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도......라는 의미로 번역한 것 같다.
재가인이건 출가인이건 모두를 보살이라 칭하는 일본대가님들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다.
여기서 <非菩薩人>이라 함은 <보살을 비난하며 욕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非(아닐 비)>는 <誹(헐뜯을 비)>와 통용되는 글자다,
(가지고 계신 한자 사전을 참고하시라.)
다시 말해 여기서 <비보살인(非菩薩人)>이라 함은 <천제(闡提)>와 동의어다.
천제(闡提)혹은 일천제(一闡提)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보살을 헐뜯고 다니는 사람>을
의미한다.
문제의 이 경문은 <보살이 재가인 출가인 구별하지 말고 대비심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보살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 즉 비보살인(非菩薩人)에게도 대자심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大慈悲心>이라는 큰 떡을 <대자심(大慈心)>과 <대비심(大悲心)>으로 꼭 같이 나누어,
대자심은 재가출가인에게 주고, 대비심은 보살이 아닌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 이건 아닌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한 나성거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또한 문수사리여,
훗날 말법시대에 이르러 법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려 할 때,
이 법화경을 수지하는 대(大)보살들은 재가인이든 출가인이든
구별함이 없이 모두에게 대자심(大慈心)을 베풀어야 합니다.
나아가 보살을 비방하는 사람에게도 대비심(大悲心)을 베풀고
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너무나 큰 복을 놓치고 있구나. 여래께서 중생들의
바탕에 따라 방편으로 법을 설하시건만, 귀담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아는 바도 없고 느끼는 바도 없구나. 묻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해 비록 이 경전에 대해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지만,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는 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바탕에 따라 내가 지닌 신통과 지혜의 힘으로 이 사람들을 이끌어
법화경의 가르침을 깨닫게 하리라.>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