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아이오와주 첫 경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친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가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2라운드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상대로 총공세에 나섰다. 두 번째 경선지인 뉴햄프셔에서 압승한다면 민주당 후보로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맨체스터 하노버가에 자리 잡은 샌더스 선거본부에서는 8일 밤 늦게까지 캠프 관계자들이 남아 선거운동용 피켓과 팸플릿을 배포하며 승리를 다짐했다.
샌더스는 이날 오전 내슈아의 대니얼 웹스터 커뮤니티칼리지, 오후에는 더햄의 뉴햄프셔대를 찾아 열성 지지층인 대학생들을 향해 "반드시 투표해달라"며 지지를 촉구했다. 이날 낮 맨체스터 도심에 위치한 팰리스 극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샌더스가 대학 등록금 대폭 인하 공약을 설명하자 대학생들은 "버니, 버니"를 외치며 열광했다.
뉴햄프셔의 샌더스 유세장에는 대학생과 청년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여타 지역과 달리 고령의 백인들도 자리를 같이하며 지지를 표했다.
샌더스 캠프 자원봉사자 샌디 코널은 "클린턴으로는 대기업들이 주무르는 정치를 개혁할 수 없다"며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폭설과 한파가 불어닥친 뉴햄프셔주에서 대권을 향한 경선 2라운드가 시작됐다. 쌓인 눈과 매서운 바람에도 한 표를 행사하려는 뉴햄프셔 주민의 투표 행렬이 9일 아침부터 투표장 곳곳에서 목격됐다.
뉴햄프셔가 샌더스의 '텃밭'인 만큼 한때 지지율에서 클린턴을 큰 격차로 앞서기도 했으나 클린턴의 맹추격으로 격차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딸 첼시 클린턴을 앞세워 뉴햄프셔주 곳곳을 누볐다.
이날 오전 맨체스터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유세를 시작한 클린턴은 저녁에 허드슨가 얼바인고등학교에서 막판 유세를 벌이며 "8년 전 뉴햄프셔가 나를 지지했던 것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맨체스터 공항에서 만난 클린턴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미리암 데이컨은 "클린턴의 국정 경험을 압도할 수 있는 후보가 현재로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화당에서는 지난 1일 아이오와 경선에서 의외의 패배를 당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지지율 30%를 넘는 뉴햄프셔에서 설욕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일찌감치 전용기로 맨체스터에 도착해 인근의 살렘, 런던데리 등 일대를 순회하며 타운홀 미팅을 가졌고 저녁에는 맨체스터 버라이존와이어리스 센터에서 대규모 유세를 전개했다. 5000여 명이 몰린 트럼프 유세에는 부인과 딸도 동참해 열기를 더했다.
특히 트럼프는 아이오와에서 자신을 꺾은 테드 크루즈를 향해 '막말'도 서슴지 않으며 특유의 유세 스타일을 이어갔다. 유세 도중 한 청중이 비속어를 쓰며 크루즈를 비난하자 트럼프는 "아주 훌륭한 얘기"라며 "한 번 더 크게 외쳐 주세요"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아이오와에서 깜짝 1위를 한 크루즈, 3위로 부상한 마코 루비오를 비롯해 젭 부시, 존 케이식 등은 공화당의 적자를 자임하며 치열한 2위 싸움을 벌였다.
공화당 2위가 남은 경선에서 표를 독식하면서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돌풍을 꺾고 최종 공화당 후보로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
투표 전날인 8일 저녁 내슈아 커뮤니티칼리지 체육관에서 루비오 후보는 막판 유세에 열을 올렸다. 루비오는 "이메일 스캔들을 일으킨 클린턴에게도, 사회주의자 샌더스에게도 미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공화당에서 본선 경쟁력이 가장 강한 루비오를 밀어달라"고 호소했다. 눈보라 속에서도 지지자 수백 명이 유세장을 찾아 '루비오'를 연호했다.
루비오 유세장에서 만난 조지 파타키 전 뉴욕 주지사는 "북한 미사일 발사 등 리스크가 산재해 있다. 안전한 미국, 건강한 미국을 만들 유일한 후보가 루비오라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유세 도중 젭 부시 지지자인 공화당원이 난입해 "경험 없는 루비오로는 안 된다"고 외치다 쫓겨나는 등 곳곳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맨체스터 번화가인 엘름가에 자리 잡은 부시 뉴햄프셔 선거본부에서는 8일 밤늦게까지 지지자들의 투표를 독려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제시 헌트 부시 선거본부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날씨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타 후보들의 지지층은 충성도가 약하지만 부시 지지자들은 충성도가 높아 투표율이 높다. 승산이 있다"고 기대를 표명했다.
크루즈는 공화당 내 강경파인 '티파티'가 맨체스터에서 주최한 타운홀 미팅에서 유권자 설득에 나섰다. 크루즈는 "공화당 정신을 제대로 펼칠 적임자가 바로 크루즈"라며 힘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 여론조사선 트럼프·샌더스 우세…무당파 유권자 44%달해 막판 혼전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향한 두 번째 경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때아닌 폭설과 한파가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8일(현지시간) 오후부터 쏟아진 폭설이 주요 통행로를 가로막았고 -7도까지 내려가는 한파로 도로가 얼어붙으며 투표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각 후보 선거캠프에서는 9일 새벽까지 지지자들에게 투표를 독려했으나 유세장과 투표장에 기대했던 만큼 유권자들이 몰리지 않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지난 1일 실시한 아이오와 코커스와 함께 남은 경선의 방향을 가늠할 '대선 풍향계'로 통한다.
코커스는 등록된 당원들만 선거에 참여하지만 프라이머리는 일반 유권자도 자유롭게 표를 행사할 수 있어 당내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나침반이다.
이번 경선은 특히 폭설과 한파 속에서 진행되는 터라 충성도가 높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투표가 치러질 것으로 예상돼 고정 지지층과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낮은 충성도의 다수 지지자에게 기대온 후보들은 불리한 입장에 처해진 셈이다.
뉴햄프셔주 10개 카운티 300개 선거구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제히 투표가 진행되며 최종 개표 결과는 9일 밤(한국시간 10일 오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뉴햄프셔주 인구는 약 130만명, 이 중 유권자는 약 90만명에 불과하지만 2008년 경선 당시 60.2%의 투표율을 기록할 정도로 정치 참여도가 높다.
특히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은 무당파 유권자가 44%로 추산돼 막판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후보를 비롯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젭 부시, 마코 루비오 후보 등이 무당파 44%가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유세 막판까지 경선 승리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각 후보 진영의 유세가 마지막까지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것도 이 같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특징이 반영된 때문이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실시된 주요 언론사와 대학의 뉴햄프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의 경우 트럼프가 30%대 초반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루비오, 존 케이식, 테드 크루즈, 부시가 각각 11~15% 지지율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샌더스가 53.9%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힐러리가 40.7% 지지율로 맹추격 중이다.
[맨체스터(뉴햄프셔) = 이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