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 / 이서화 방언으로 만들어진 배 섬 안의 말들이 결착해 방언이 되었듯 삐거덕거리면서도 성실한 자리돔 잡는 어부와 테우는 많이 닮았다 배랄 것도 없는 배 전면이 물에 닿아 있으므로 풍파와 한 몸인 구상나무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배 한라산의 기슭과 파란 물빛이 서로 합쳐서 봄 바다에 뜬다 자리돔은 최남단 물빛이다 무리를 지어 잡히는 물빛 흑청색 반점을 눈인 양 앞 가슴지느러미에 달고 다니는 봄의 입맛이다 차귀도에서 잡은 자리물회의 잔뼈가 물살처럼 씹힌다 멀리 육지에선 피기 시작한 보리가 물살의 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 * 테우: 제주 지방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할 때 사용하거나 물자 이동에 이용해 온 아주 작은 배를 일컫는 말.
- 『누가 시켜서 피는 꽃』 (파란, 2024) ------------------------------- * 이서화 시인 강원 영월 출생, 2008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시집 『굴절을 읽다』 『낮달이 허락도 없이』 『날씨 하나를 샀다』
************************************************************************ * 오늘은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아서, 오전 내내 이서화 시인의 신작 시집을 읽습니다. - 누가 시켜서 피는 꽃 시집이 내게 오는 사이에 시인에게 몹쓸 병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만, 그의 시집을 읽으며 조심스럽게 그의 안부를 더듬어봅니다. "자작나무 숲을 보면/ 세상의 것들 대부분/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로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 희끗희끗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다"(「세상의 군락지」) 어떤 위로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그래도 위로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시집을 읽으며 이서화라는 시인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쯤으로 그의 시 「테우」를 부려놓습니다. "방언으로 만들어진 배" "전면이 물에 닿아 있으므로/ 풍파와 한 몸인" "배랄 것도 없는 배" 첫서리가 내린 새벽처럼 서늘한 문장입니다. - 박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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