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이 세상을 내 집이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나는 이곳에 대단히 친숙해져 있다. 늘 이곳에서 살아온 탓인가.
오늘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사랑하는 아들 노엘이가 공부할 프라이부르크로 가는 날이다. 어젯밤엔 그나마 조금 일찍 잠들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3시다.
저 무거운 여행 가방들을 들고 호텔을 나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해서 다시 집을 구할 때까지 잠시 머물기로 한 단골 호텔로 가는데 그 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1989년부터 벨기에에서 살며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지금까지 36년 동안 유럽에서 지내고 또 오고 간 날들이 짧지만은 않은데, 그리고 유럽을 70바퀴나 돌아보았는데도 오늘은 가야 하는 길이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늘 오갈 때 하루나 이틀 머무는 호텔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택시요금이 45유로이다. 그리고 시간대마다 요금이 다른, 저렴한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독일 고속열차(ICE)의 우리 가족 셋의 요금이 약 100유로(가장 비싼 시간대는 400유로 가까이다)이고 프라이부르크 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Schallstadt의 단골 호텔까지 가려면 또 40유로 정도의 요금을 지불 해야 한다.
그러니 오늘 우리 세 가족이 커다란 캐리어 3개와 기내용 캐리어 4개, 그리고 각자의 핸드캐리 3개와 보조가방 1~2개까지 모두 12개의 짐 보따리를 지고 약 400km 거리의 여행을 하는데 소요 되는 시간은 약 4~5시간 정도이고 여행경비는 약 200유로가 든다. 200유로는 우리 돈으로 약 30만 원인데 물가도 비싸지고 환율도 올랐다.
목적지에 잘 도착하면 몸도 마음도 편해지겠지만 그곳까지 가는 여정이 그리 만만치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여행 가방들은 무슨 고약한 심보인지 하나같이 다 무겁다. 모두 합치면 거의 200kg은 더 될 듯하다. 무엇보다 여린 아내와 어린 아들을 편안하고도 무사하게 잘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내게는 가장 무거운 짐이다. 그래도 힘을 내어서 가야 하는 길이고 또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이다.
아무리 독일을, 유럽을 수도 없이 드나들며 또 이곳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일하며 살았다 해도 내게 이곳은 집이 아니고 고향도 아니다.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서 엄연히 여행자이고 나그네이며 이방인이다. 그래서 이곳을 오갈 때마다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막연한 두려움과 낯설음이 존재한다.
여행자에겐 두 가지 불변의 규칙이 있다. 여행지가 아무리 좋고 친숙해도 결코 고향이 아니라는 것과 나그네가 지니고 다니는 짐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다는 것이다. 지난 36년간, 벨기에와 영국에서 공부를 하였고 유럽을 수도 없이 드나들며 70바퀴나 이곳을 구석구석 다녀본, 세상의 70 나라 정도를 방문했고 필리핀을 100번도 더 다녀본 내 여행자 삶의 불변의 결론이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프랑크푸르트 공항 곁의 호텔 로비에 홀로 앉아 이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코 짧지만은 않은 나날 동안의 나그네길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그네 인생길이, 나의 이 세상의 순례길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멈출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나그네 인생길이 마쳐지는 날, 나는 여느 때처럼 귀국행 비행편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 목적지는 내가 잠시 머문 이 세상이 아닌 내 본향 천국이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이 2024년 10월 6일이니 1958년 10월 4일에 태어난 나는 66년 이틀을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로 살아가고 있다. 독일에서 66번째 생일을 맞은 그저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1958년이 창세기라면 66년째가 된 2024년 10월에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지나갔다는. 그래서 이제 앞으로 살아갈 날인 67세, 68세부터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들이고 내 인생을 깊이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열심히 행하는 날들이고 내가 스스로 써 내려 가야 하는 삶의 여정이라고 말이다.
오늘 하루 가야 하는 길조차도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그래도 이 순례길을 힘을 내서 달려가야 한다. 만 12살에 독일 음대 피아노과(영재학교)에 최고의 성적으로 합격하여 이제 대학공부를 시작하는 사랑하는 아들 노엘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며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도록 도우며 보살피는 일이 오늘과 내일 내가 행하여야 하는 사명이라고 믿는다. 그러하기에 마음의 무거운 짐을 힘써 떨쳐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정말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도와주시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간구 드릴 뿐이다.
그러면서 결코 잊지않으려고 한다. 이곳은, 아무리 일시적으로 좋아보여도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젠가는 내 나그네 삶이 끝이 나고 저 본향에 들어가는 날이 불원간에 올 텐데 진작에 집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을 터이다.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프랑크푸르트 공항 곁의 단골 호텔의 로비에서 주 앞에 꿇어 엎디어 내 심령 깊이 살아계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드리며 그분을 겸손한 마음으로 뵈옵는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6~8)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들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길 멀지 않네
산 넘어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고향 하늘나라
날 구원 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