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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급증하는 노인파산 남의 일 아니다
노인들의 개인파산이 크게 늘고 있다. 수 년 전부터 예상했던 고령화사회에 대한 심각한 우려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정부는 6월에 저출산 및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계획을 발표했으나 32조원에 이르는 재원 조달이 막연해 흐지부지될 조짐이다. 정부는 듣기 그럴 듯한 포괄적 청사진만 전시할 게 아니라 조달 가능한 재원의 범위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합리적 시책을 내놓아야 한다. 서울 중앙지법 파산부의 '개인파산ㆍ개인회생 제도 운영실태'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개인파산 빈도는 팍팍한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증가폭이 크지 않으며 오히려 최근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반면 60대 이상 노인의 경우 2004년 6.3%(전체 신청자 대비)였던 것이 지난해 9.7%로 늘더니, 올해엔 11.5%(8월 현재)로 급증했다. 당연히 개인회생을 신청한 경우는 크게 줄어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노인의 날(10월 2일)을 맞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노인들의 경제사정이 상상 외로 궁핍한 사실이 드러났다. 초고령사회가 예상보다 일찍 도래하고 있으며 농촌지역에서 더 심각하다는 경고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 부부의 월 생계비가 116만원(지난해 말)으로 비(非)노인 가구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최근 들어 그들이 걱정거리로 '건강문제(30.1%)'보다 '경제적 어려움(44.6%)'을 더 호소한 것은 심각하다. 일터에서 물러난 노인들의 소득은 뻔하다. 일부 계층의 재산소득을 제외하면 자식으로부터의 이전소득과 정부의 공적연금이 전부다. 각종 제도를 보완해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경제문제와 건강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임은 물론이다. 아울러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적 부조,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법안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겠지만 특수직역 및 국민연금 제도를 개선하고, 경로연금이나 최저생계비 집행에서의 숱한 누수(漏水)를 방지하면 노인파산 증가는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제 새벽 서울 영등포역 통로에서 잠자던 노숙인 두 명이 방화 셔터에 눌려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다리 쭉 펴고 잠잘 곳도 없는 노숙인이 이렇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데서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긴 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이들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몇해 동안은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다. 정부도 이런저런 재활·보호대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큰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어느 땐가부터 사회적 관심도 부쩍 줄었다. 그런데도 겉보기엔 노숙인이 꽤 많이 줄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잘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심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가끔씩 철도역사 등에서 쪼그리고 잠자는 노숙인을 봐도 모두 무덤덤하다. 익숙한 도시 풍경의 한 부분으로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노숙인 지원단체가 집계한 지난 5월 현재 전국의 쉼터 이용자만도 3375명에 이른다. 한해 전에 비해 1000명 이상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가장 서러운 건 무관심이다. 특히 노숙인들은 더할 것이다. 노숙을 하게 된 사정은 제각각이겠지만, 노숙을 계속하다 보면 삶의 의욕을 잃기 쉽다. 노숙이 조금 길어지면 십중팔구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힘을 북돋워주지 않으면 노숙 생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긴 추석 연휴를 맞아서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하다. 고향에 갈 채비를 하는 사람, 친지들을 위한 선물을 챙기는 사람, 황금 연휴를 맞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노숙인을 비롯한 소외 계층은 더욱 쓸쓸해지기 마련이다. 명절에라도 그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주는 배려가 아쉽다. 비록 일시적일지언정 그들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노숙인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새우잠이라도 잘 수 있는 곳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들이 다시 일어서도록 돕는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난 뒤의 일이다. 거리에서 노숙하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다시 없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현 정부는 부동산과 관련해 2003년 ‘10·29대책’, 작년 ‘8·31대책’, 올해 ‘3·30대책’ 등을 내놓으며 “투기는 끝났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전국 땅값이 3년 사이 평균 16.4% 올랐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가격을 잡겠다”던 정부의 공언(公言)은 크게 빗나갔다. 김영삼 정부 5년간 6.2% 하락하고 김대중 정부 때도 1.1% 떨어진 땅값이다.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을 한다며 남발한 개발계획이 땅값 급등의 주요인이다. 공장용지 값도 덩달아 뛰어 기업들의 신·증설 투자 부담만 커졌다. 국내 투자 위축과 기업경쟁력 약화의 한 요인이다. 토지 소유의 편중 현상도 여전하다. 결국 소수의 지주(地主)만 더 큰 부자로 만들어 줘, 땅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양극화(兩極化)를 심화시킨 ‘반(反)서민 정부’인 셈이다. ‘집값 잡기’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2003년 10·29대책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전국 평균 상승률(5%)의 4배 이상인 23% 올랐다. 서울 강남구 집값은 특히 작년 8·31대책 이후 1년 동안에만 13.3%나 뛰었다. 요즘도 일부 지역의 전세금이 급등하고 매매값 역시 다시 들썩인다. 수요공급 원리와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 부응하는 정책을 펴 왔더라면 지금쯤 집값이 많이 안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지방 건설 경기는 더 위축돼 올 7월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7년 만에 가장 많은 7만여 채나 됐다. 수도권은 공급이 모자라 청약 과열현상이 빚어지는데 지방에선 건설업체들의 파산이 이어진다. 이 정부 아래서 주택시장도 양극화가 심해진 것이다. 노 대통령 책상 위엔 한동안 헨리 조지라는 미국 경제사상가의 책 ‘진보와 빈곤’이 놓여 있었다. ‘경제발전의 과실(果實)을 모두 땅주인이 따먹으니, 토지세는 무겁게 매기되 다른 세금은 모두 없애자’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21세기 세계 어디서도 안 통하는 이런 이론의 신봉자들이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올해 4월까지 정부 조세개혁특별위원장으로 일했던 곽태원 서강대 교수는 그제 “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조지의 이론을 잘못 적용했다”며 건물(주택)에 대한 중과세(重課稅)를 비판했다. 잘못된 정책이 장기적으로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정책을 ‘헌법만큼이나 바꾸기 어려운 제도’로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이를 수정해야 국민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韓日한일정상회담이 오는 9일 서울에서 열린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취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추진해온 연쇄 정상회담을 우리가 받아들인 결과다. 고이즈미를 계승한 아베 총리는 대부분의 고이즈미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도 고이즈미가 아시아 관계를 경시한 결과로 빚어진 한국 및 중국과의 극단적 외교 不通불통사태만은 완화시켜야겠다는 뜻을 표명해 왔다. 고이즈미 시대의 한·일 관계는 야스쿠니 神社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문제 등으로 막다른 곳까지 다다랐다. 일본 頂上정상의 言動언동이 야기한 이런 장기간에 걸친 외교 대립은 北核북핵 문제를 비롯한 동북아의 不安불안 요인 제거가 시급한 상황에서 동북아의 안정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신임 아베 총리가 이런 사안에 대한 大乘的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드시 한국과의 관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내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결단이다. 우리 역시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가능한 것’과 ‘바람직한 것’을 구별하고 ‘가능한 것’의 현실화와 그 축적을 통해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현실적이고 일관성 있는 외교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어설픈 희망에 기대거나 그 일방적 기대가 빗나갔다 해서 이번에는 그 반대편으로 기울어 버리는 ‘시계추 외교’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고이즈미 총리는 나와 닮았다. 내 임기 중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까지 마음을 놓아 버렸다. 그러다 일본 시마네縣현이 ‘독도의 날’ 條例조례를 만든 작년 2월부터 “일본과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고 그 정반대 쪽으로 쏠려 버렸다. 국제관계에선 우리에게 ‘가능한 변화의 幅폭’이 제한되어 있듯이 상대에게도 ‘가능한 변화의 幅폭’이 제한돼 있음을 꿰뚫어보고 이 같은 양자관계를 우리 國益국익을 最大化최대화하는 쪽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나라 정상에게 모두 필요한 마음의 자세다.
유럽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독일 폴크스바겐의 노사가 근무시간을 주 28시간에서 최대 33시간으로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임금은 동결해 사실상 시간당 임금이 삭감됐다. 그 대신 회사 측은 2011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기로 노조에 약속했다. 당초 회사 측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6개 생산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2011년까지 2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노조가 버텼으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경쟁은 치열해지는 냉엄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 합의로 회사는 인건비를 줄여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고, 노조는 일자리를 계속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강성 노조의 산실이었던 독일에서 최근 폴크스바겐과 유사한 노사 합의가 늘고 있다. 유압기기 생산업체인 하베의 노사는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인도 현지공장을 독일로 유턴하기로 합의했다. 일자리가 생긴다면 임금이 줄고 일이 고된 것은 견딜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덕분이라고 한다. 상생(相生)의 노사 관계가 굳어지면서 독일 경제는 1%대의 저성장에서 벗어나 올해 2.5% 안팎의 성장을 이뤄낼 전망이다. 더 이상 유럽의 병자가 아닌 것이다. 독일의 노동여건이 우리와 다르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하자'는 독일 노사의 노력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우리처럼 최하위권인 세계 114위의 노사협력(세계경제포럼 국가경쟁력 순위)으로는 공장과 일자리를 해외로 내몰 뿐이다. 아예 문을 닫는 것보다는 조금씩 양보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훨씬 낫다는 사실을 노사 모두 유념했으면 한다.
어제(2일)는 제10회 노인의 날. ‘건강한 노년 더불어 사는 밝은 세상’이란 슬로건 아래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다. 정부 차원에서도 한명숙 국무총리가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노인수발보험제도 등 몇 가지 노인복지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인의 날이 처음 제정되던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참으로 놀라운 속도로 진행됐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9.5%로 10년 사이 3.4%포인트 늘어났다. 2018년이면 노인 비율이 14.3%로 고령사회가 되고, 2026에는 20.8%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됐으나, 고령화에 대비한 우리 사회의 인프라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정부 차원의 노인복지정책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고,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말만 무성할 뿐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가 없다. 일자리가 없으니 소득원이 없고, 그렇다보니 노인들의 생활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노인부부 가구의 소득이 월 평균 1백16만원이라고 하나 대부분은 자식에게서 받은 이전소득이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는 노인은 10명 중 3명도 안된다. 빚에 쪼들려 파산신청하거나, 삶이 괴롭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도 늘어간다. 평균 수명이 남자 74세, 여자 81세로 길어졌지만, 경제력 없는 노인에게 장수(長壽)가 축복일 수만은 없다. 우리가 지금 상태로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면 국가적 불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른 어떤 요인보다 노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성장 잠재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노인 대책은 건강, 소득 확충, 일자리 제공 등 3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한총리는 이날 발표에서 노인수발보험제도를 2008년 7월에나 도입하겠다고 했다. 기초노령연금은 어디에서 재원을 조달할 것인지 분명한 언급이 없다. 연령차별금지를 법제화한다고 했으나 사오정, 오륙도란 말이 횡행하는 민간기업에서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한총리 발표 중 반가운 내용은 임금 피크제 실시기업에 보전수당을 주고 정년 연장 및 정년 후 재고용기업에 장려금을 준다는 방안이다. 노인 인력을 국가경제에 활용하는 효율적 방안을 찾는 것이야말로 다가올 노령사회에 대비하는 최고의 지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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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大選走者 제1요건은 국민 상처 아물게 할 리더십 박근혜 한나라당 前전 대표는 유럽 방문 중인 1일 독일에서 “野黨야당으로서 한계를 느꼈다. 이제는 政權정권을 바꿔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선진국을 만들고 싶다. 大選대선후보 競選경선에 참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前전 서울시장은 “경선에 참여해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건 前전 총리도 얼마전 자신의 大選대선출마 입지와 관련해서 新黨신당에 관심이 있음을 피력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前전 의장은 이날 두 달여 독일 체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에 작은 것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與圈여권과 野圈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모두 머지않은 장래에 대선에 대한 의지를 잇달아 표명할 듯하다. 완연한 大選대선 局面국면에 접어든다는 뜻이다. 다음 대선은 아직 1년 2개월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국민 관심이 벌써 대선쪽으로 쏠리고 있는 이유는 지난 3년반 동안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에 心身심신이 지쳐버린 국민들이 오늘에 대한 희망을 접고 내일 속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선정국의 早期 可視化조기가시화에 따를 부작용을 염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불가피성에 대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대선정국이 때 이르게 표면화된 背景배경에 이런 사정이 깔려 있기에 국민들이 대선 走者주자에게 묻는 질문의 순서도 바뀌게 됐다. 지금 국민들이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과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은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지난 3년 반 동안 찢길 대로 찢겨버린 국민을 다시 하나로 아우르고, 상처 받은 국민과 나라를 治癒치유할 수 있는 어떤 방안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의 국민들은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범답안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 대선 주자가 과연 그가 입에 담은 모범답안을 실천에 옮길 品性품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눈여겨보려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2002년 12월 19일 밤 “저를 반대하신 분들도 포함한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다. 이 말이 지금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지 않고 함께 품고 껴안았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지난 3년반 동안 모든 국경일의 경축사, 각종 면담발언, 정책입안, 정책수행에서 일관되게 ‘국민중의 내편’과 ‘국민중의 남의 편’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갈라 왔다. 이 정권이 입안한 국방·안보정책, 對美대미관계, 對北대북관계, 주택정책, 교육정책, 행정수도 문제, 서울·지방문제, 양극화문제 등 모든 정책이 국민의 어느 부분을 끊임없이 상처 주고 모욕하고 희롱하고 억압하고 질시하고 打擊타격 주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 이 정권은 집권 3년반 만에 한 나라 한 국민을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치에 의해서 두 쪽으로 分裂분열된 국민들이 지금 무엇보다 절실히 기다리고 있는 리더십은 국민을 다시 한 나라 한 국민으로 되돌아가게 해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국민으로 만드는 리더십이다. 모든 대선주자들은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설] 한·일 정상회담에서 兩國 頂上이 명심할 것 韓日한일정상회담이 오는 9일 서울에서 열린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취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추진해온 연쇄 정상회담을 우리가 받아들인 결과다. 고이즈미를 계승한 아베 총리는 대부분의 고이즈미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도 고이즈미가 아시아 관계를 경시한 결과로 빚어진 한국 및 중국과의 극단적 외교 不通불통사태만은 완화시켜야겠다는 뜻을 표명해 왔다.
고이즈미 시대의 한·일 관계는 야스쿠니 神社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문제 등으로 막다른 곳까지 다다랐다. 일본 頂上정상의 言動언동이 야기한 이런 장기간에 걸친 외교 대립은 北核북핵 문제를 비롯한 동북아의 不安불안 요인 제거가 시급한 상황에서 동북아의 안정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신임 아베 총리가 이런 사안에 대한 大乘的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드시 한국과의 관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내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결단이다. 우리 역시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가능한 것’과 ‘바람직한 것’을 구별하고 ‘가능한 것’의 현실화와 그 축적을 통해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현실적이고 일관성 있는 외교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어설픈 희망에 기대거나 그 일방적 기대가 빗나갔다 해서 이번에는 그 반대편으로 기울어 버리는 ‘시계추 외교’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고이즈미 총리는 나와 닮았다. 내 임기 중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까지 마음을 놓아 버렸다. 그러다 일본 시마네縣현이 ‘독도의 날’ 條例조례를 만든 작년 2월부터 “일본과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고 그 정반대 쪽으로 쏠려 버렸다. 국제관계에선 우리에게 ‘가능한 변화의 幅폭’이 제한되어 있듯이 상대에게도 ‘가능한 변화의 幅폭’이 제한돼 있음을 꿰뚫어보고 이 같은 양자관계를 우리 國益국익을 最大化최대화하는 쪽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나라 정상에게 모두 필요한 마음의 자세다.
[사설] ‘용산공원’은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가 아니다 국무조정실이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에 의뢰한 ‘용산공원 공원화 구상 연구’라는 用役용역보고서가 공개됐다. 작년 10월 완성됐다는 이 보고서는 용산미군기지 81만평 가운데 5군데의 用途용도를 바꿔 상업단지와 업무단지로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국무조정실은 지금까지 용산공원 硏究연구용역을 네 차례 맡겼다. 지난 8월엔 주택도시연구원이 작년 4월 작성했다는 보고서가 공개됐었다. 그 보고서에도 용산기지의 세 곳 5만평에 아파트단지와 쇼핑센터, 사무실 빌딩을 집어넣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나머지 두 보고서는 어느 기관이 맡아 작성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용역보고서는 용역을 맡긴 發注者발주자의 구상과 주문을 반영해 작성하기 마련이다. 국무조정실과 건교부는 “용역보고서는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부가 상업·주거지역으로 개발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연구자들이 그런 개발안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추병직 건교부 장관은 “정부 방침은 용산기지 전체를 공원화하는 것”이라고 얘기해 왔다. 그러나 건교부가 지난 7월 입법 예고한 ‘용산공원 특별법안’엔 건교부 장관이 용산공원 부지 용도를 바꿀 수 있게 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정부가 미군기지 移轉이전비용 때문에 일부 부지는 꼭 상업 개발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면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할 일이다. 말로는 땅 장사 절대 하지 않겠다면서 공개되는 용역보고서마다 상업 개발을 하는 것으로 돼 있으니 국민이 정부 말을 못 믿는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용산공원사업을 하면서 정부가 왜 그렇게 비밀작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쉬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용역보고서가 새나가지 않게 움켜쥐고 있는 것부터가 그렇다. 공원사업을 함께 협의해야 할 서울시도 “정부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전혀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에 무슨 떳떳지 못한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류근일 칼럼]‘사이비 민족주의’ 內戰
김일성은 우선 8·15 직후부터 소련 당국의 시시콜콜한 지령을 받으며 북한 지역에 공산당 1당 독재를 수립해 ‘우파 민족주의’와 ‘서구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족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며 압살했다. 공산혁명에 협조하지 않는 정파들을 아예 그렇게 씨를 말리려 한 것 자체가 ‘민족주의’ 즉 ‘민족 통합’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민족 통합’은 다양한 사상의 공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다원사회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지 김일성처럼 “우리에 반대하면 다 ‘반민족’으로 몰아 죽이겠다”로는 결코 이룩될 수 없다. 그리고 그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만 내세웠지 ‘민족주의’는 긍정한 적이 없다. 김일성은 60년대에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라는 ‘수령 절대주의’를 확립했다. 그가 ‘사회주의’ 대신 ‘조선민족 제1주의’ 운운하며 스스로 ‘민족주의자’인 양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그의 ‘주체’ 운운은 신판 쇄국주의, ‘천황제’적 수령 독재 그리고 세계 최악의 ‘굶겨 죽이는 폭정’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대(代)에 이르러…. 김정일은 소련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자신의 수령 독재가 위협받자 ‘선군(先軍)정치’라는 군사 통치를 선포하고 핵·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개혁·개방 대신 남쪽을 약탈해 먹을 궁리를 했다. 이 약탈의 명분이 다름아닌 ‘우리 민족끼리’ 선동이었다. 대한민국 세력, 자유민주 세력, 김정일 비판 세력을 모조리 ‘반민족’으로 몰아 자기를 구출해내고 먹여 살리라는 요구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찍소리 한 마디 못 질렀다. 이게 과연 ‘민족주의’인가? 문제는 김정일의 이런 전략에 내응하는 세력이 우리 내부에 광범위한 진지(陣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NL(민족해방)운동권이 그들이다. 그들은 반독재운동의 변두리에서 집적거리다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민주화운동’을 하이재킹 한 계열이다. 이들이 오늘날 ‘민족’과 ‘반미’를 내세워 온갖 행패를 다 부리며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할퀴어 놓은장본인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수호 진영을 ‘친미·친일 반민족’이라며 공갈 협박하더니 요즘엔 비판 언론에 대한 ‘백주의 테러’까지 발생했다. 테러를 하면서 범인들은 조선일보를 향해 ‘민족’의 적(敵)이라고 매도했다. 바로 “우리에 반대하면 다 ‘반민족’으로 몰아 죽이겠다”는 김일성·김정일·NL운동권 특유의 상투적 논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NL운동권은 그러나 우리 민족을 300만명씩이나 굶겨 죽인 김정일의 폐쇄주의, 국제 범죄, 인권 압살, ‘천황제’에 대해서는 ‘진보’ ‘자주’ ‘민족’ ‘평등’이라며 편들어준다. 이 말도 안 되는 위선에 넘어간 ‘신도(信徒)’들이 있는 한 그들의 유사 ‘성전(聖戰)’ 테러는 언젠가는터지게 돼 있던 시한폭탄이었다. 1936년 6월 16일 스페인 가톨릭계 정치 지도자 질 로블레스는 국회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나라 자체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 언론규제법을 거머쥔 인민전선 정권하에서 4개월 사이 269건의 암살, 160건의 교회 방화 그리고 10건의 비판 언론 습격사건이 있은 후에 나온 연설이었다. 우리에게도 김정일식 ‘가짜 민족주의’의 테러 내전(內戰)은 이미 실제 상황이 됐는지도 모른다.
중앙 [사설] 대선 후보의 공정 경쟁과 승복 [중앙일보]
[사설] 문 닫는 것보다 근로시간 늘린 폴크스바겐 [중앙일보]
[사설] 뚜렷해진 화장문화, 화장장 부족이 문제다 [중앙일보]
[시론] 중·러 밀월과 동북아 신냉전 [중앙일보]
한겨레
동아 [사설]短氣의 ‘자주 장사’로 미국 이익만 키워 준 정부
국가 간의 관계도 일종의 거래다. 상대의 의중을 철저히 파악해 ‘밑지는 장사’가 되지 않도록 머리를 써야 한다. 그것이 국익이다. 그러나 노 정부는 ‘뒷심 없는 자주’ 외마디로 판판이 손해를 봤다.
정부는 미국의 속도 모르고 독립운동이라도 하듯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만 강조하다 천문학적인 안보 비용을 국민에게 부담시키게 됐다. 미국은 해외 분쟁에 주한미군을 신속히 투입하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공동 행사해 온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길 필요가 있었다. 최첨단 군사장비로 무장한 주한미군을 오로지 한국 방위에만 묶어 놓고, 유사시 대규모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하게 돼 있는 현재의 한미연합사령부 체제로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줄 것 다 주고 한미동맹 이완시켜 안보 불안▼
그래서 미국이야말로 한국의 눈치를 살피며 전시작전권 이양의 계기를 찾아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먼저 들고 나섰으니 미국으로선 내심 쾌재를 부른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생색내면서 첨단무기까지 한국에 팔게 됐다.
정부는 자주국방을 내세워 국민에게 비용청구서를 정신없이 발부할 것이다. 그러고도 전쟁억지력(抑止力)은 떨어지게 됐다. 당장 미 국방부는 주한 미8군 사령부를 2008년 말까지 해체해 하와이에 있는 미 태평양 육군사령부로 통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8군 사령부가 해체되면 유사시 미군 증원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국군의 이라크 파병,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부분 참여 등도 미국의 뜻을 받아들인 것들이다. 처음엔 펄펄 뛰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우리가 얻은 것은 거의 없이 무너지곤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내기 위한 ‘미국의 작은 양보’를 원했지만 조지 W 부시 정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우리는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미국은 ‘불가(不可)’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줄 건 다 주고 되받기는커녕 좋은 소리도 못 듣는 최악의 외교가 ‘자주외교’라면 그런 자주가 무슨 소용인가.
▼韓日-韓中 정상회담, 냉철해야 할 대통령▼
대일(對日) 외교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다음 주 아베 신조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하기로 돼 있지만 성과는 불투명하다. 한일관계 악화의 주된 책임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 있는데도, 노 대통령이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대일 발언으로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일본 측 인식도 뿌리가 깊어진 상태다.
노 대통령은 작년 3월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해 “(한일 간에)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올해 4월 발표한 특별담화문에서도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중재자여야 할 대통령이 선두에서 이런 발언을 함으로써 대화의 여지를 스스로 닫아 버렸다. 그런 대통령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선 이상하리만큼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러니까 “국민의 반일감정을 노린 또 하나의 자주 장사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노 대통령은 다음 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도 정상회담을 한다. 한일, 한중 정상외교에서 노 대통령이 좀 더 냉철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잠시 국민이 듣기 좋은 소리만으로 국익을 지켜낼 수 없음을 많은 국민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외교를 잘못하면 그 부채(負債)를 국민이 두고두고 갚아야 한다. [사설]땅값 집값 뛰게 해 경제 더 흔든 부동산정책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을 한다며 남발한 개발계획이 땅값 급등의 주요인이다. 공장용지 값도 덩달아 뛰어 기업들의 신·증설 투자 부담만 커졌다. 국내 투자 위축과 기업경쟁력 약화의 한 요인이다. 토지 소유의 편중 현상도 여전하다. 결국 소수의 지주(地主)만 더 큰 부자로 만들어 줘, 땅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양극화(兩極化)를 심화시킨 ‘반(反)서민 정부’인 셈이다.
‘집값 잡기’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2003년 10·29대책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전국 평균 상승률(5%)의 4배 이상인 23% 올랐다. 서울 강남구 집값은 특히 작년 8·31대책 이후 1년 동안에만 13.3%나 뛰었다. 요즘도 일부 지역의 전세금이 급등하고 매매값 역시 다시 들썩인다. 수요공급 원리와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 부응하는 정책을 펴 왔더라면 지금쯤 집값이 많이 안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지방 건설 경기는 더 위축돼 올 7월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7년 만에 가장 많은 7만여 채나 됐다. 수도권은 공급이 모자라 청약 과열현상이 빚어지는데 지방에선 건설업체들의 파산이 이어진다. 이 정부 아래서 주택시장도 양극화가 심해진 것이다.
노 대통령 책상 위엔 한동안 헨리 조지라는 미국 경제사상가의 책 ‘진보와 빈곤’이 놓여 있었다. ‘경제발전의 과실(果實)을 모두 땅주인이 따먹으니, 토지세는 무겁게 매기되 다른 세금은 모두 없애자’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21세기 세계 어디서도 안 통하는 이런 이론의 신봉자들이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올해 4월까지 정부 조세개혁특별위원장으로 일했던 곽태원 서강대 교수는 그제 “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조지의 이론을 잘못 적용했다”며 건물(주택)에 대한 중과세(重課稅)를 비판했다. 잘못된 정책이 장기적으로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정책을 ‘헌법만큼이나 바꾸기 어려운 제도’로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이를 수정해야 국민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이규민 칼럼]정신은 마르고 문화는 쇠퇴하고
발명품에도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제일 높은 자리에는 아마도 ‘책’이 올라 칭송을 받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책이야말로 선인들의 지식과 지혜를 축적하고 전수하는 수단으로, 오늘의 문명을 이룩하게 한 가장 큰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과 중요한 지식은 책이라는 발명품 속에 기록되고 보존되어 왔다. 성경 등 대부분의 종교 경전과 세계 각국의 헌법들은 대개 책으로 반포되었고 공자의 사상과 뉴턴의 이론도 책으로 전해져 왔다. 찰스 디킨스의 흥미진진한 소설과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도 책이 있어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예로부터 문명인은 책과 함께 살아왔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 왔다. 고대 아시리아에 존재했던 장서 1만 권의 도서관부터 1000만 권이 넘는 미 국회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국가들은 도서관에 정성을 들였다. 선남선녀에게 청아한 즐거움을 주고 사회적으로 정신문화의 중추 역할을 해 온 책의 소중함, 그 역할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출판사와 서점들은 시민과 정부의 따뜻한 사랑과 열렬한 지원으로 크게 번창해야 할 업종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전자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은 외국과 어깨를 겨루며 경쟁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세계적 규모의 출판사는 없다. 선진국에 비해 빈약한 우리나라 서점의 서가는 그나마 어린이 도서나 입시준비용 참고서가 아니면 ‘생각을 바꾸면 돈이 보인다’와 같은 저급한 제목의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판에 고금의 위대한 양서나 학계의 가치 있는 전문 서적을 출간하려는 출판사들이 살아남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출판 분야뿐 아니라 고급문화 전반이 영양실조로 쇠약해 가고, 정신적 삶에 영양을 주는 인문학이 빈사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후진적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마친 후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돌아가는 화려한 대중 스타들과 비교할 때 지성적 직종에 종사하는 출판업자들의 삶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이 출연하는 TV 토론프로에도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은 초대됐지만 출판계 인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천박해진 세태 탓이기도 하지만 철학이 부족한 정치인들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집권 지상주의에 빠져 오로지 선거에서의 승리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 ‘표’는 국가적으로 가치 있는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표’와 직접 관계없는 고급문화는 홀대받고 ‘인기’와 밀접한 대중문화는 후대받는 것이 당연시됐다.
나라경제가 궁핍할 때조차 외채를 끌어들여서까지 대영박물관과 런던교향악단 같은 고급문화 발전에 애를 쓰던 영국과 대중오락이 판치는 대한민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앙드레 말로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에게 문화부 장관을 맡기는 나라와 유명 영화감독에게 문화부 장관을 시키는 나라에는 훗날 어떤 차이가 생길까. 대중문화는 범람하고 있지만 고급문화는 쇠퇴하고, 영화관은 열면 대박이지만 서점들은 지쳐 문을 닫는 나라, 우리나라 사람보다 책 안 읽는 국민은 아마도 아프리카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탄식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물론 살아가는 데는 대중문화도 중요하다. 지구상에 오락이 없고 공자님 맹자님만 수십억 꽉 차 있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차라리 연예인 수십억과 함께 사는 게 재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양념 같은 존재다. 음식에 양념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본질이 거의 없는 싸구려 양념범벅이 되어 가는 꼴이다. 근본이 충실한 나라가 되려면 사회가 개그쇼에만 심취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 ‘업그레이드’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며 집권세력도 저급 투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고급문화 중흥에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비록 자신들의 코드에는 맞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시론/박철희]한국형 386 vs 일본형 386
일본의 전후세대 정치인은 고도성장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경제 대국 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1990년대에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세 가지 충격적인 경험으로 새로운 정치적 사고의 틀을 갖게 됐다. 하나는 걸프전의 충격이다. 일본은 130억 달러라는 거금을 걸프전에 쏟아 붓고도 국제사회에서 인적 공헌을 안 했다는 이유로 ‘수표 발행 외교’ 또는 ‘일국 평화주의’라고 비난받는 처지가 됐다.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인식이 이들 전후세대에게 다가왔다. 미국의 압력에 응해 돈을 냈는데도 미국마저 평가를 안 해 주는 일본 외교를 보면서 외압에 굴복하기보다는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전후세대 정치인이다. 반응형(reactive) 외교를 탈피해 자기주도형(proactive) 외교를 하자는 것이 아베의 ‘주장하는 외교’의 실체이다.
또 하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대표되는 역사 문제의 전면 부각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일본군위안부라는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속죄 요구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직격탄이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의 출발점은 수치심과 굴욕의 극복, 사죄 외교에서의 탈출이었다. 일본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과 역사 해석으로 ‘아름다운 일본’을 만들자는 것은 아베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후세대 정치인이 공유한 또 하나의 슬픈 경험은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경제 불황의 도래이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가라앉는 시기에 중국이 급속도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아편전쟁 이후 150년간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위를 가졌던 일본인에게 강한 중국의 등장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욱일승천하던 시대엔 미국도 무섭지 않다던 일본에서 중국 위협론이 팽배하고 미일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이다.
한일 386세대를 비교해 보면 국가 전략의 착지점이 다를 뿐 인식과 사고의 구조가 비슷하다. 한국의 전후세대인 386은 일본의 386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모른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해 자신감이 강하다. 민주화를 자신들의 투쟁으로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국제화의 세례를 받은 첫 세대이기도 하다. 미국에 대한 자주 외교, 한국 방위의 한국화, 동북아에서의 균형 외교론, 몰락하는 말썽꾸러기 북한에 대한 포용론의 근저에는 386세대의 한국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이 깔려 있다.
한일 386세대가 공유한 자국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 회복 의식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자존심을 내건 체면 싸움에서는 서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들이 보기에 부당한 압력이면 굴복하기보다는 반발한다.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기에 앞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 그래서 민족주의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양국 386세대가 가지는 장점은 감성보다는 논리를, 불투명한 거래와 야합보다는 투명한 교환을, 일방적 양보보다는 대등한 협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약점이 전면에 드러나면 19세기형 갈등이 재연될 것이지만, 장점을 잘 활용하면 냉전기와는 다른 21세기형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도쿄에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일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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