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원기소
출처 동아일보 :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70817/85856892/1#csidx7ab31f47fd09af990b4cf271bf39660
만화영화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말 국민학생 기영과 중학생 기철 형제의 궁핍했지만 정겨웠던 일상을 담았다. 3기 15화는 기영이 결혼식에 간 엄마가 카스텔라를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며 코흘리개 여동생을 돌보는 내용이다. 우는 동생을 달래다 원기소(元氣素) 병을 발견한 기영. 엄마가 평소 동생한테만 아껴 주던 원기소를 한 알 두 알 입에 넣다가 결국 몽땅 먹어버린다. 엄마가 카스텔라가 아니라 비누를 들고 오자 실망한 기영은 원기소 병이 텅 빈 걸 알게 된 엄마의 고함을 피해 집 밖으로 달아난다.
▷40대 후반 이상이라면 원기소의 고소한 맛과 역기를 든 사람 상표를 기억할 것이다. 1954년 판매 허가를 받은 원기소는 그 무렵의 거의 유일한 비타민B 영양제라고 할 수 있었다. 광고문구도 ‘우리는 젖 먹을 때부터 원기소! 발육촉진, 식욕증진, 병에 저항력 강화’였다. 1963년에 새로운 영양제로 삐콤씨와 아로나민이 나란히 선보였지만 원기소 인기는 좀체 식을 줄 몰랐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기영이처럼 과자라고 여긴 아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어제 서울약품공업㈜의 원기소 판매를 금지했다. 식욕 부진이나 소화 불량에 효과가 있음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상은 휴업 상태인 이 회사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던 탓이다. 원기소도 만들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됐다. 다만 별개 회사가 2015년부터 판매한 건강기능식품 ‘추억의 원기소’에 불똥이 튀었다. 판매 금지당한 원기소와 혼동한 판매처가 반품하는 등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검정고무신에서는 원기소가 막내 차지였지만 현실에서는 장남이나 외동아들 몫이 될 때가 대부분이었다. 어머니가 숨겨놓고는 장차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할 아들에게 주었다. 영양제까지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줘야 했던, 어려웠던 그 시절을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나 역시 어머니가 옷장 위에 숨겨둔 원기소 병을 찾아내 한 움큼씩 꺼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건드리지 말라던 어머니 말씀을 어긴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진 논설위원
그때 그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
찌그러진 바께스와 누런 양철로 된 큰 주전자를 든 당번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앞줄에 서려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하지만 앞줄은 이미 새벽부터 와 있던 서너 명의 아이들이 차지한 상태다. 사실 앞에 서나 뒤에서나 급식량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빵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은 것일 뿐. 급식을 하는 시간의 백열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살을 에는 듯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보려 발을 동동 구른다. 또 몇몇 아이들은 울긋불긋 얼어터진 손등에 호, 호, 하고 입김을 불어넣어 녹여보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강냉이 찐빵과 우유 배급이 있는 날은 마치 동네잔칫날 같았다. 평소 지각에결석을 밥 먹듯 하던 녀석들도 이 날만큼은 절대 늦거나 빠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조차 평소보다 이삼십 분 씩은 일찍 오셔서 배급에 차질이 없도록 몸소 챙기시는 것이다.
마침내 식간에 불이 켜지고, 토끼털 귀마개를 검은 고무줄로 동여맨 소사 아저씨가 어정어정 걸어 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찜통을 열어젖히자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함께 퍼지는 구수한 찐빵 냄새……. 코흘리개 녀석 하나가 눈을 지그시 감고 흠흠~ 하고 황홀해하던 표정이란.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팔공산 빛viit명상 터 초입에 감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았다. 바로 어린 시절 감나무에 얽힌 애틋한 기억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 앞마당의 감나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서 있었다.
“얘들아, 감 따거라!”
어머니의 말씀이 신호탄이라도 되듯 여덟 형제가 앞 다투어 감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 이 소식을 알았는지 동네 사람들도 허겁지겁 감나무 아래로 모여드는 것이다. 마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의 얼굴에 어려 있던 배고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만드는 잊을 수 없는 표정이다.
다른 형제들은 신이 나서 감 따기에 여념이 없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배고픈 표정을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멀리 담벼락 밑의 사람들을 향해 감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이를 본 형제들이
“야, 니 지금 뭐하는기고?”
하며 화를 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저 아래에서 감을 받아든 사람들은 언제 준비해왔는지 된장을 꺼내들었다. 감의 떫은맛에 목이 메일까봐 감을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된장에 찍어먹는 감 맛, 과연 요즘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각설이 친구
학교에 가면 한 학급에 70-80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들어차 대체 수업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 할 때도 많았다. 담임선생님조차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 하시고 출석부 없이는 누가 자신의 반 학생인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반 이상의 아이들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어올 땐 모두 배가 복어처럼 볼록해져서 돌아왔다. 점심 도시락 대신 우물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말이다.
내 짝은 그런 형편의 친구들 보다 더한, 매끼 밥을 빌어먹는 각설이였다.
“경식아, 너 재밌는 노래 또 불러봐, 그 노래 참 우습고 좋다.”
“좋기 뭘 좋노? 광호 네가 부르라 카이까 또 한 번 불러 본데이, 어얼씨고씨고 들어간다아아아~ 저얼 씨고 씨고 들어간다아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가 경식이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하면 경식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눈을 질끈 감고 책상 위에 바가지를 둘러엎어 연필로 장단을 쳐가며 각설이 타령을 불러 댔다. 그런 경식이의 노래와 익살에 모든 친구들이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면 경식이는 더 신이 나서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그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는 무언가 모를 애달픔이 담겨 있었다.
사실 경식이는 공부보다 각설이 타령을 잘 부르는 것이 더 급했다. 얼마나 슬프고 애처롭게 타령을 하느냐에 따라 얻어먹는 밥의 양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청하지 않아도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짱 좋고 여유만만 하던 각설이 경식이도 매월 말만 되면 풀이 죽었다. 그 때만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으로부터 월사금 독촉을 받기 때문이다.
“인석아, 받을 때가 없어도 일단 나가! 어디 가서든지 빌려오란 말이다. 너 벌써 석 달 치나 밀렸어. 이젠 더 사정을 봐 줄래야 봐줄 수도 없어!”
“없는데 어떡하는교? 먹고 죽을라캐도 돈 땡전 한푼 업심더, 쌤요.”
이때만 되면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집세를 받는 주인과 하숙비를 독촉 받는 하숙생 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이 시절에는 혼내는 사람이나 혼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모두 안 된 것도 마음 아플 것도 부끄럽고 미안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다들 가난하고 함께 배고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주신 월사금이 담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그 놈을 만지작거리다 과감하게 월사금 봉투를 경식이 앞에 들이밀었다.
“경식아, 잠깐만! 이거 너 해.”
“이게 뭐꼬? 니 월사금 30원 아인가?”
“일단, 이 돈으로 월사금 내. 난 걱정 말고. 나는 월사금이 밀리지 않았으니 선생님께서 봐 주실 거야.”
“광호야, 니 이래도 돼는 기가? 암튼, 참말로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나를 몹시도 매몰차게 내쫓으셨다.
“이 녀석, 정광호! 넌 형편도 좋으면서 왜 월사금을 안내? 어디다 까먹은 것 아니야? 어쨌든 너도 나가서 빨리 받아와!”
이렇게 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교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쫓겨났다기보다 신나게 뛰쳐나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기에!
친구들과 신나게 들판으로 달려가는 내게 이미 가방은 오간 데 없고, 옆구리에 찬 자랑스런 수통이 달그락달그락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 수통으로 말하자면 전쟁 중 군인들이 쓰던 물통인데 어떤 사연인지 우리 집 다락방에 골동품처럼 누워 있다가 내 눈에 띄어 다시금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수통은 비가 오는 날이면 시냇가의 붕어로,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메뚜기로 채워져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통 노릇을 톡톡히 해 주었는데 덕분에 책보보다 더 소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 수통이 이제는 검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내 방 한 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쫓겨난 후의 이야기를 연결해 가자면, 다음날, 선생님께 월사금만을 드리기가 겸연쩍어 수통의 메뚜기와 꺼내서 함께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도 못 이기는 척 눈을 흘기시면서 받으시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자리에 들어가 얌전히 수업해라.”
하시는 것이다. 나와 그분의 입가엔 미소가 돌았고 그러면서 이미 어제의 일은 그분이나 나난 없었던 일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아예 수업을 뒷전으로 하고 선생님 몰래 교실 밖으로 친구들과 뛰쳐나가곤 했다. 다름 아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빗물에 학교 뒤 개천이 넘쳐나면 숨쉬기 바쁜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등이 그냥 물위로 둥둥 떠다녔다. 아무 요령 없이도 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참을 신이 나서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고기를 잡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를 혼내기 위해 씩씩거리며 선생님도 옷을 걷어 부치시고 도랑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고기를 잡고 계셨다.
이처럼 굳이 잘못을 빌고 용서해 준다는 말이 없어도 몸짓과 표정으로서 용서받고 화해하던 그 시절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제자의 부스럼 병이 안타까워 자신의 월급을 뚝 떼어내어 치료비로 보태시던 선생님, 그리고 친구의 월사금을 내준 후, 돈을 다시 받으려는 어설픈 거짓말에 모른 척 하시며 묵묵히 30원을 또 내어주시던 부모님,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은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출처 : 빛viit의 책 2권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P. 20 ~ 26
잡는 재미, 다시 놓아 보내주는 즐거움
학창 시절에 취미 삼아 근교로 고기잡이를 갔다. 틈만 나면 냇가나 개울로 가서 사발에 된장을 넣어 놓거나 반도(작은 어망)를 치기도 했다. 그것도 싫증나면 그냥 고기 따라 같이 뛰어 논다. 고기잡이가 끝날 즈음에는 잡은 고기들을 도로 놓아 주며, “이놈들아! 딴 녀석에게는 이제 잡히지 마라. 오늘 나에게 잡힌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 다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걸리지 마라” 하며 타이른다.
그러면 풀려난 고기들은 말귀를 알아들었기라도 한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치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럴 때의 잡는 재미, 다시 놓아 보내 주는 즐거움은 잡아먹는 즐거움에 비할 수가 없다.
이놈들은 순진하여 돌아서면 또 다시 된장 사발통에 들어간다. 그러나 몇 번이나 반복을 하는 동안 그 놈들도 시시해 졌는지 아니면 꾀가 생겼는지 잘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럴 즈음이면 그 곳에서의 고기잡이를 끝낸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정광호 지음) 1996.6.30. 초판 1쇄 P.232
첫댓글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때 그 시절, 잡는 재미,다시 놓아 보내주는 즐거움 " 감사드립니다.
"어려운시절어린이의 유일한 간식거리인 원기소" 에대한 논단과 귀한 빛글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예전에는 마음(정성)이먼저였던 시절이었고,
지금은 물질(돈)먼저인 시절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소중한 마음씀이 너무 많이 잊혀진 ...
원기소의 추억, 학회장님의 빛책속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또다른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겠죠.
옛날 원기소, 급식, 고기잡이처럼...
함께 나누어먹은 그무언가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순간순간 모든것이 소중한 오늘을
느껴게 해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사랑이 있어 아름답고 정겨운 시절~ 잘보았습니다. 훈훈한 마음이네요!!
횡설수설 이진님의 글 잘보고갑니다
지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월사금(육성회비)을 못내서 쫓겨서 집으로 갈때는 부끄럽고 창피하였지요.
그래도 그때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 물질적 풍요속에 마음의 풍요가 사라져버린 요즘, 빛활동의 중요성을 더 깊이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그시절 잡는재미 다시 놓아 보내는 즐거움 !! 빛명상 세상돋보기에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어릴적 원기소가 질려서 몰래 버린적도
있습니다....
그때 그시절
학회장님 어릴적 이야기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빛마음으로 오늘을 되돌아 봅니다올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힘들지만 순수했던 시절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너무 순수하고 착하셨던 어린시절 이야기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