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행은 대승불교로 가는 실천적 지침이다. 소승불교의 지침이 무상관, 부정관, 무아관이라라면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이다. 이 여섯 가지 덕을 잘 실천하면 누구나 마음의 고통을 없애고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첫째 보시(布施,Generosity)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더불어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있게 한 모든 만물(천지부모)에 감사하며 베푸는 마음과 실천으로 남을 귀중히 여기는 생활을 한다. 보시는 생명을 살리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다.
보시행의 경우 이런 인과응보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식으로 일어난다. 즉, 작은 보시의 선업을 지었는데, 큰 과보를 받는 것이다. <대지도론>에서는 보시의 공덕을 설명하면서, “축생에게 보시하면 100배가 되어 돌아오고, 악인(惡人)에게 보시하면 1000배가 되어 돌아오며, 선인(善人)에게 보시하면 10만배가 되어 돌아오고, 욕심을 떠난 사람(離欲人)에게 보시하면 10억만배가 되어 돌아오며, 수다원과 같은 성인들께 보시하면 무량한 복이 돌아온다.”고 가르친다.
이 경문의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는, 보시의 선업을 지었을 때 그에 대한 과보가 1:1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100 이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고, 둘째는 ‘보다 선(善)하고 수행의 경지가 높은 분’에게 보시할수록 그 과보가 크다는 점이다. 심지어 짐승이라고 해도, 내가 밥을 한 끼 먹여주면 그런 보시의 공덕으로 인해 내가 100끼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과보를 받는다. 또, 불교 수행의 길에서 수다원의 지위에 오른 성인(聖人)에게 보시할 경우 무량한 복이 돌아온다. 그 대상이 짐승이든 인간이든, 인간의 경우 악인이든 성인이든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시할 경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100배 이상, 많게는 무량한 복덕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 같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짐승이든 인간이든 다른 생명체에게 크게 보시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세 끼 밥을 넉넉히 먹고 살아가는 것은 아마 되로 주듯이 몇 번 보시했던 일에 대해 말로 받고 있는 과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은 보시로 큰 과보를 받았던 일화는 아쇼카왕의 전기인 <아육왕전>에도 실려 있다. 불교에 귀의한 후 무력이 아니라 다르마(법)에 의한 통치를 선언했던 아쇼카왕은 전생에 덕승(德勝)이라는 이름의 어린아이였는데 동생과 흙으로 성(城)을 만들면서 놀다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시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뵈었다. 덕승 동자는 흙으로 만든 성 안의 창고 자리에서 흙 한 줌을 움켜쥐고서 ‘보리’라고 부르며 부처님께 시주를 올렸고, 부처님께서는 이를 기꺼이 받아주셨다. 덕숭동자는 이 보시의 공덕으로 인해 그 다음 생에 인도대륙 거의 전역을 통일한 아쇼카왕이 되었다고 한다. 되로 주고 말 이상으로 받는 엄청난 과보다. 그를 받아주신 분이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부처님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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