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자어를 한글로 쓰는 것을 암호라고 말한다. 암호는 해독이 어려운 것이니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알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면 타당하나 일률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한자어를 한자로 쓰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는 그것이 우리말이라고 하기에는 곤란한 중국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금 화두에 오른 ‘일로영일(一勞永逸)’이란 사자성어는 한자어 중에서도 한문투이기 때문에 그것을 한글로 일로영일이라고 적으면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문투라는 것은 바로 우리말과 맞지 않는 어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바로 중국어, 즉 한문으로 쓰여진 책에서 그대로 인용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말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오늘 이후 ‘일로영일’이라고 적으면 그것이 一勞永逸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알아 볼 것이다. 학습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한자를 알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우리말로 해석한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를 보고 즉각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문을 전공한 몇 안 되는 사람에 속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로서 예를 들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서행’이다. 천천히 간다는 뜻이다. 한자로 徐行이라고 쓴다. 이 단어는 한자어투, 즉 한문투의 대표적인 예인데, 그것은 천천히라는 부사와 간다는 동사가 합하여진 단어로서 우리말로 하면 ‘천천히 간다’와 같이 부사와 동사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단어다. 이것을 한자로서 붙여 쓰니 우리말과는 전혀 다른 어법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문투이며 이런 단어는 우리말에서 사라져야 할 단어다. 이런 한문투의 단어는 불원간(不遠間)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말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를 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식하거나 고집스러운 짓이라고 본다. 천천히 가시오 또는 천천히 가다로 쓰야 할 것을 굳이 서행이라고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단어를 쓰면서 한자로 쓰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어 암호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며 고집이다.
그러나 서행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미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던 단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발음만으로 그 뜻을 알기 때문이다. 그 발음만으로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이 사라질 때 쯤이면 그 말은 천천히 간다로 대체될 것이다. 말은 살아있어 저절로 의사소통이 편한 쪽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를 계속해서 쓰면 서행(徐行)이라는 단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말은 한글로 쓰되 필요할 경우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서 쓰자고 나는 주장한다.
그런데 암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암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徐行’을 ‘서행’으로 쓰는 것을 암호라고 하고 한자로 쓰지 않아서 뜻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자.
우리는 통상 의사소통을 글자로만 하지 않고 말로서 많이 한다. 예를 들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뉴스를 들을 때 한자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서행을 포함한 문장을 말하였을 때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따라서 서행을 徐行으로 적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 뜻을 모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그리고 암호로 말할 것 같으면 한자 자체가 암호다. 예를 들어 서행의 서(徐)자를 예로 들어보자. 서(徐)자는 나 여(余)자를 포함하고 있는 글자로서, 여(余)자를 포함한 한자는 여(餘), 서(徐), 서(敍), 제(除), 사(斜), 도(途), 도(塗) 등 여러 글자가 있다. 글자가 다르니 그 뜻도 다르다. 뜻에 따라 글자를 외워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암호가 아니고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서(徐)자가 천천히라는 뜻을 가진 것은 그렇게 익히기 때문이지 그 글자 자체에서 천천히라는 뜻을 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斜)자가 기울었다는 뜻을 가진 것은 그렇게 익혀야만 한다. 글자 자체에서 기울었다는 뜻을 알 수는 없다. 말하자면 한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암호다. 마치 이진법에서 0101에 하나의 뜻을 매칭시키고 0110에 다른 뜻을 매칭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마치 이 기계어(전산에서 2진법 언어는 기계어라고 한다)를 보다 쉽게 알기 위해 전산 프로그래밍 언어가 발달하였듯이 한자는 이진법에서 조금 더 발전한 형태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어셈블리 언어(assembly言語)는 거의 기계어에 가까우나 그러나 우리가 아는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 기계어와 일대일 매칭이 되어 프로그래밍을 용이하게 한다. 한자어는 바로 이 어셈블리 언어 수준의 암호체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언어라기 보다는 부호체계에 더 가깝다.
따라서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것은 암호라고는 하나 쉬운 암호에 불과하다. 한자 자체가 더 어려운 암호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뜻을 한자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바란다. 왜 훌륭한 우리말과 글을 두고 한자를 굳이 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자어를 한글로 적으면 그것이 암호이기 때문에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자는 그 자체가 더 어려운 암호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자어를 한글로 적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암호라면 우리는 말로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글자로 보지 않고서도 능히 소리로서만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것은 한자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한글로 한자어를 적는 것이 암호가 아니라는 증거다. 부디 억지주장을 이제 그만 두기 바란다. 한자는 그 자체가 더 어려운 암호체계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그 보다는 더 쉬운 암호다. 왜냐하면 한자어는 거의 두 자 이상이 결합된 것으로서 이미 한자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고유한 단어로 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學校)라고 할 경우, 배울 학(學)자와 학교 교(校)자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학교’라는 소리만으로 알 수 있는 이미 우리 말 화 한 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한자어는 이와 같이 한자와 무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 굳이 말한다면 외래어와 비슷한 성질의 단어로 굳어진 것들이다. 말로서 이해할 수 없는 한자어는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 써야 하는데, 이런 단어는 우리말고 친하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早晩間) 사라질 말들이다. 보다 친숙한 우리말로 대체될 것으로 믿는다. 여기서 쓴 ‘조만간’이라는 단어도 이미 우리말로 된 것으로서 한자로 쓰면 오히려 어색하다. 언어는 이와 같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한자를 반드시 사용하여야 한다는 억지 주장은 이제 거두기 바란다.
다음 글들은 한글을 암호라고 주장한 것들이다.
암호를 韓國語라고 우기는 한심한 大韓民國 新聞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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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辰(草堂大 교수) 오늘날 大韓民國의 新聞 記事들은 水準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한글專用"으로 무조건 한글로만 적으니까 意味를 알 수 없는 內容들이 많다. 大韓民國 政府는 “國語基本法”이라는 國法까지 만들어서 國民에게 아무 생각 없이 살라고 强要한다. 言語는 意味는 알 필요 없이 그냥 소리만 알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소리마저도 正確한 소리가 아니라 非標準發音인 엉망진창의 소리다. 도대체 地球上 어느 나라가 국민에게 意味도 알 수 없고 發音도 正確히 할 수 없는 言語生活을 法으로까지 强要하는 어처구니없는 나라가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大韓民國을 빼놓고 말이다. 자, 例를 들어보자. 오늘 20101년 1월 2일자 『데일리안』 나기환 정치부장이 쓴 칼럼 기사 제목이 이렇다. “<칼럼> ´일로영일´이 ´방기곡경´에 길을 묻다” 자,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게 暗號지 어디 韓國語인가?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理解가 가시는가? 그에 對比되는 2010년 1월 1일자 『뉴데일리』 趙甲濟 기자가 쓴 記事 題目이 있다. “一勞永逸과 騎虎之勢” 똑같이 각각 두 개씩의 四字成語를 이용하여 쓴 두 칼럼 제목인데 과연 어떻게 적은 것이 올바르게 적은 것이겠는가? 여러분이 스스로 判斷해 보기 바란다. 도저히 意味를 알 수 없는 暗號를 적은 기사 몇 개를 더 들어본다. [여성조선] 2010.01.02. 백은영 기자. “유승준 영화 '대병소장'으로 8년 만에 컴백”. 이 기사에서 “유승준”의 성이 柳인지 兪인지 劉인지도 알 수 없다. 물론 “승준”의 意味도 알 수 없다. 저 이름의 姓을 모르면 저 이름을 바르게 읽을 수도 없다. 柳면 [류ː]로 긴소리로 발음해야 하지만 兪와 劉는 [유]로 짧게 소리내야 한다. 그러니 한글로 적는 漢字語 固有名詞는 意味를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正確한 發音조차도 할 수 없다. 예로부터 韓國에서는 “姓을 갈 놈”이라는 욕이 있다. 그래서 “잘못하면 내가 姓을 갈겠다”고 盟誓를 하곤 했다. 그 정도로 韓國 사회에서 집안을 나타내는 姓은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한글專用으로 그 姓이 破壞되어 버렸다. 韓國人 모두가 “姓을 간 상놈"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大韓民國 政府가 國法으로 온 國民을 "상놈"으로 轉落시켜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앞잡이가 된 자들이 바로 新聞과 放送과 같은 言論人들이다. 言論이 “社會의 木鐸”이 아니라 “韓國 社會 破壞者”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에, 저 記事 題目에서 “대병소장”은 도대체 무슨 意味인가? 아무리 推測을 해봐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 韓國語만 수십 년 공부하는 大學敎授도 알 수 없는 낱말이 과연 韓國語인가? 이처럼 韓國 社會는 人名` 地名` 作品名 등 漢字語 固有名詞의 意味를 알 수 없는 것이 이제 아주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大韓民國에서는 漢字語 固有名詞의 意味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다. 大韓民國 社會는 漢字語 固有名詞는 意味를 몰라야 正常인, 매우 異常한 社會가 되어버렸다. 이런 社會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 “槪念 없이 사는 사람”이 되라고 國法을 만들어서 强要하는 이런 韓國 사회가 과연 正常的인 사회일까? 과연 大韓民國 政府가 언제까지 이런 “愚民政策”을 펴야 하는가? 大韓民國 政府는 國民을 “골빈사람”으로 만들어서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자, 다음의 記事 題目들도 보자. [한겨레신문] 우재욱. 2009. 12. 31. “[말글살이] 전철련”. [중앙일보] 2009. 12. 31. 유광종 논설위원. “[분수대] 심우”. [한국재경신문] 2009. 12. 31. “[사설] 기축년을 마감하며”. 여러분은 “전철련”의 意味를 알 수 있는가? “심우”의 意味를 알 수 있는가? 한편, 『한국재경신문』은 新聞이 아에 대놓고 詐欺를 치고 있다. “己丑年”은 2010년 2월 13일까지이다. 2월 14일 설날이 되어야 비로소 “庚寅年” 호랑이해가 된다. 그런데 저 新聞은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은 “己丑年”을 제멋대로 마감한다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그것도 신문의 얼굴이라는 “社說”로 말이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大韓民國 新聞의 水準이다. 예전에는 新聞이 社會를 이끌어가는 指導的 구실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新聞은 남에게 指摘을 받고 指導를 받아야 하는 學生 水準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슬쩍 新聞 記事들을 훑어보아도 날마다 잘못된 것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정말로 時間이 없고 귀찮아서 指摘하지 않는 것뿐이다. 정말로 한심한 大韓民國 新聞의 水準이다. 韓國 新聞이 이처럼 水準이 형편없이 떨어져버린 原因은 무엇일까? 漢字語를 漢字로 적는 原則을 저버리고 便法인 한글로 적는 한글專用을 실시하면서부터 韓國 新聞들은 低質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意味를 알 수 없는 글을 쓰면서 무슨 제대로 된 신문이 되겠는가? 黃色紙, 商業紙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밥 먹고 살려고 돈벌이하는 企業體 以上의 意味를 新聞이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大韓民國의 新聞들에게 付託한다. 당신들이 新聞으로서 言論의 使命을 아직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제발 正道를 걸어주기 바란다. 그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글專用이라는 '便法'을 버리고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 '原則'을 지켜주기 바란다. 漢字를 모르는 讀者들의 反撥을 두려워하지 말고, 讀者들이 漢字를 배울 수 있도록 社會 輿論을 喚起시키기 바란다. 그래서 大韓民國 政府가 잘못된 “한글專用”을 버리고 “國漢字混用”을 하도록 社會運動을 벌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社會를 이끌어가는 新聞의 使命이 아니겠는가?
| [출처: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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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망가지기 이전에 스스로를 먼저 망칠 것이다. 國語파괴 행위는 國法파괴 행위보다 더 나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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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반역자이자 인류의 재앙이고 300만 餓死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에게 언론이 1998년 무렵부터 '위원장'이란 호칭을 충성스럽게 붙여주기 시작하였다. 정치인들과 일반 국민들도 이 호칭法을 따랐다. 이때부터 김정일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서 확산되었다. '위원장'이란 호칭이 인간의 가치관 변화에 작용한 것이다. 이때부터 '美北'이 '北美'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정권을 우호적으로, 미국을 敵對的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였을 때 언론은 오전중 '사망'-'자살'-'서거'로 말을 바꾸었다. 언론용어가 '서거'로 통일되는 순간 방송은 물론이고 조선, 동아일보까지 일제히 美化, 추모 무드로 紙面과 畵面을 뒤덮었다. 언론이 '自殺'이란 용어를 유지하였더라면 절대로 그런 분위기는 형성될 수 없었다. 결정적 의미를 가진 용어가 잘못 통용되면 가치관이 뒤집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例는 친북守舊좌익들을 '진보'라고 불러주면서 생긴 폐해이다. 이상의 例에서 우리는 언어가 생각을, 생각이 行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상화는 韓國語의 정상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어의 정상화는 文法에 맞는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점이다. 한국어 文法의 제1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韓國語는 70%의 漢字語와 30%의 固有語로 구성됨으로 두 가지 文字로 써야 한다. 漢字語는 漢字로, 固有語는 한글로 써야 한다> 이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고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主權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게 改正不可 조항인 것과 같다. 따라서 漢字-한글混用인가, 한글專用인가의 논쟁은 의미 없다. 헌법을 지킬 것인가, 지키지 않을 것인가로 논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漢字-한글혼용은 물이나 공기처럼 당연하다.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文法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로 논쟁을 벌이는 사회는, 더구나 文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쪽(한글專用)으로 결론이 나는 사회는 아무리 잘 살아도 知性이 사라진 未開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어 文法이 한글專用 정책으로 무너진 지 오래이다. 한글專用은 한국어의 70%를 암호나 소리로 만든 文法과 언어 파괴였다. 언어 파괴는 정상적인 사고를 파괴하고 가치관을 전도시키며 드디어 인간의 행동양식에 나쁜 영향을 준다. 文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예절도 憲法도 지키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文法을 깨는 사람과 憲法을 깨는 사람들은 일맥상통할 것이다. 文法파괴는 머리 속의 생각을 파괴하고, 헌법파괴는 생활 속의 질서를 파괴한다. 한글전용으로 文法파괴, 좌익득세로 憲法파괴-한국의 민주주의는 兩面공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 文法과 憲法의 동시 파괴로 국가윤리, 국민정신, 그리고 法질서가 동시에 내려 앉고 있다. 한글전용과 좌익得勢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한글專用에 의하여 무식해진 사람들에게 좌익선동이 잘 먹히기 때문이다. 글로써 먹고 사는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는 國語를 파괴하는 것이다. 國語는 조국이다. 따라서 國語파괴는 國家파괴이다. 놀랍게도 이 국어파괴, 국가파괴에 앞장 서는 것이 조선, 동아, 중앙일보이다. 한국의 민족문화는 태반이 漢字語로 된 역사 자료에 담겨 있다. 朝中東이 한글專用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漢字를 배운 학생들도 漢字를 활용할 기회가 없어 알던 한자도 잊어먹고 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책임자는 보수신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세 신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漢字를 잊어먹도록 유도하는 세 신문은 自害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글專用은 국민들의 독서력을 저하시키고 국민교양을 파괴한다. 이는 불가피하게 신문구독률의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요사이 학교에서 포기한 漢字교육을 가정에서 시키고 있다. 父母들이 두 세 살, 유아원 원생일 때부터 한자 교과서를 사와서 방바닥에 한자표를 깔거나 볕에 붙여놓고선 시킨다.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런데 아무리 한자를 배우도 이 한자를 써 먹을 방법이 없다. 눈에 한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문에도, 訃告란에도, 간판에도, 도로표지판에도, 책에도 한자가 없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일상적으로 눈에 띄어야 잊어먹지 않는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좌경문화인 한글專用을 채택함으로써 진짜 보수세력으로부터는 배신감을, 좌익들로부터는 경멸을 샀다. 조중동이 널리 뿌린 한글專用의 씨앗은 한국인의 정신력을 감퇴시키는 毒藥이 되어 오랫동안, 최악의 경우엔 영원히 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一流국가 문턱에서 좌절, 다시 3流 국가 수준으로 내려앉게 만들 것이다. 물론 나라가 망가지기 전에 먼저 朝中東이 망가질 것이다. 세 신문은 대통령, 장관, 총리 이름까지도, 심지어 訃告란에서도 한글로 표기한다. 漢字로 표기하여 뜻을 살리도록 苦心하여 지은 남의 이름을 멋대로 발음부호만으로 적고 있다. 이는 기본권 침해이다. 그러면서 일본인과 미국인의 이름은 한글발음에다가 本名의 原語까지 친절하게 적어준다. '오바마(Obama)' '하토야마(鳩山)'식이다. 이는 사대주의이다. 조갑제는 발음부호이고, 趙甲濟가 나의 本名이다. 영어로 Washington이라고 써야지 그 발음부호를 표기하면 미국인도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운찬 총리내정자와 축구선수 박지성의 本名을 알려면 일본신문을 찾아서 읽어야 한다. 鄭雲燦, 朴智星이다. 地名, 人名, 社名 등 漢字語 고유명사를 발음부호(한글)로만 표기하면 낱말에서 뜻이 달아나버리고 소리만 남는다. 優味家는 언어이지만 '우미가'는 소리이다. 의미를 전달하기 못하기에. 한글專用으로 言語를 소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게 신문, 출판인들이다. 言語의 소리化는 다이어먼드의 쓰레기化와 같은 文化파괴이다. 보수주의는 전통의 계승 발전을 핵심으로 삼는다. 보수로 분류되는 세 신문이, 漢字를 모르는 독자를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영합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미 한국사회에서 지도력을 잃은 것이다. 이는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을 포기한 행위이다. 일본의 초등학생들은 한국에 여행을 와서 漢字銘文을 읽고 이해한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解讀하지 못한다. 선조들의 文化가 이들에겐 외국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를 사실상의 文盲者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세 신문이다. 한국 신문의 발행인, 편집인, 편집국장 등 몇 안되는 사람들이 1990년대 중반 진지한 고민 없이,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自覺도 없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한글專用을 결정한 일은 한국 역사상 가장 적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 이어질 손해를 끼친 경우로 기록될 것이다. 國語파괴 행위는 國法파괴 행위보다 더 나쁘다. 2009년 한국 신문의 편집책임자들은 이 罪過를 어떻게 갚을 생각인가?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 [출처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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