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말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순례 11>(1973)-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상징적, 고백적, 명상적, 의지적
◆ 표현
* 도치법, 의인법의 사용
* 화자와 대상을 동일시함.
* 동일한 어구의 반복으로 시적상황을 부각함.
* 의지적이고 명령적이고 단정적인 어조의 사용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튼튼한 줄기를 얻고 → 생명력의 부여
*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함.
* 바람 → 잎을 흔들어서 생명력을 부여하고, 슬픔과 고통과 고독을 불러 일으켜 화자를 성찰하게 함.
* 자기를 헤집고 있다. → 자기성찰.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 의인법
* 피하지 마라 → 주제의 강조. 도치법. 명령적이고 의지적 어조
* 빈들 → 슬픔과 고독, 고통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곳. 깨달음의 공간
◆ 주제 : 흔들림 속에 진정한 삶이 있다는 깨달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자연물이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얻게 되는 성숙함과 생명력의 발견
◆ 2연 : 외적 시련(바람)으로 인해 내적인 갈등을 하는 자연물
◆ 3연 : 자연의 섭리를 통해 얻게 되는 삶에 대한 깨달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삶은 움직임이다. 무생물도 움직임이 있으면 생명의 느낌을 주지 않는가. 우리를 동요시켜, 때로는 삶을 불안하게 요동치게 하는 슬픔이나 고독이나 고통의 바람이 몰아칠 때, 생각하면 그것은 왕성한 생기를 만끽하게 하는 기회다. 대개의 사람이 바라 마지 않는 안녕하고 무사한 삶은, 때로 지독한 권태감을 준다. 정지된 삶은 생기가 희박하다. 권태는 그런 생활의 하품이다. 오라, 생의 흔들바람이여! 흔쾌히 흔들리리라. 흔들리면서 살아 있음을 즐기리라. 낭창거리고 넘늘거리고, 재미있게 휘청거리리라. 휘둘리기만 하지 않으리라! <시인 황인숙>]
흔들려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또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하는 행위. 전자이든 후자이든 움직임의 원천이 밖으로부터 온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이다. 그러나 얻고, 증명하는 일은 능동적인 행위다. 바람이라는 외적인 조건 속에서 수 만의 잎들이 생존을 증명하고 있다. 오규원의 시 속에서 들판은 곧 '세상(현실)'이다. 슬픔, 고독, 고통 ……. 그런데 시인은 그것을 회피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왜? 슬픔, 고독, 고통 …….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것, 그것은 비록 시인은 '우리'라고 표현하지만, 앞의 빈 들에서 결국 흔들리는 것은 홀로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세상엔 수 만의 잎들이 존재하고, 그들 모두 제각각 흔들리나 결국 흔들리는 것은 나 하나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으므로 그것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시인은 '피하지 마라'란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위의 두 연은 4행과 7행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마지막 연은 단 3행으로 이루어진다. 첫 연은 다음과 같은 동세(動勢)를 갖는다. "흔들려서 얻고 증명한다." 둘째 연은 "바람이 불고 몸을 가누고 쓸리며 자기를 헤집는다." 그러나 마지막 연은 단 하나의 동세를 갖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조차도 동적인 느낌보다는 태도의 문제가 된다. "피하지 마라"는 깨달음인 것이지 움직임은 아니기 때문에 …….
종종 오규원의 시를 읽노라면 그가 반동(反動)의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인의 시는 대개 동세(動勢)로 시작해서 정세(靜勢)로 끝난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감동을 주는 까닭은, 그 꼿꼿함 때문이다.
"오규원의 시적 언어의 특징은, 그 언어가 세계와 현실을 모방하는 언어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 혹은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를 말하지 않고, 그 세계의 모습을 뒤집거나 관습적인 시각과 논리의 틀을 해체하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시인에게 자아와 대상과의 합일이나 교감의 정신을 멀리하고 당연히 대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시인의 그러한 비판정신은 주위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뿐 아니라 시인의 자아를 대상화하여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다. 오규원의 이러한 시각은 세계의 모습이 허상이고, 그 세계 너머 어떤 본질적 실체나 초월적 진실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시적 방향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과 그것들이 구성하는 이 세계 아에서의 질서와 관계를 의심하는 반역적 정신 때문이다. 그의 정신이 지향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어떤 억압이나 인습으로부터 묶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오규원[吳圭原] : 본명 오규옥, 시인
출생 : 1941. 12. 29. 경상남도 밀양
사망 : 2007. 2. 2.
데뷔 : 1968년 현대문학 등단
수상 : 2003년 제3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
1995년 제7회 이산문학상
1989년 제2회 연암문학상
경력 : 1982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1981 도서출판 문장 대표
작품 : 도서 51건
저서(작품) : 분명한 사건, 순례,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사랑의 감옥,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오규원 시전집, 두두
대표관직(경력) :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정의>
해방 이후 『분명한 사건』·『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등을 저술한 시인. 교수.
<개설>
본명은 오규옥(吳圭沃). 경상남도 밀양 삼랑진 출생.
<생애 및 활동사항>
1941년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출생했고, 부산중학교를 거쳐 1958년 부산사범학교에 진학했다. 1961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부산 사상초등학교 교사로 첫 부임을 했고, 교편을 잡은 다음해인 1962년 동아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1964년 5월 시 「겨울나그네」로 『현대문학』 초회 추천을 받았고, 이 지면에서부터 ‘오규원’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7년 「우계의 시」로 2회 추천을 받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으로 추천이 완료되어 등단했다. 추천자는 김현승 시인이었다.
1969년 동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1년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을 한림출판사에서 출간했다. 1973년 두 번째 시집 『순례』를 민음사에서 출간하고, 『현대시학』 주간인 전봉건 시인의 권유로 시평을 쓰기 시작해서 잡지와 일간신문의 월평을 쓰기 시작했다.
1975년 『분명한 사건』『순례』 개봉동 시리즈를 포함시킨 시선집 『사랑의 기교』를 민음사에서 출간하고, 1976년 그동안 썼던 시에 관한 산문들을 모은 시론집 『현실과 극기』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1978년 세 번째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1979년 태평양화학을 사직하고 『문장』이라는 출판사를 직접 경영하여 『김춘수전집』 1,2,3권, 『이상전집』 1,2,3권 등 50여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1981년 네 번째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를 출간하고 1982년 이 시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에세이집 『한국만화의 현실』을 열화당에서, 『볼펜을 발꾸락에 끼고』를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했다.
1983년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전임교수가 되었다. 시론집 『언어와 삶』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고, 1985년 시선집 『희망 만들며 살기』를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했다. 1987년 다섯 번째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를 문학과지성사에서, 문학 선집 『길밖의 세상』을 나남출판사에서 출간했다.
1989년 「비디오가게」 외 4편으로 제2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작품집 『하늘 아래의 생』을 문학과비평사에서 출간했다. 1990년 이론서 『현대시작법』을, 1991년 여섯 번째 시집 『사랑의 감옥』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1995년 일곱 번째 시집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1999년 여덟 번째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를 민음사에서 출간하고, 2002년 『오규원시전집』(전2권)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2005년 아홉 번째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와 시론집 『날이미지와 시』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2007년 작고한 후 다음해인 2008년 유고시집 『두두』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초기시에 해당하는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는 관념을 언어로 구상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관념적 의미에 물들지 않은 절대 언어를 지향하며, 시인의 상상과 사유 속에서의 언어를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초기시는 현실적인 시공간보다는 주체의 내면의식과 환상이 결합된 가상세계가 중요한 소재가 된다. 중기시인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는 광고를 시에 도입하는 등 형태적인 실험을 통해 물신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아이러니를 이용하여 억압적인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후기시는 『사랑의 감옥』부터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두두』 까지의 시들이다. 이 시기에 오규원은 날이미지 시론을 전개하며 환유적인 방식에 의거한 시 쓰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현상과 그 이면의 생성과 변화 과정을 읽어내는 주체의 해석이 결합된 것이다. 이처럼 오규원은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하여 시 쓰기 방식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실험의식을 보여준 시인이다.
<상훈과 추모>
현대문학상(1982), 연암문학상(1989), 이산문학상(1995),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화부문 (2003) 수상
<참고문헌>
『오규원 깊이 읽기』(이광호 편, 문학과지성사, 2002)
「오규원의 시론 연구」(문혜원,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25, 2004)
「오규원 시의 변모 과정과 시 쓰기 방식 연구」(이연승, 이화여대 박사논문, 2002)
「타락한 말, 혹은 시대를 헤쳐가는 해방의 이미지」(김동원, 박혜경, 오규원 좌담, 『문학정신』, 1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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