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요14;12-18
본문 말씀 12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
정말 강조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속되어지는 말씀에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을 믿는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할 것이요,
또한 주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야 될 주님의 일은?
그렇다면 계속해야 될 주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주제이자 모든 교회와 성도의 삶의 기둥인 것입니다.
그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생명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질로 구제할 수 있고,
시간을 내어서 봉사할 수 있고,
장기를 떼어서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상대방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마치 죽어가는
사람에게 좋은 옷을 입혀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 보다 우선해야할 것은 죽어가는 이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은 이 생명을 살려내는 사랑의 일을 계속 해야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쁨으로 설 때에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들을 보게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취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것처럼
계속 일어나고, 더 큰 일도 볼 것을 믿음 안에서 기대하며 나아가시는 은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가능한가?
12절 하반절에서
이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즉,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이런 삶의 가능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말씀 13절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라.”라 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다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알아야할 사실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그분의 이름의 의미입니다.
그 이름 가운데는 그분의 존재와 인격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의 말씀에서 “...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라고 합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삼 일 후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주의 모든 통치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갖고 행하실 것이고,
그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라는 것입니다. “
그 이름...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2) 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믿는 자들입니다. ‘
내 이름으로’라는 헬라어 단어는 ‘엔 토 호노마티 모’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볼 단어가 ‘엔’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로 ‘in’입니다.
즉, '내 이름으로'라는 이 말은 '내 이름 안에서'라는 말로도 번역 가능합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안에 있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즉, 믿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안에 거하기로 사랑의 친밀함으로 헌신된 이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담대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계속하게 되고, 생명을 살리는 현장속에서
주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말씀 16절에서 1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가셔서 하셔야 할
또 다른 일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혜사’라는 단어는 ‘파라 클레이토스’입니다. ‘
파라’는 ‘옆에서’라는 뜻이고 ‘클레이토스’는 ‘핼퍼’라는 뜻입니다.
즉, 옆에서 돕는 이 즉, ‘대변자, 위로자, 중보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동일한 또 다른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돕는 분으로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계시는 장소에 대해서 ‘너희와 함께...’ 그리고 ‘너희 속에...’라 합니다.
역시 속에란 헬라어 단어 ‘엔’은 ‘in’이란 뜻이죠.
도우미 성령님께서 우리 옆에 계시고 나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사신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안에서 사시고 함께 머무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진리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장래의 길을 알게 하시고, 이끄시며, 예수님의 모든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사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계속하게 할 것이요, 더 큰 일도 행하게 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10일 지나고
베드로와 함께한 120명의 무리 가운데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으심으로 가득한 베드로가 일어나 설교할 때에
3000의 영혼들이 돌아와 세례를 받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하고, 그 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되었던 이를 향해서 그는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입니다.
그 때 그가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하신 일을 하고, 더 큰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계속하고, 더 큰 일도 행하는 이들이요,
이들인 모인 공동체가 예수님의 몸인 교회인 것입니다.
결론으로;더 큰 일을 보아야할 목적은 하나님께 돌려질 영광입니다.
마침내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때 “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라는
13절 후반의 말씀처럼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취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나아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사시도록 허락하고, 주님과 깊은 사랑의 친밀함 가운데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우리 앞에서 생명들이 구원받고 살아나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교회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