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爲有聲畫(시위유성화)-시(詩)는 소리 있는 그림이고
畫乃無聲詩(화내무성시)-그림은 소리 없는 시(詩)다.
古來詩畫爲一致(고래시화위일치)-예로부터 시(詩)와 그림은 일치하니
輕重未可分毫釐(경중미가분호리)-경중(輕重)을 조금도 나누지 못했다.
時時遇興拈禿筆(시시우흥념독필)-이따금 흥이 나면 몽당붓 들어
拂拭縞素開端倪(불식호소개단예)-흰 비단 떨치고 그림을 시작한다.
須臾一水復一石(수유일수부일석)-잠깐 새에 한 물, 다시 또 한 돌
蒼崖老木臨清漪(창애로목림청의)-벼랑의 늙은 나무 맑은 물결 앞에 서네
성간(成侃)
사계절 수채화속에 운보(雲甫)의 그림이 숨 쉬고 있다
요즘 나는 북한산의 기기묘묘(奇奇妙妙)하고 넉넉한 자연을 한껏 즐기고 있다.
어제는 등산로, 오늘은 둘레길, 내일은 사찰을 찾을 것이고, 모레는 애국선열의
무덤을 참배예정으로 죽장망혜(竹杖芒鞋) 나그네의 답사(踏査)는 계속될 것이다.
그 대통령에 그 국민들인데
너는 그러고 나는 옳다고들 외치고 있는
광화문 광장의 100만 군중들과는 다르게
북한산 둘레길에서 낙엽과 의 속삭임은 소리 없는 대화다.
흥분도 없고 성냄도 없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은 침묵(沈默)속에서도
겨울을 준비하고 내년 봄을 설계하는 대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야(下野)하라 !
개헌(改憲)하라 !
거국내각(擧國內閣)을 만들자고 외쳐 보아도
또 그렇게 된다하여도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무슨 새나라가 되겠는가?
대통령도 국민도 여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낙엽(落葉)과 나목(裸木)앞에서
머리 숙여 조용히 자신을 성찰(省察)하면서 자신들이 “신독(愼獨)”의 부끄럼은
없었는가를 반성하지 않으면 “새나라 건설”은 오지 못할 것이다.
“신독(愼獨)”이란 무엇인가 !
중용(中庸)과 대학(大學)과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6절에 나오는 말로서
천하의 일의 시작점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修身)부터이며,
그 첫째는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찾고 닦는 수정(守靜)이다.
신독(愼獨)을 중용에서 강조하기를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해야 한다.
莫見乎隱(막현호은)-숨겨진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은 없으며
莫顯乎微(막현호미)-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
故君子愼其獨也(고군자신기독야)-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마태복음 6장 6절에서는
너는 기도 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방인처럼 길거리에서 남이 들으라고 중언부언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자기 홀로 있을 때에 옷소매 끝이나 덮고 있는 이불에게도
부끄럼이 없이 도리에 어그러지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삶을 “신독(愼獨)”이라한다.
자연(自然) !
우리의 산하(山河)는 서양이 자연이라고 하는 “nature”와는 다르다.
우리의 “자연(自然)”은 그냥 “스스로 그러함(自然)”이다.
이 자연(自然)속 북한산 둘레길 초입(初入)에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화백의
자연속 갤러리가 있었다.
북한산 자연아래 옛 미향(美鄕)마을에 있는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화백의 그림은 “자연속 그림이요 그림속 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은 특이한 화가다.
1914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 18번지에서 태어났다.
*1921(8세) 승동 보통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에서는 신문학을 배우고 집에 돌아와서는 서당에서 구학문을 배웠다.
베토벤은 8세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자 였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위대한 교향곡(交響曲)을 남겼다.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도 8세때 장티푸스 고열로 정각장애자가 되었다.
*1930(17세) 인물·화조·산수화의 대가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 밑에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1931(18세)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 출품하여 그의 어머니로부터 “운포(雲圃)”란
아호(雅號)를 받는다.
*1932(19세)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입선하여
이때부터 대가(大家)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김기창(金基昶)은 서양 입체주의(立體主義)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려 독창적인 화풍,
새로운 미술 세계를 개척하여 우리나라의 전통 수묵담채화로 반추상적인 그림을
그려 한국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25 한국전쟁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얼굴에 한복을 입은 예수를 그려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1946(33세)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화백을 아내로 맞았다.
우향 박래현은 평남 진남포 출생으로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과를
졸업하고 1940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서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한 수재다.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1920~1976) 화백은 일제시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
근대와 현대의 전환기에 독창적 예술세계를 창출한 탁월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도쿄 여자 미술전문학교 출신인 우향(雨鄕)은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데다 청각장애까지 있는 운보(雲甫)와 결혼 한 것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순수한
예술을 통한 하나의 신념 때문에 결혼해 남편의 예술적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내 우향(雨鄕)은 운보(雲甫)에 대한 어머니, 아내, 미술의 동반자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우향(雨鄕)의 그림은 남편인 운보(雲甫)의 그림보다 높은 수준이라 하는데
평생 운보(雲甫)의 그늘에 가려 그 빛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45(32세) 8.15광복을 맞아 아호 “운포(雲圃)”에서 포자(圃)의 굴레같은 口를 벗겨
포(圃)자를 해방시켜 “보(甫)”자로 사용하여 “운보(雲甫)”라 부르게 된다.
*1981(68세) 국민훈장 모란장서훈, 예술원 정회원 위촉, 세계 30개국 스케치 여행을 한다.
*2001년 1월 23일 88세로 타계한다
아쉬운 것은 스승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과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화백은 반민족친일파로 분류되어 있다.
농월
첫댓글 넘넘 잘 보고 감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