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은퇴 설계의 기본은 ‘합리적 소비’
저축뿐 아니라 소비 가이드라인도 만들어야…노후생활 주도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금물
은퇴 설계 앞에 부부라는 단어를 붙여보면 노후 준비라는 개념이 좀 더 현실적으로 와 닿게 된다. 노후생활에 있어 최고의 파트너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남편이든 아내든 은퇴 설계와 노후생활의 주도권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나중에 비극과 상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 설계를 위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 은퇴 설계의 성공을 위해 의논할 것이 재무 부분이다. 부부의 국민연금은 어떤지, 개인연금은 어떻게 들었고 운용되고 있는지, 퇴직금은 어떤 형태인지, 위험에 대비한 보험은 충분한지 등을 함께 검토하며 의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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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연금, 부부가 따로 드는 게 효과적
연금을 계획할 때는 ‘함께 준비하되, 따로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은퇴 설계를 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각각의 이름으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넣게 된다. 여기에 개인연금을 덧붙여서 부부의 은퇴자금을 준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때 남편과 아내의 자금을 한데 묶어 하나의 개인연금을 들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각각이 개인연금을 드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면 부부가 별도로 은퇴자금을 준비하는 형태가 되니까 두 개의 연금 설계가 이뤄지게 된다. 즉 부부가 합쳐서 하나의 연금 설계를 하는 형태가 아니라, 부부가 따로 준비해 두 개의 연금 설계를 하는 것이다. 그런 후 남편 명의의 연금을 노후생활 초반에 수령하고, 아내 명의의 연금은 후반에 받을 수 있도록 수령 시기를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되면 평균적으로 기대수명이 더 긴 아내의 노후생활에 대한 연금 공백기를 대비할 수 있다. 거기에 연금 설계 총액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만약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혼란이 덜할 수 있다.
지출 계획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은퇴 후 재취업을 할지, 창업을 할지, 귀농·귀촌을 할지 등에 대해서도 우선 의논하고, 구체적으로 부부가 함께할지, 한 사람만 할지, 어떤 업종에서 어떤 규모로 할지 등도 의논해야 한다.
은퇴 후 어디서 살지도 중요한 의논 대상이다. 건강이 나빠져 요양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대화해 두는 게 좋다. 자녀를 언제 독립시키고 어디까지 지원하며 무엇을 물려줄지도 미리 의논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한 첫날을 가정하고 그날의 생활계획표를 머리를 맞대고 그려보기 바란다. 그다음 주간 계획표, 월간 계획표, 연간 계획표 순으로 함께 은퇴 후 생활을 그려보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중 은퇴 재무 설계의 핵심은 합리적 소비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은퇴 후 생활에서도 매우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합리적 소비를 습관화하는 게 은퇴 설계의 중요한 몫이 될 수 있다. 근검절약을 통해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고 노후생활비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근검절약이라고 이야기하면 뭔가 희생하고 고생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합리적 소비 습관은 그보다 더 큰 의미라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사치를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은퇴 설계를 위한 합리적 소비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소비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필요하다. 자녀 교육비에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둔다거나, 주변 이목이나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고 주거비가 많이 드는 지역을 벗어나는 것 등은 철학과 원칙에서 나온 합리적 소비생활의 하나라 말할 수 있다.
합리적 소비를 몸에 익히면 여러 가지가 유리하다. 본질적으로 돈에 구애되지 않는 가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소비를 줄여 은퇴자금을 저축하기에 유리하다. 은퇴 후에도 생활비를 절감해 자금 운용의 여유를 둘 수 있다. 무작정 아끼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원칙 아래 단순함과 의미를 추구하는 합리적 소비를 몸에 익히면 생활비가 덜 들면서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합리적 소비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것이 결심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는다. 완전히 몸에 익히려고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축에 대해 생각하듯이 소비에 대해서도 한 번쯤 돌아보면서 의미 없는 소비, 무리한 소비, 남의 시선 때문에 일어나는 소비가 없는지 짚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조정하면서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습관을 익히면 좋을 것이라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부가 동시에 합리적 소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쪽짜리 합리적 소비는 의미가 없다. 부부 은퇴 설계의 성공을 위해서는 소비패턴을 함께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서로 어떤 노후생활을 원하는지 미리 대화해야 오해와 갈등이 빚어지지 않는다. 수시로 시간을 내서 각자가 원하는 은퇴 후 생활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의논하길 바란다.
은퇴자금에 대한 막연한 공포 버려야
마지막으로 은퇴 재무 설계를 위해 은퇴자금에 대한 공포심을 버리고 걱정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은퇴 공포가 크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현실도 현실이지만, 걱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되 긍정적인 설계를 하는 것이 지혜롭다. 큰 금액의 총액 목표보다는 매월 생활비 기준으로 목표를 세우는 게 좋겠다. 이때 합리적 소비습관을 익혔다면 생활비를 절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업활동을 통한 수입,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퇴직연금 등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합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 차액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 목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더 벌고 덜 쓰면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도록 훈련하는 게 정신적 측면에서 가장 훌륭한 은퇴 설계라 말할 수 있다. 현실적인 해결책도 될 수 있다.
권도형 한국은퇴설계연구소 대표
출처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