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3
[K 생각] ㅡ 한동훈 대 김남국
한동훈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생각.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마저도 유아적 자기 세계에서 멈춘 듯...
김남국 의원이 시종일관 웃고 있다.ㅋㅋㅋ
한동훈은 너무 초라해 보이고.ㅋ
* 자료 : [오마이뉴스]
2. 2023
[K 생각] ㅡ 악의
며칠 전 한 페친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다른 자랑할 건 없어도 이것 하나만은 자랑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임정엽과 마성영 같은 놈들을 보면 악의가 저절로 솟구친다.
3. 2023
[임정엽]
[시민언론 민들레] 극우단체 손 들어준 임정엽 재판부…유가협 "2차 가해 조장"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극우보수단체의 시민분향소 접근을 금지해달라고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임정엽 수석부장판사·차승우·송현직)
재판부는 신자유연대 측이 12월 14일 자동차에 설치된 앰프를 이용해 "뭘 더 바라냐" "선동하지 마라"고 한 발언에 대해,
재판부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이나 유가족들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재판부 "광장에서 유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격권이 신자유연대 측의 '집회의 자유'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유가족들은, 법원의 이 같은 판단에 2차 가해 행위를 사실상 방치한 결정이라면서, 즉각 항고하겠다는 입장.
신자유연대 "56일째 진행되고 있는 용산 이태원광장 봉쇄작전 집회에 응원해주신 국민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ㅡ 의도적으로 이태원 광장 분향소를 괴롭혔다는 점을 스스로 밝힌 셈.(판결 후 자백)
※ 정경심교수 재판, 검사는 7년 구형, 판사는 4년 실형 및 법정구속(괘씸죄?)(2020.12.23 임정엽 김선희 권성수)
※ 판결문 낭독 후 정 교수에게 임정엽이 했다는 말. (전언)
ㅡ "소감이 어떠십니까?"
판사가 아니라 개ㅅㄲ..!! [K 생각]
4. 2023
[K 생각] ㅡ 반전
사람들이 세금을 걷어서 월급을 주면서 집 지키라고 개를 길렀는데, 어느날부터 보니, 사람들은 자신들이 개인 줄 알고, 개들는 자신이 사람인 줄로 알게 됐다.
5. 2023
[K 생각] ㅡ 선택과 판단의 차이 (3)
선택은, 주어진 선택지들 가운데서 고르는 일이라면,
판단은, 숨겨져 있는 선택지를 찾아서 고르는 일이다.
그래서 철학은, 선택의 작업이 아니라 판단 작업이다.
판단을 위해, 개념이 필요하고 추론이 필요한 것이다.
판단을 다른 말로는, 명제 또는 언명이라고도 부른다.
문장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명제는 개념을 사용한다.
6. 2022
[정치와 과학] ㅡ 안철수 주장에 대한 반박
1. 과학은, 미국 것이라고 해서 우수하다고 하지 않으며, 한국 것이라고 해서 열등하지 않다. 과학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2.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는 일(작업)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체를 모르는데, 무슨 법칙을 언제 어떻게 무슨 수로 만든단 말인가.
3. 과학은 '자연의 제일성(uniformaty leap)'에서 출발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 변이들의 경우에서는, 그 '유사성'조차 찾지 못했고, 오히려 '의외성'만 보여지기에 과학에의 의존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4. 단지 방법을 과학적으로 한다는 뜻일 뿐이다. 종교나 미신이나 주술에 의해서가 아닌.
5. 과학과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완벽히?
6. 우리는 언제나 이익을 생각한다. 그래서 "국익 우선"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 국익을 추구하는 게 바로 정치다.
7. 일전에 정책의 뜻을 '정치적으로 꾀를 내는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즉, 다양한 선택지들 가운데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선택지를 고르는 '꾀부리기' (better thinking)인 것이다. 타협, 중재, 설득 등이 그래서 필요하다.
8. 그리고 정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힘(권력)'이다.
9. 과학은 이익에 의해 좌우된다는 하버마스의 주장대로라면, 과학 역시 이익과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즉, 정치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10.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방역 정책이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움직여왔기에 잘못됐다고 한, 안철수의 오늘 관훈토론회에서의 주장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11. 무엇보다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방역 성과(결과)로 보아, 안 후보의 주장은 보편적이 아닌 독단적 판단이다.
12. 또한, "백신 공급 실패"라고 규정한 대목도 역시 무리한 생각이다. 현재를 기준에서 판단하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으나, 그 당시에는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안 서있었기 때문이다.
13. 안철수 후보가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여긴다면, 정부 방역을 가리켜 "허둥지둥"이란 형용어를 동원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모순 아닌가?
14. 안철수식 생각대로라면, 전 세계가 허둥댔다. 지금 역시도 허둥대고 있다. 안 그런척 할 뿐.
7. 2022
[K 생각] ㅡ 앞으로의 교육은?
1.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학교교육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입시교육과 직결됩니다.
2. 그러나 학교를 벗어나면 곧바로 사회로 들어서는데, 학교교육으로 사회에 진입하는데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커다란 장애와 장벽을 느낍니다.
3. 그러한 상태가 수십년간 방치되어 왔습니다. 바뀐 것은 단지 입시 형태만 바뀌었다는 겁니다.
4. 이제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고 막막합니다.
5. 학교교육(입시교육)을 또 뜯어고치는 데 혈안이 될 게 아니라, 사회교육을 일으켜야 합니다. 릴레이 육상경주에서처럼 학교교육에서 사회교육으로 바톤을 넘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6. 그렇게 되면 sky대학이니 뭐니 하면서 근자감이나 차별의식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7. 사회교육에는, 바른 정치인을 길러내는 정치교육, 바른 경제인을 길러내는 경제교육, 바른 과학기술인을 키워내는 과학기술교육, 미래의 방향을 심어줄 미래교육, 기타 노동교육, 환경교육, 사회체육교육 등이 있겠습니다.
8. 사회교육은 학교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넓은 사회영역의 안에 두어야 합니다.
9. 예산이나 절차, 사회적 합의 등은 부차적 문제고, 우선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입니다. 우리는 지금 한계에 부딪혔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10. 예나 지금이나, 교육이 밥 먹여줍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8. 2021
[이율배반] (Antinomy, 二律背反)
‘시간은 무한한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이 어려운 문제의 답은 세 개다. 그것은 ‘시간은 무한하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즉 유한하다’, ‘모른다’이다. 답은 무엇일까? ‘모른다’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것 같은 이 답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시간의 유무한을 알 수 없다’라고 논증한 것은 칸트다. 칸트는 이율배반으로 시간의 유무한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논증했다. 이율배반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반대되는(antí) 법(nómos)’이다. 어원에서 보듯이, 이율배반은 두 개의 법이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어떤 법이 옳은지 판정할 수 없다는 법학 용어였는데, 칸트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율배반은 두 개의 주장이 서로 모순되는 명제다. 이율배반과 유사한 역설은 두 명제가 반대되는 것이다. 이율배반은 역설의 일종이면서 하나가 참이면 하나는 거짓인 모순(contradiction, 矛盾)에 근거한다.
이율배반은 동일한 대상에 관한 명제가 모두 타당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것이 참인지 알 수 없는 대립된 명제다. 일찍이 제논(Zenon)은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는 역설(paradox)을 주장했다. 이런 역설을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아포리아는 "내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처럼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역설(逆說)이다. 칸트는 아포리아와 모순을 연결했다. 그리고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를 밝히고자 했다. 칸트의 결론은 이성이 경험 세계를 넘어서면 (비판을 거치더라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그 과정에서 이율배반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를 동시에 증명할 수 있다.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는 모순관계이므로 하나가 참이면 하나는 거짓이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두 명제를 동시에 참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성은 모순되는 두 명제인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가 모두 타당하고 동등한 참이라고 논증한다. 그 과정은 이렇다. ①‘신은 있다’에 대해서는 ‘처음 시작 또는 제일 원인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생겨서 인과계열이 성립한다. 최초로 시작한 존재가 있다. 그 초월적 자유 존재가 신이다. 그러므로 신이 있다’로 논증한다. 한편, ②‘신은 없다’는 ‘모든 존재는 인과법칙에 따른다. 무한한 인과가 계속된다. 최초로 시작하는 존재는 없다. 그러므로 신은 없다’로 논증한다. 이처럼 상반되는 두 명제가 모두 참이라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칸트는 그 오류의 원인을 이성의 독단으로 지목했다. 이성은 경험 세계에 있는 제약자만 추론할 수 있는데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무제약자까지 추론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낳는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제약자와 달리 초월적 무제약자는 영혼, 신, 세계, 시간, 공간 등이다.
칸트는 네 개의 이율배반을 제시했다.
제1 이율배반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다. 정립(thesis)은 ‘시간의 시작이 있고 공간은 유한하다’이고 반정립(anti-thesis)은 ‘시간은 시작이 없고 공간은 무한하다’이다.
제2 이율배반은 부분과 전체의 문제다. 정립은 ‘전체는 부분으로 구성된다’이고 반정립은 ‘전체는 부분으로 구성되지 않는다’이다.
제1, 제2의 이율배반을 수학적 이율배반이라고 한다. 수학적 이율배반은 수와 양에 관한 것이며, 정립과 반정립 모두 거짓이다.
제3 이율배반은 자연인과와 자유의지의 문제다. 정립은 ‘자유에 의한 인과가 있다’이고 반정립은 ‘자유에 의한 인과가 없다’이다. ‘자유에 의한 인과가 있다’는 참이다. 왜냐하면 인과의 자유가 있어야 최초 인과의 계열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에 의한 인과가 없다’도 참이다. 왜냐하면 인과의 자유가 없어야 세계가 통일적이고 필연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역시 이율배반이다. 이 문제는 자유의지와 도덕적 실천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제4 이율배반은 보편적 존재의 유무다. 정립은 ‘보편적 존재가 있다’이고 반정립은 ‘보편적 존재가 없다’이다.
제3, 제4의 이율배반은 역학적 이율배반이라고 한다. 역학적 이율배반의 두 명제 모두 참이다.
네 가지 이율배반에서 보듯이 이성은 초월적인 무제약자 즉 형이상학적 영역을 추론할 때, 오류를 범한다.
이율배반의 오류는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에서 모두 나타난다. 그러니까 칸트는 이성의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성이 할 수 있는 일과 이성의 의미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험을 초월한 선험종합(a priori synthetic)보다 경험에 근거한 추론이 타당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니까 이율배반은 이성의 독단과 이성의 한계를 논증하면서 경험의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한 논증이다.
칸트의 이율배반은 모순관계가 아닌 반대관계로 추론한 문제가 있고, 범주와 층위를 나누면 이율배반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개신학사 김승환)
9. 2020
《시》
1.5mm만 벗기면 누구나 다 똑같지
206개의 뼈도 똑같아
기생충 숫자만 다를 뿐
실수하는 빈도수도 비슷하고
정직도 거짓도 비슷한 비율이야
서로의 이해도만 다를 뿐
집에 화장품 가지수만큼 이쁠까?
집 냉장고 크기만큼 건강할까?
가진 집 크기만큼 행복할까?
밥값보다 커피값이 비싼데
진심보다 웃음이 헤픈데
사람값 가성비 수준이 의문스러
옆집 좋으면 그리 가라고 해
천재 아들 찾으려면 자기부터 그러라고 해
아니다 시프면 그 입 다물라 해
구별이 심해져 가고
차이가 넘쳐나면서
어줍잖은 차별이 덩달아 춤추잖아
머루랑 달래를 누가 구분하디?
벗꽃과 개나리와 진달래로 삼분하디?
그냥 산이고 봄인 거야!
차별 전주곡 / kjm
K / 20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