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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따리를 풀어 꺼내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40년 전후의 짠하고도 애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는 당시 여천초등학교를 다녔고, 학교 근처 번개시장과 야음시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았다. 야음시장 내려가는 언덕 초입, 지금 공영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곳에는 진양화학 기숙사가 있었고, 야음시장 건너편에는 3층 건물의 유공사택이 `고급사택`으로 건재하고 있었다. 그 앞 도로변으로 중앙화단이 있을 무렵으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차들이 한산하게 도심의 거리를 오갔다. 하루는 초등학교 친구 누나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태화강에서 나룻배를 타다가 같이 갔던 일행 몇이 익사사고를 당했다는 거였다. 친구 누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렇게 푸른 청춘인데도 잔인한 운명의 초대장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런 사고를 당한 가족들의 불행은 말하지 않아도 일평생을 따라가게 된다.
그날 사고를 당한 그 아이는 결국 재빠른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쳐 어린 나이에 생사를 달리하고 말았다. 그 사고가 있은 뒤 `인공 우물` 구조물은 즉시 폐쇄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번은 동네 아이들이 노는 마을 입구에서 덤프트럭의 브레이크 파열음이 고막을 찢을 듯 강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라 사람들이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어린 여자 아이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 순간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곧이어 구급차가 달려왔고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길 양편에 늘어선 사람들은 조마조마한 심정과 안타까운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린 시절, 이제 막 `인생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자각하며 자의식이 발달할 무렵 겪었던 이런 사건사고는 추억에서 꺼낼 때마다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마치 나의 일인 듯 짠한 마음으로, 울적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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