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시평 16]조국의 『디케의 눈물』을 읽다가 결국엔…
나는 아내가 고맙다. 어쩌면 그렇게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들을 말없이 사놓은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내가 사는 용인집(수지구 고기리 빌라)은 책 때문에라도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지난 수요일 밤, 책꽂이에 또 여지없이 조국曺國(그를 모르시는 분들은 아마도 안계시리라)의 『디케의 눈물』(올해 8월 20일 다산북스 발행, 335쪽, 18800원)이라는 신간이 꽂혀 있었다. 화들짝 반가웠다. 아내는 이런 ‘좋은 책’의 정보를 어디에서 얻는지 모르겠고, 또 이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는지도 모른다. 『 김남주평전 』 『 미스터 프레지던트 』 『 월간김어준 』 등이 그것이다. 나도 어쩌다 『 줬으면 그만이지 』 등을 선물하기는 한다. 어쩌면 시골 농사꾼의 세상 보는 눈을 틔워주기 위해 말없이 애쓰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고마운 아내를 외경畏敬하는 편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 새벽에 그 책을 통독을 했다. 책의 부제가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라서 더욱더 할 말은 많지만, 모두 생략한다. 묵언默言은 좋은 말이다. 다만, 새벽 3시반, 책의 말미 287-289쪽의 한 대목을 읽다가 끝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타이핑을 해놓고 싶었다. 우리 친구들도 나의 이 말에 조금이라도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2003년 10월 17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29일 고공농성을 벌인 김주익씨(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는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닷새 뒤 10월 22일 당시 MBC라디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하던 고 정은임 아나운서는 당일 방송 오프닝 멘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정 아나운서는 11월 18일 오프닝 멘트에서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언급했다.
“19만 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바퀴 달린 운동화)룰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 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만 3000원이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19만 3000원, 인라인 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미터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움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고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힐리스 대목에 목이 멘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정 아나운서는 서울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항상 사회·경제적 약자의 고통을 공유했고, 그들과 연대하려고 했던 ‘호모 엠파티쿠스’였다. 그는 2004년 자동차 사고를 당해 37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 오프닝 멘트는 지금도 나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287-289쪽의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이 묵언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국의 글에는 늘 유식한 테가 난다. 흐흐.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잘은 모르지만 영어 empathy의 라틴어 어원일 것이고, 굳이 번역을 한다면 ‘공감하는 인간’이라 할 것이다. 이런 오프닝 멘트를 남겨준, 틀림없이 얼굴도 예뻤을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고맙다. 그대 울지 않은가? 그렇다면 강심장이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는 ‘호모 엠파티쿠스’에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야말로 21세기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이라고 말한다. 호모 심비우스는 또 무엇인가? 경쟁일변도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란다. 어렵다.
얼마 전(8월 2일), 남원 귀정사에서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후원의 밤이 있었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콘서트로 힘을 보태 더욱 기운이 났다. 그 자리에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여성 최초 용접사) 1960년생 김진숙이 있었다. 무대에 세우지말라며 손사래를 쳤다한다. 앉은 자리에서 손만 흔들었을 뿐, 머리가 온통 흰머리 소녀인 것을 처음 보았다. 이 땅의 김진숙라는 노동자는 누구이던가? 2011년 1월 6일 75m 고공 크레인에 올라가 그해 11월 10일까지 309일 동안 '나홀로 투쟁'을 했다. 용기 있는 여성이라고 말하지 마라. 누구든 사는 것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인 것을. 2003년 35m 고공크레인에서 투쟁하다 숨진 김주익 노동열사의 뒤를 이은 것이다. 백기완 선생이 눈을 감는 직전에도 그를 못잊어 힘들게 "김진숙 힘내라"라는 글씨를 써 응원을 보냈다. 노동시인 송경동은 '희망버스'를 기획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매주 토요일 힘찬 응원투쟁을 했다. 엠파티쿠스에서 심비우스로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