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선교, 한국 가톨릭의 탈렌트
1코린 1,26-31; 마태 25,14-30 /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2024.8.31.
폭염으로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9월 순교자 성월이 시작됩니다. 박해시기에 교우들이 가장 많이 치명한 때가 9월 하순이어서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순교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한국천주교회는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 먼 길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종들에게 재산을 맡겼다는 이 비유는 마치 공생활을 마치고 십자가 수난을 앞둔 당신의 처지를 연상시킵니다. 다섯, 둘 그리고 한 탈렌트를 각기 맡긴 그 주인은 오랜 뒤에 돌아와서는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섯이나 두 탈렌트를 맡은 종들에게서는 다섯과 두 탈렌트를 더 벌어놓았으므로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마태 25,21.23) 하고 칭찬하였지만, 한 탈렌트를 맡아 고스란히 반납한 종에게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태 25,26) 하며 호되게 질책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1코린 1,26) 이 권고의 뜻을 이어받아서 이 땅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학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학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습니다. 본시 유학은 종교가 아니라 생활의 철학이었지만 조선 왕조가 시작된 이래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되어 왔기에 국교처럼 백성의 정신과 활동을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 나라에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았고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엄격하여 사회의 모순은 날로 쌓여갔습니다.
조선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실학을 연구하던 선비들은 중국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이 저술한 서학 서적을 연구함으로써 자생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북경에서 프랑스 선교사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세례를 베풀자 짧은 기간 안에 수천 명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유학을 종교로 숭상하던 지배층은 조선 사회를 지탱하던 통치 이념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여 천주교를 사학(邪學) 즉 나쁜 학문으로 규정하고 배교를 강요했으며 이를 거부하면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만민 평등과 남녀 동등을 가르치는 천주교를 받아들인 신자들은 심산유곡으로 숨어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어 천주교의 진리를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숨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글과 학문을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4 4조로 지어진 천주가사들을 암송하며 교회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 이승훈보다 먼저 천주학을 받아들였고 더 능통했으며 이승훈을 북경에 파견하고 나서 그로부터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광암 이벽이 지은 천주공경가를 소개합니다.
어와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아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임금용안 못뵈었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개인 양심과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이끌어내고, 만인 평등과 남녀 동등을 앞장서서 실천했으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회복지 활동의 선구자로서 한국 천주교회는 근대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비록 일제 강점기에는 신앙의 자유와 교회 조직을 보호하기 위하여 프랑스 선교사 교구장이 내세운 정교분리 노선 때문에 본의 아닌 친일 행적을 남기기는 했으나, 광복 이후 군사독재 시절에 정의구현과 인권 옹호의 십자가를 짊어졌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며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해 온 우리 교회가 앞으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북녘 동포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기회와 역량을 십분 발휘해야 합니다. 이 노력은 단지 천주교 신자들의 수를 늘리는 노력을 넘어서서 북한 지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에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가톨릭 신자들의 탈렌트를 발휘하는 일입니다. 이는 환경 보전과 평화 수호에 종교인들이 협력하며 공존 번영하는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는 새로운 선교입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우리가 해 내는 문명 선교입니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다섯이나 두 탈렌트를 받아 받은 만큼 더 벌어 놓은 종들처럼 칭찬을 받을 수 있을른지, 혹은 한 탈렌트를 고스란히 반납한 종처럼 호된 질책을 받을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교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