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하게 외롭게 / 유수연
외로움은 혼자 하기도 하고 둘이 각자의 외로움으로 슬퍼하기도 한다
설득하려 할수록 비참해진다
바닥까지 내려가보면 자신의 바닥을 알게 되면
발돋움해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바닥을 알고, 내 한계를 알고 그곳을 박차고 나왔더니 다른 바닥이 있다
산다는 게 슬픔을 갱신하는 일 같을 때
하필 꽃잎도 다 떨어진 봄날 떨어진 건 다시 되돌아가 붙지 않았다
깨진 엄지손톱이 자라지 않았고 연약한 건 딱딱한 것에 숨어 있었다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면 뺏기지 않을 줄 알았어
간을 두고 왔단 토끼의 변명처럼 두 눈이 빨갛게 눈물을 흘리면
감싸진 것을, 그것만 낚아채 가져갔다
그물은 물을 버려두고 물고기를 끌어올리지
내 마음도 통과되는 줄 알았는데 여과하고 남아버린 게 있구나
계속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놓지 않으려다 내 사랑은 죄다 아가미가 찢겨 있구나
-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문학동네, 2024.11) ------------------------------------
* 유수연 시인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 안양예술고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3학년 휴학 중 201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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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인데 당연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문장도 있습니다. 또한, 당연한 말인데 그것을 문장으로 써 놓으면, ‘참 생경하다’라고 느껴지는 문장도 있습니다. 유수연 시인의 시 「정중하게 외롭게」를 읽으며 제가 직관적으로 느낀 부분입니다.
먼저 「정중하게 외롭게」라는 제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외로움과 정중함, 그렇게 짝이 잘 맞는 단어는 아닙니다. 특히 ‘~하게 ~게’라는 문장은 두 개의 상황이 함께 이뤄진다는 의미입니다. 외로움이 뒤에 쓰여 있어, 이 상황에선 정중함보다 외로움에 더 방점을 찍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시의 내용에선 외로움에 방점이 찍힙니다. 외로움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죠. ‘설득하려 할수록 비참해진다’라고요. 어떤 외로움이길래 이처럼 ‘비참한 외로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일까요. 평범한 외로움은 아닐 거라고 짐작합니다. 화자는 이렇게 얘기하죠. ‘바닥까지 내려가 보면 / 자신의 바닥을 알게 되면 … 바닥을 알고, 내 한계를 알고 / 그곳을 박차고 나왔더니 다른 바닥이 있다’라고요. 우리가 삶을 비유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발밑의 지하실이 끝인 줄 알았는데, 더 깊은 지하실이 있었다고. 이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외로움에 빠졌다는 얘기인데요, 이는 어떤 상황일까요.
어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상실로 인해 마주한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화자는 이런 얘기를 하죠. ‘하필 꽃잎도 다 떨어진 봄날 / 떨어진 건 다시 되돌아가 붙지 않았다’라고요. 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깨진 엄지손톱이 자라지 않았고’라고요. 이런 문장에서 유추하면, 화자는 회복 불가능한 어떤 상실과 마주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더 아픈 까닭은 잃어버린 상실로 인해 마주한 외로움의 현장에서 또 다른 상실감으로 인해 깊은 외로움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화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감싸진 것을, 그것만 낚아채 가져갔다’라고요. 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그물은 물을 버려두고 물고기를 끌어 올리지’라고요.
이러한 상실의 상황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더는 놓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꼭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이 또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계속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놓지 않으려다 / 내 사랑은 죄다 아가미가 찢겨 있구나’라는 상황과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시를 다 읽고 나니 궁금해집니다. 무엇이 그토록 ‘정중’한 것일까요. 절대로 정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요, 아마 정중한 것이 있다면, 이 외로움과 마주한 화자의 (마음)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절대로 울부짖거나 소리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정중함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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