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을 가지런히 늘어두고 놈을 노려보았다.
물 건너온 놈이라 몸집이 만만치 않은 놈은 내 시선을 투명한 큰 모자로 되돌려보내며 시침을 떼고 있다.
자주 이리저리 옮긴다고 성질을 부린다더니... 놈은 나에게도 그 성질부려볼 모양이다.
놈이 부린 성질 때문에 덩달아 볼이 불퉁해진 기사가 놈이 어떻게 성질을 부렸는지 시범을 보여준다.
불빛이 초록으로 빛나는 걸 보니 피는 잘 통하고 있고, 이젠 중간에 놓인 팔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차례인데...? 웅웅~ 소리를 내던 놈이 갑자기,
'뚜껑이 열렸지롱~' 하고 고장 메시지를 띄운다.
"이 놈이 계속 이렇게 성질부려요. 분명 뚜껑이 닫혀있는데도... 미치겠어요. 아주~"
분명 그랬다. 기사 말처럼 놈은 분명 모자를 단정하게 쓰고 있는데도... 안 쓰고 있다고 떼를 쓰고 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해남에서 영광으로 옮겨오자마자 그러네요. 빌려온 처지라 고장 나면 안 되는데..."
"해남에서는 괜찮았어요?"
"예.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거 보고 빌려왔거든요..."
속이 타는지 기사는 옆에 놓인 포카리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속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한두 푼 하는 장비도 아니고... 누가 같이 책임져줄 사람도 없고...
'너 왜 그랴...? 아저씨 속상하시다잖냐...'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달래기 작전으로 들어갔다. 먼저 청진기를 가동해 놈의 속을 들여다본다. 요기도 이상 없고, 조기도 이상 없고... 아! 이상 하나 발견~.
근데 이상하네...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기사를 보니 기사 얼굴이 내 얼굴보다 더 걱정스럽다.
처음 보는 현상인데...?
분명 피는 잘 통한다고 초록 불빛이 말하는데도... 피가 안 통한다고...?
어케 된 거지..?
메스를 꺼내서 놈의 등짝을 떼어냈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걸~ 하며 자신만만하게 놈은 속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경조직을 떼어내서 하나 둘 작은 청진기를 들이대며 살펴보아도 별 이상이 없다. 역시 자신만만해 보이더니 놈은 서서히 나를 미궁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놈의 혈관신경조직을 갈아 보았는데도 놈의 반응은 똑같다.
'뚜껑이 열렸지롱~'
그렇다면 뇌 조직을?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뚜껑이 열렸지롱~'
슬슬 내 뚜껑에 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마가 차오르는 열 식히느라 부지런히 땀을 만들어 낸다.
갸우뚱갸우뚱~
뇌 기능을 맥시멈으로 끌어올려 추리에 또 추리... 놈의 꼬리를 잡고야 말 테다.
놈의 신경과 내장 구조를 그려둔 도면을 끄집어내어 하나 둘 손가락으로 짚어간다.
동작 중에 뚜껑이 열리면 놈은 피 공급을 끊고 모든 동작을 멈춘다.
뚜껑 열림을 감지하는 신경 조직엔 이상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경우는 언제 멈추지??
아, 맞다! 비상버튼!!
버튼에서 신경 조직으로 연결된 연결부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그렇다면??
결국... 비상버튼인가?
으아~ 비상버튼을 살펴보려면 놈의 하체를 완전히 뜯어내야 되는데...
이 일을 어쩐다. 놈의 하체는 뜯어본 적이 없는데...
오십여 군데 메스를 대야 뜯을 수 있을 텐데...
애써 뜯었는데... 만약 비상버튼이 아니라면? 으아~ 돌겠네...
내 뚜껑으로 치솟는 김을 보던 기사 눈빛은 이제 절망으로 초점이 평행선이 되었다.
성질을 죽이려니 죽어가던 성질이 한숨으로 새어 나와 바닥을 눌러대고, 그 눌린 바닥으로 머리 열 식히던 땀들이 떨어진다. 하여간 오십여 개의 나사를 아래위로 옮겨 다니며 다 풀었다.
하체를 떼어내니, 놈의 뼈대들이 하얗게 드러나고... 그 하체 앞에 빨간 반창고처럼 붙어있던 비상버튼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라???
저기 혼자 떨어져 덜렁대는 혈관은 뭐야?
비상버튼 등의 네 혹에 연결된 혈관 중의 하나가 따로 떨어져 덜렁대고 있었다.
"에라이~ 나뿐 놈. 우하하~ 찾았다. 짜식이 까불고 있어~"
초점 잃고 울상이던 기사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속도가 거의 빛의 속도에 버금갈 정도다.
목을 넘어간 포카리가 위장에 닿을 새도 없이 몸으로 흡수되는 걸 보니 내 속도 많이 탔던가 보다. 포카리 캔 바닥이 하늘을 향할 즈음에야 포카리가 위장을 시원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쨔샤~ 날 물로 보지 마~ 난 말이야... 엔지니어란 말이야. 엔지니어~!'
다시 놈의 하체와 등짝을 붙이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노래를 부르며 하는 일은 이미 일이 아니니까...
국도 길 덜컹대며 옮겨지느라 성질을 부렸던 놈도 드디어 얌전해져서 윙윙 잘 돌아갔고, 내 귀에는 놈의 윙윙대는 소리가 노랫소리로 들렸다.
******
한국에 있을 때, 전자회로 고장을 찾아내는 측정기를 영국에서 수입해 국내 산업체에 공급을 했었는데, 그중 예방정비가 아주 중요한 발전소들에는 그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로봇을 공급했었습니다.
가격이 높다 보니 이 발전소 저 발전소 정비 시기에 맞추어 옮겨 다니며 활용했는데 그중 한 곳에서 로봇이 고장이 났고, 저도 처음 접하는 고장이라 발전소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지요.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보다가 추리가 맞아 들어가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 엔지니어들은 자부심과 무한 긍지를 느끼게 되죠.
며칠 전에 현대자동차에서 선보인 AI 탑재 로봇 '아틀라스' 시연을 보았습니다.
관절의 움직임과 전체 동작들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뛰어나 보였습니다.
현존 로봇 중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더군요.
그 영상을 보며 예전 팔 하나가 XYZ 축을 따라 움직이던, 제가 취급했던 전자회로 점검 로봇이 떠올랐고, 격세지감을 느끼다가 그 로봇 기술의 최강이 우리나라 기업이란 사실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여전히 대한민국 엔지니어거든요. ㅎㅎ
첫댓글 다 읽을 때 까지 추리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절반 정도 지나면 무엇인지 유추가 될 법한데, 이해도가 낮았던 초딩4학년 때 읽었던 007시리즈물 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글 중간 떡 하니 올려두신 사진을 보고도 프린터기 인가? 했으니.
필력이 대단 하심을 다시 느껴 봅니다.
요즘 젊은 이들은 뇌섹남. 이라고 하죠.
마음자리님 뇌섹남 이셨네요.
개구쟁이 공대생인데 글도 잘 써,
풍부한 감성 소유자로 마음도 따뜻해.ㅎㅎ
너무 띄웠나?
ㅎㅎ 그러고 보니 3D 프린터 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커쇼 동생님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뇌섹남 소리 들어 봅니다. ㅎㅎ
지금 떨어지고 있는데 아직 땅에
닿지를 않네요.
너무 높이 띄우셔서. ㅎㅎ
어떤 물건인가
이해는 더딘데
원인을 찾고 해결하고
얻는 그 뿌듯함은
공감이 갑니다.
남편이 근 열흘째
갑작스런 급성 요도염증
방광고장
그 휴유증으로
배뇨빈뇨 오한 고열
와,죽음의 통증 호소를
해대고 있었으니
당황하고 놀래서
어찌 할바 모르고
응급실을 두 번 다녀오고
급한대로 집안 타올을
모두 꺼내 사용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저를,감동 시킨 것은
어느 닷컴 새벽 배송으로
일회용 물품들을 검색
구매하고 느낀 감동 이였네요.
나이를 거저 먹는거
아님을 깨달음 해보게
됩니다.
고쳐서 정상 작동 하는 거 보면
뭐든 뿌듯하지요.
얼마나 놀라고 걱정이 많았을까요?
요로결석을 앓아봐서 그쪽에 염증이
생기면 어느정도 아픈지 알고 있는데
아픈 부군도 힘드셨을 테지만 곁에서
돌봐드려야 하는 윤정님 고생은 또 얼마나 컸을지...
새벽 배송이 있어 그런 잇점이 많은데
나라는 그 일로 어수선하고...
부군께서 어서 말끔히 다 나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마음자리님이 전자제품 관련 사업가이신 모양이죠, 정밀기기를 다루는 재능이 뛰어 납니다 ㅡ
전자회로 고장 진단하는 측정기를
수입 공급하는 오파상을 오래 했었지요.
기계를 공부했는데 먹고 산 일은
의료 장비와 전자쪽이었어요. ㅎ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풀어낸 고장 진단의 과정이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살아 숨 쉬는 글입니다.
기계와 사람을 ‘놈’이라는 호칭으로 동일선상에 두고, 달래고 추리하고 결국 신뢰로 해결해 가는 과정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원인을 끝까지 놓지 않고 파고드는 집요함, 그리고 그 순간에 찾아오는 환희는 기술자의 숙명이자 자부심임을 절묘하게 보여주네요.
마지막에 오늘의 로봇 기술과 연결되며 ‘여전히 대한민국 엔지니어’라는 고백으로 맺는 대목에서는 조용한 울림과 함께 깊은 존경이 전해졌습니다.
기술은 시대를 따라 진화하지만, 문제 앞에서 끝까지 생각하고 책임지는 엔지니어의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한번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듯
저는 한국의 엔지니어로 남고 싶네요. ㅎ
ㅎㅎ처음에는 마음자리님이 몰고 다니는 트럭인가 추측하였습니다.
어려운 기계도 잘 고치시고....
마음자리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엔지니어입니다.
아, 그렇게 추측했을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엔지니어입니다.
어떤 물건이 고장이 났다면,
저는 가만히 둡니다.
그걸 기분대로 뜯어 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할까 봐서요.
어디가 잘못된 것을 찾아내는 힘은
아주 큰 것이지요.
새 옷 만들기 보다 수선하는 것이
더 어려운 사정이 있거던요.
무엇이든 간에 제자리로
옮겨 놓을 수 있는 힘은 큰 것입니다.
엔지니어로써의 자부심이
곧 애국심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고장을 잘 살펴보면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그 논리나 원칙을 찾으면 고칠 수가 있지요. ㅎ
해보면 그 일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저같이 문과출신은 기계쪽은 완전 꽝입니다. 다행이 두아들이 공대를 가서 먹고 삽니다. 둘째는 현차의 책임연구원이구요.. 그래서 집사람은 아무기술도 없는 당신이 여태 식구들 먹여살린게 기특하다고 자주 말합니다.
현차 책임연구원이면 그 일의 중요성과 책임이 막중하겠네요.
요즘 주춤해졌지만 미국에서의 현대•기아차 인기가 대단합니다.
제가 오늘 잠 잘 알라바마와 조지아주 경계선 가까이의 몽고메리시 부근에 기아와 현대차 미국 공장들이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어렷을때 라디오 뚜껑 열어보면 이선 저선 납땜
보고 신기 했었습니다 .
저는 엔지니어가 아니라서 도통 이해가 안 되지만
마음자리의 성공했을때의 기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
장하십니다 '대한민국 엔지니어 마음자리님 '
저도 엔지니어로 살 줄은 몰랐는데
우리 때는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고
고등학교 때 문과는 세 반인데 이과는
아홉 반이나 되었어요. ㅎ
그래서 동창 친구들 대부분이
엔지니어가 되었지요.
당연히 기술입국 나라를 튼튼하게
만든 애국자들이 되었구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로봇 뚜껑은 열려서 약을 올리고
제 뚜껑은 약 올라 김이 났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