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조재형 신부 복음; 마태5,43-48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 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 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47 그리고 너희 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 지 않느냐?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학생 때까지 저는 산수를 좋아했습니다. 구구단을 외우고, 삼각형과 사각형의 내각 합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에는 정수와 유리수 그리고 무리수까지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산수는 수학이 되었습니다. 수를 계산하는 것에서 수에 대한 학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위 말하는 ‘수포자’가 되었습니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물론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학교의 방침은 시험 때면 학년을 바꾸어서 앉게 하였습니다. 제 옆에는 한 학년이 높은 2학년 형이 같이 시험을 보았습니다. 과목도 달랐습니다. 저는 수학 시험이었고, 형은 영어 시험을 보았습니다. 원천적으로 ‘커닝’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2학년 형이 영어 문제 중의 하나를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다행히 아는 문제라서 알려 주었습니다. 감독 선생님이 그것을 보았고, 저희 둘은 따로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답해야 했습니다. 다니엘이 못된 일을 하려 했던 두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로 물어보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선생님은 제 수학 답안지 중에 한 문제를 감점 처리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수학이 어려워졌습니다. 미분과 적분도 어려웠고, 확률도 어려웠습니다. 커닝 사건만 없었다면 어쩌면 저는 계속 수학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나를 떠나겠느냐?” 그러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가 더 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는 ‘예포자’들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신앙인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신앙을 보여주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 성당 창문을 닫고, 하수구의 오물을 걷어내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가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명절이 되면 어르신들에게 떡을 나누어주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가 피정을 가면 매일 성당에 나오셔서 마당을 치우고, 수녀님을 도와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싸움에 이르려는 순간에 본당 신부의 말을 생각하며 용서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사랑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살기 위한 길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