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글스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 부터지만
그 시절 초등학생이 보는 야구라고 해봐야 그저 가뭄에 콩나듯 해주는 중계 한두번
그리고 스포츠뉴스에서 보여주는 짧은 자료화면이 전부였습니다
아버지나 형을 따라 야구팬이 된 것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 TV보다 팬이 된 서울 초등학생
그 어린이가 빙그레이글스 야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이 잠실이어서 야구장에 걸어갈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때 친구들 여럿이 모여 LG vs 해태 잠실 경기를 보러 간 게 전부네요
그렇게 빙그레 야구를 마음 속으로만 좋아하고 TV로만 띄엄 띄엄 보던 제가요.
드디어 고등학교때, 처음 야구장에서 이글스 경기를 보게 됩니다
(지금도 아쉽네요, 야구장에서 빙그레를 못 보고 한화만 본 것이. 저 고등학교 1학년때 한화로 바뀌었거든요)
이겼는지 졌는지 그건 잘 생각 안 나는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초등학생(고백하자면 국민학교지만) 시절부터 보아 오던 우상들이 내 눈앞에서 뛰는데요.
추억이 하나 있는데
고등학교때는 내 우상들을 볼 기회가 많았어요
저는 잠실구장 근처,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시절, 잠실 원정구단은 저녁경기가 있는날 오후 1시쯤 우리 학교 야구장에 왔거든요
거기서 간단히 몸을 풀고 잠실로 출근했죠
길 건너편 운동장 주차장에 구단 버스가 들어가고
거기서 원정 유니폼 입은 선수들을 보면서 가슴이 쿵쿵 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몇년이 지나 대학에 갔는데
"1학년이 무슨 공부야. 공부는 3학년때부터 해도 돼" 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조금은 남아있던 시절이었죠
선배 동기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술판을 벌이면서도 틈틈이 잠실 가서 <혼야>를 했습니다
정민철이 진필중과 완투대결을 벌여 1:2로 아깝게 패하는 경기도 혼자 직관했고
빙그레의 영광을 언제 되찾을까? 고민하며 그렇게 야구에 심취했습니다
아쉽게도 1998년부터 2000년은 야구를 잘 못봤네요
특히 슬픈 일은, 1999년 그 뜨거웠던 가을날 야구장에 없었다는 것
왜냐구요? 왜긴요. 대학교 입학하고 1-2년쯤 된 남자애가 어디에 있었겠어요
98-7302xxxx 이런 번호를 받고 군복 입었죠
빌어먹을, 신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지?
행정병이라 삽질은 안했지만 맨날 장교들한테 까이면서 상황실에서 전화받고 밤샘하고 그랬습니다
야구는 당연히 못 봤고, 대신 군대에서 매일 일기를 썼네요
그 일기의 이름은 <수양록>이었어요. 내가 정한 건 아니고 훈련소에서 정해 준 이름이었죠
'국방일보'라는 신문에 몇줄씩 나오는 야구소식을 거기에 스크랩하기도 하고
간부들이 신문 보다가 버리면 한화 기사와 사진을 잘라 딱풀로 정성껏 붙여 야구일기를 썼죠
야구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면서, 나름의 수양(?)을 한 겁니다
지금 꺼내보니까, 99년 10/30 날짜에 이런 신문기사들이 붙어있네요
"4전 5기 신화 일군 노장들의 눈물"
"선배들 한풀어 기뻐요, 포스트시즌서 불패입증, 한국시리즈 MVP 구대성"
군복 입고 있느라 우승을 놓친 그 시절 1번선발은
"빨리 제대해서 우승하는거 또 봐야지"라는 꿈을 꿉니다
그렇죠. 꿈...지금 돌아보니까 꿈 맞네요.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야구장 직관 인생이 시작됩니다
카페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같이 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한화 구단에서 야간 알바를 했어요
잠실-수원-인천 경기의 홈페이지 문자중계를 업데이트하는 일
일당 2만원 / 야구장 선수단 식당에서 저녁 제공 / 기자석 또는 벤치에서 문자중계
아마 태어나서 제일 신났던 순간들일겁니다. 세상에, 야구를 보는데 돈도 준다니 심지어 그 좋은 자리에서.
2002년부터는 정말 미친듯이 직관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카페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오프 모임을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 해
저의 역사적인 첫 경험.
대전구장 직관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생각나요
대전역에 내렸을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저 멀리 야구장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이미 마음이 벅차더군요.
우와, 내가 드디어 대전에서 야구를 보는구나. 팬질 14년만에 드디어 이런 경험을 하는구나.
너무 신났어요. 아니 신났다기 보다는 뭔가 벅차고 감동적이었네요
그날 야구장에서 저는 정말 대단한 것을 하나 목격합니다
<한화이글스 99한국시리즈 우승 기념탑>
보는 순간 울컥 하고 눈물이 나더군요
스마트폰도, 디카도 없던 시절인데 우승탑 사진을 아마 스무장쯤 찍은 것 같네요.
빙그레의 눈물이, 장종훈의 홈런이, 내 우상 정민철의 포스가 모두 거기 녹아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뜨거웠어요
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가면 아마 그런 느낌일까
저한테는 그렇게 크게 다가왔었죠.
우승 기념탑
아마 그 시즌이었을겁니다.
야구 끝나고 어떻게 인연이 닿아 정민철을 비롯한 선수들 몇명과 식사하고 술을 한잔 했어요
내가 인생을 통털어 가족과 지인 빼고 가장 좋아한 사람이 정민철인데
그 사람이랑 참이슬 병 앞에 놓고 '짠'을 하고 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그날 제가 술기운에 물어봤어요
"형 우리 우승 또 해야죠"
정민철이 특유의 인자한 웃음과 함께 답했습니다
"올해나 내년에, 늦어도 후년에는 또 하지 않겠냐"라고. "선수들이 늘 그런 마음으로 다 같이 운동한다"고
저는 신났어요 그리고 상상했습니다
군대에 있느라 억울하게 못 본 우승
민철이 형이 아직 건재하다면 또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죠
카페 회원들이랑 같이 보면서 신나게 응원하고
정민철 송진우 장종훈이랑 뒤엉켜 밤새 술마시면서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그런 상상을 했어요
네 상상.....상상이죠....지금 돌아보니까 정말로, 그냥 상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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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 여전히 있더군요
내 소중한 우승 기념탑
17년 전에 처음 보고 울컥했던 그 당당한 돌덩이
<한화이글스 99한국시리즈 우승 기념탑> 말이에요
99..............99................응? 뭐라고 99?
올해부터 투표권이 생긴 어엿한 성년, 대학교 1학년 청년들이 태어난 시즌
지금 리그 홈런 1위 강백호가 아직 엄마 젖도 못 먹던 시절
Y2K가 세상을 집어삼킨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던 시절
인스타그램은 개뿔, 페이스북이나 스마트폰도 없고 싸이월드도 없던 시대
핸드폰은 뚜껑을 열어야 되고 화면도 그냥 흑백인 사람이 훨씬 더 많던 시절
그 시절 세워진 우승탑
17년 전에 그걸 처음 본 청년이 뜨거운 가슴으로 감격해서 인증샷 수십장 남기던 그 시절 우승탑이
아직도 여전히 <유일한> 우승 기념물로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네요
몇 년 전에 어떤 회원이 그랬습니다
"오빠, 저 서른 살 되기 전에는 가을야구 다시 하겠죠?"
그 회원은 스물다섯살이고, 마지막 가을야구를 고등학교때 봤다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음 글쎄 ㅎㅎ 너무 방심하지마 그때까지 못할수도 있엌ㅋㅋㅋ"
그런데 말이죠
이제 내년이면요
그분이 정말 서른살이 됩니다
정민철이 조만간 꼭 우승하겠다고 호언 장담했을때
저는 그 말을 정말 믿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누군가 제게 한화이글스의 가을야구 얘기를 하니까
'5년 지나도 못 할 것 같은데'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네요
그 긴 세월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저, 특별한 사람 아닙니다
야구로 밥 벌어먹는 사람도 아니고
한화이글스와 경쟁팀의 전력을 면밀하게 분석해 전략을 짜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넓은 아량과 바다같은 마음씨로 선수들을 감싸고 포용해야 하는 선수단의 대모도 아니죠
그냥 밥벌이의 고단함에 뼈가 저리는 직장인
내 통장에 꽂혀있는 돈으로 여러 식구가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 가장
친구들 만나 술한잔 하고 싶어도 다들 스케줄 맞추기 바빠 1년에 1~2번 보기도 어려운 평범한 40대 아재입니다.
충청도에서 나거나 자라지도 않았고, 한화그룹과 1%의 연관성도 없는데다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중에 야구와 관련있는 일을 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저, 장종훈의 홈런이 좋아서
밤새도록 스윙 연습을 해서 팔이 짝짝이가 됐다던 촌놈 아저씨의 호쾌한 한 방이 멋져서.
정민철의 회초리 같은 직구와 한용덕의 하이키킹, 송진우의 절묘한 제구력에 매료되었을 뿐이죠
그래서 고등학교때 공부도 안하고 창 밖으로 선수들 구경하다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쳐맞기도 하고
생전 처음 와보는 대전이라는 곳에 발을 내리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도 했단 말입니다
죽도록 가기 싫었던 군대에 끌려가 있느라 우승하는 걸 못봐서
다음에는 그거 꼭 보겠다고 다짐하고
시간만 나면 야구장에 가고 그랬는데
그 세월이 벌써 30년 가까이 흘렀는데
내 마음 속 성지 대전에는, 여전히 우승기념탑이 99년 하나밖에 없네요.
중학교때 같이 야구 보러 다닌 삼성팬 친구는
"난 정규시즌은 야구장 잘 안 가, 그냥 한국시리즈만 가면 되지 뭐"하면서 저를 비웃은 적도 있는데 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카페 총무님이랑 결혼했어요
총무님이 토요일이랑 일요일날 그러시더군요
"야구 뭐.....이렇게 재미가 없어?" 라고요.
그러니까, "야 이 십장생 조카 크레파스놈들아!, 그게 야구냐? 똑바로 안해? 감독 나와봐!"라고 화를 내는게 아니라
그냥 심드렁,
어 그래 12대 1이네...하하하 에이, 괜히 봤네
이런 기분이랄까요.
99년 우승기념탑이 추가로 세워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냥 계속 놓여있던 지난 세월
그 세월이....참 그렇네요.
카페에 올라온 이런저런 글들을 보니까 그냥 옛날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하긴, 한화팬들이 야구 얘기 할 만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로마이어 3루타 친 얘기나 해야죠.
그 뒤에는 별로 할 말도 없잖아요.
아, 하나 있구나 심광호 동점홈런 12년 전에 친거.
원래 글 쓰면 이상한 오타 없나 한번 다시 읽어보는데
이 글은 다시 읽기 싫네요
그냥 올리겠습니다. 오타 있어도 이해해주세요.
원래 이런 센치한 멘붕은 밤에 와야 정상인데, 점심 시간에 이러고 있군요
다들, 기운 내시고요
뭐, 좋은 날 오겠죠
카페 게시글
┏이글이글 야구게시판┓
[8174] 그냥, 그렇습니다
1번선발
추천 2
조회 2,423
18.04.02 12:43
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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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글로 다 전달되는거 같습니다
저도 이리 글을 잘쓰면 제 마음도 전달하고 싶은데 현실은
악플러들 악플이나 보면서 부글거리고 있네요
이제 8게임했는데 그 악플러들 헛소리한거 비웃을수있는 깜짝 반전이 있길 바랍니다
쿵쾅쿵쾅~!!
표현을 못해서 글치...제마음에는 늘상 이글스는 쿵쾅쿵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 슬픈 느낌을 지울 수 없는 1번선발님의 이글스 팬 역사네요.
아직 대낮인데도 술한잔 생각나게 합니다. 힘내세요.
저랑 나이대가 비슷한가보네요.. 저도 99년 우승당시 군대에서..뉴스로 우승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면서,, 속상햇는지..
왜 하필.. 나 군대있을때...
그리고 아직까지 우승이 없네요..
글 읽어 내려가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이네요 자 눈물 좀 닦고 ~~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우승에 관한한 LG 롯데 그 두팀 보다 먼저 했으면 싶네요 -- 넥센 포함 9구단 10구단 신생팀 빼고 -- 기존 7구단 중에 21세기 들어 우승 못해본 3팀 -- V1 인 것도 서러운데 그팀 중에 우리 보다 먼저 우승하면 낙담이 심할 듯 합니다
1번 선발님...고맙고 감사합니다...그리고 존경합니다. 태생이 이글스인 저보다 몇 백배 이글스를 진정으로 좋아하시는 게 보입니다...
1번선발님...그래도 꿈을 꿔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아려오는 글이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런 팬분들이 있는데 ㅠㅠ 이글스는 정말 반드시 다시 날아올라야 합니다 정말요... 진짜 좋은 날 오겠죠
이글을 읽으니 딱 한번...
십년은 된듯한....
시청 인근 정모에 간 기억이 나네요.
회사가 수서역이라....
끝나고 부랴부랴..
그 때 멍하니 기다리는데
옆에 선발님이랑 야구소년(?가물하네요)님 계셨던듯 싶고.
시간 금방이네요... 대학때 우승을 보고.. 이제.. 40대라뇨..... 덴장..... ㅜㅠ
아.. 말은 한번도 안걸어봤는데.. 선발님 카톡의 야구공 사진도 꽤나 오래동안 있네요...
민철형과 삼겹살에 소주 마시던 그날 함께 있었던 몇몇선수들. 김병준 이상목선수였던 기억이 ㅎㅎ 아!!!옛날이여
선수들과 술잔을 기울이시다니~~뉘신지요 ㅎㅎ
@차암이글스 민철이형 부인되시는분과 김병준선수 여자친구도 합석했더랬져
이런 기분은 이글스의 팬이라면 다 함께 느낄거에요. 절망감도 아니고 막막함 이런 기분이겠죠. 제가 이제 곧 몇년있음 환갑인데 내가 죽을때까지 한화가 우승 아니 가을야구하는거 볼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이 드는 요즘이네요. 그냥 재미없어 스코아만 확인하고 ..욕도 나오지 않네요.
1999 한국시리즈 5차전은 우천으로 하루연기 되었죠 청주 촌놈 둘이서 부산 아재들이랑 포장마차 주먹다짐 한 생각이 나네요 이러저러 한 사연으로 결국 우승장면은 못 봤죠 지금도 직관짝꿍인 그 친구와 환갑전엔 한번 보겠지 합니다 10여년 밖에 아니 아직도 10년이 넘는 세월이 남었네요 돌이켜 보니 참 그런게 있네요
1번선발님. 이글스를 아끼는 마음이 절실이 느껴지네요.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슴 뭉클해지네요
카페지기님의 팀사랑이 느껴집니다.
제가 본 최고의 한화팬이신거 같아요!
99년 10월 초에 제대 했습니다... 제 제대 선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 주었드랬죠..
근데 그게 벌써 거의 20년 전이라니 ㅠㅠ
간절히 원하면 그런날이 오긴 오겠죠?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가네요. 욕나오는게아니고 그냥 야구재미없네?이런기분?
99년 7월 신창원이 잡혔던 그날로 기억되네요. 같은동네살던 정민철 선수집에 겁없이 찾아가 초인종누르고 사인해달라고 했던생각이 나네요.
저를 직접 집으로 들어갈수있게 해주었고 집구경도 했었는데... 그때받은 싸인볼이 이사를가면서 잃어버려서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나네요.
심드렁한 카페 총무님의 그말..
공감되요..ㅠㅠ
지는거에 너무 익숙해질까봐 걱정이고..이제 그런 게임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나기 보다는 재미가 없어서 채널을 돌리는 제가 걱정이 됩니다.
대전/한화그룹과 1도 연관없고, 정민철이 우상인데다 나이대도 비슷하고..1번선발님과 공통점이 참 많네요. 소주한잔 같이 하고 싶네요 ㅎ
저도 99년 이후 두번째 우승을 지금까지 못하고 있을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 대전구장을 갔던 날의 설레임이 생각나서 씁쓸하네요 우승기념탑 끌어안고 울고싶어졌어요
1999년이 참 그립네요 코치였던 이상군도 플레잉코치로 중간계투로 나름잘해줬었던기억이 ...저희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노장진만보면 쌍욕을 퍼부었던 기억이 아직생생하네요 다추억이죠 ..신남연과 로마이어 그들은 어찌지내고있을지 궁금하긴하네요^^
이글이 코칭스텝 및 선수단에게
전해진다면 좋겠네요.
99년이면 군대제대하고 3학년 복학했었습니다. 그당시 프라이드 베타 자동차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우승 경기를 경험(?)했습니다. 미쳐 날뛰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던 2루수 김승권 선수가 제 중학교 동창이었죠. ㅎㅎ
몇년전부터 한화팬이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88년 봄 빙그레이글스대 오비베어즈의 경기를 Tv로 본것이 처음으로 내가 본 야구 경기였고 그 한경기에 야구에 그리고 이글스에 반해버려서 지금까지 왔네요 그때 이글스가 아닌 오비에 반했다면 가을에 광클질을 걱정하고 있었을텐데 말이죠 일요일 경기를 직관한 한화팬 초딩의 일기를 보면서 아이들과 같이 다니는 지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는 말을 농담으로 했고 저도 농담처럼 애들한테 잘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도 올해 8경기중 3경기를 직관했고 이번주 일요일에 또 수원에 갑니다
어떤상황이 와도 야구는 포기가 안되고 남친은 버려도 이글스는 버릴 수가 없네요 아마 나이가 들고 할머니가 되도 걸을 수만 있다면 야구장을 가서 여전히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을 듯 합니다 어쩌겠어요 반한게 죄인 것을 그냥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살아야죠
총무님이 저랑 같은 맘이시네요..십몇대일도 그냥 아 뭐 또냐..이러고 타팀팬 친구가 꼴닭꼴닭해도 그래 꼴닭이다..뭐..그러고 말고..하아..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