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모르게 / 신용목
나는 아들에게, 따뜻한 것을 말한다. 무릎 담요에 대해 모자에 대해 풀밭에 대해 바람에 일렁이는 여름 숲과 여름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가을을. 가을이 왔다면 여름 동안 누군가는 사랑을 해서 끝없이 펼쳐진 풀밭 위에 무릎 담요를 펴고 모자를 쓰고 서로를 앞에 두고 서로를 찾는 긴 고독의 여름. 그것은 카드놀이에서 죽은 자의 눈과 가자 지구에서 죽은 자의 눈이 같은 것을 보는 것과 같은 여름, 숲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해서 풀밭이 있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고, 그것은 카드놀이에서 죽은 자가 다시 패를 돌리고 가지 지구에서 죽은 자가 고향의 폐허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이 가고, 아무도 그립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겨울이 와서, 사랑의 집에서 불을 피우고 바라보면 불은 빨갛게 타고 있는 가을 숲 같은데 하얗게 겨울을 남기는 가을 같은데 아들은 나에게, 차가운 것을 말할 줄 알았으나 무릎 담요를 무릎에 올리고 모자를 벗고 일어서는 풀밭으로 손바닥을 펼치며, 나는 지옥이 불타는 곳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어요. 이렇게 따뜻해서 언제인지 모르게 여름 풀밭에서 베인 살갗에서 빨갛게 불꽃 같은 것, 언제인지 모르게 내 몸속에서 시작된 가을 같은 것, 언제인지 모르게 내 몸을 하얗게 비워버린 마음 같은 것, 언제인지 모르게 재가 날리고 눈이 와요. 창문으로 달려가는 것. 바라보는 것. 언제인지 모르게 너는 태어나서 자라고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너와 헤어져서 그립다. ―계간 《가히》 2024년 가을호 --------------------
* 신용목 시인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등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2008년 시작문학상 수상, 2015년 노작문학상, 2017년 백석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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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긴 시편을 인용한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언제인지 모르게’ 우리 곁에 머무는 계절의 의미를 환기하면서도 더 나아가 “말한다”라고 하는 것이 ‘안다는 것’의 표현일 수는 있지만, 안다는 것이 하나의 감각을 몰입해 얻게 된 결과물이 아니며 지식적인 것도 아님을 일러주고 있는 명편이다. 신용목에게 의미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의미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자의 초대’인 셈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통합할 길이 없어 ‘우리’는 어쩌면 “탐구가 아니라 … 상상력에 의해 성취되어야 할 어떤”(리처드 로티, 김동식·이유선 옮김,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사월의책, 2020, 26쪽) 것이겠지만, ‘우리’가 출현시킨 의미를 값진 가치로 상정한 신용목의 혜안은 ‘우리’의 가능성을 드높인다. 그의 화자 ‘나’는 “아들에게,//따뜻한 것을 말한다. 무릎 담요에 대해 모자에 대해 풀밭에 대해 바람에 일렁이는 여름 숲과 여름에” 대해서 말이다. 따스한 것 가운데 으뜸인 ‘여름’이 왜 따스했던가를 상기하다가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면/오지 않았을” “가을을” 깨닫는다. “가을이 왔다면” 그것은 “여름 동안 누군가는/사랑을 해서” ‘우리’에게 ‘여름’과 ‘가을’이 주어져 의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따스함은 “서로를 앞에 두고” “끝없이 펼쳐진 풀밭 위에 무릎 담요를 펴고 모자를” 나눠 쓰며 사랑하는 ‘여름의 과정’을 통과해 얻은 ‘가을’의 ‘열매’인 것이다. ‘나’는 이제 가을이 풍성하고 따스한 여름을 품은 계절이지만 동시에 언 몸을 웅크리고 새로운 ‘봄(희망)’을 기다려야 하는 겨울을 잉태한 계절임을 안다. 그러나 시인은 겨울을 부정하지 않는다. “가자 지구에서 죽은 자가 고향의 폐허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이” 겨울이 오겠지만, 겨울이 온 것 역시 “아무도 그립지 않았다면//오지 않았을” 계절이기 때문이다. ‘앎’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다가 겨울에 이르자 “아들은 나에게” “차가운 것을 말할 줄 알았으나 무릎 담요를 무릎에 올리고 모자를 벗고 일어서는 풀밭으로 손바닥을 펼치며,” 따뜻한 것을 말하는 것을 본다. 아들은 아버지 ‘나’와 함께 ‘우리’를 이룸으로써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비록 ‘나’는 “너와 헤어져서 그립”기만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커다란 하나의 의미가 되었음에 ‘나’의 사유는 도달한다.
- 염선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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