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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처형장이 된 법정
자유일보
강병호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정치가 사법을 지배할 때, 법원은 정의의 심판자가 아니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
나치 독일의 국민재판소(Volksgerichtshof) 수석 판사였던 롤란트 프라이슬러(Roland Freisler)는 법이 어떻게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내린 판결의 상당수는 이미 결론이 정해진 선고였으며, 피고인의 방어권은 철저히 무시됐다. 법이 아니라 독재의 의지가 법정에서 집행된 것이다.
프라이슬러가 재판을 진행한 방식은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1943년 2월 22일, 백장미 운동(Weiße Rose)의 소피 숄과 한스 숄, 크리스토프 프로브스트가 그의 법정에 섰다. 이들은 단순히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기소됐다. 프라이슬러는 이들을 조롱하며 재판을 진행했다. 변론 기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나치당에 의해 이미 짜인 각본에 따라 증인들이 조작됐으며, 피고인들은 방어권조차 행사할 수 없었다. 판결은 예고된 것이었고, 선고 즉시 단두대로 보내졌다.
그의 악행은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재판에서 절정에 달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를 포함한 저항군은 히틀러 제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체포된 이들은 법정에서 프라이슬러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당한 뒤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는 사법을 정치적 응징의 도구로 활용했다. 이 같은 재판은 정의의 심판이 아니라 권력의 연출이었다.
프라이슬러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법이 정치적 무기로 변질될 때 사법부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다. 그는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허용하지 않는 ‘인민재판’을 진행했다. 법관이 독립성을 잃고 권력의 뜻에 따라 판결할 때, 법정은 더 이상 정의를 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처형장이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스스로 "제일 왼쪽에 있다"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주도하는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가 ‘우리법·국제인권법 연구회’로 인해 정치화되어 오염될 위험이 점차 커지고 있다.
법과 원칙을 준수해야 할 사법부가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한다면, 이는 ‘나치 국민재판소’와 다를 바 없다. 절차를 무시하고 정해진 결론을 목표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현대 국가의 법치가 아니라 ‘야만의 정치적 숙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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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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