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2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님 은혜의 손길로 날 인도하소서.
죄악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날 강하게 붙잡아 주시고 울타리를 쳐서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하소서.
하오나 날아오는 죄의 먼지는 제가 어찌할 수 없사오니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죄의 때를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주의 보혈을 구하는 이 순간만큼은 진실되게 하소서.
주를 향한 나의 마음이 그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벌거벗은 채로 자의식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하나이다.
오늘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나를 주의 날개 아래 품으소서.
그 안에서 쉐키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2:22-36
제목 : 복음, 뿌리부터 흔들리는 신앙을 참된 신앙으로 끌어올리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이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산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우리의 말을 좀 들어 보시오.
여러분도 이미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행하신 기적과 기이한 일들과 표적으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잘 드러내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악한 자들에게 그 예수를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그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에 철저히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결코 사망에 매여 있을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육신을 입고 오시기 훨씬 전의 사람이지만 그는 계시를 통하여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예수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앞에 계신 주님을 항상 뵙습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쁨으로, 내 혀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몸도 소망 속에서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내게 기쁨을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이여, 나는 우리 조상 다윗에 대하여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죽어서 땅에 묻혔고, 그의 무덤 또한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다윗의 보좌에 앉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이므로 하나님께서 맹세로 언약하신 이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내용을 미리 알고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고, 그분의 몸은 썩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하여는 우리 모두가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은 곳에 올려 하나님 오른편에 앉히셨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들은 것처럼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하늘로 올라간 적이 없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곧 본토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든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든지 그들에게 있어서 다윗만큼 확실한 증인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다윗은 그의 백성들에게 최고의 번영과 전성기를 누리게 해 준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시야를 원하되 다윗과 같은 정치적 해방과 경제적 번영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민속메시야를 원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에게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만족을 주었던 다윗의 증언이라면 아무리 악한 자라도 믿을 것이기에 베드로는 이 다윗을 선지자로 예를 들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 준 이들은 역사적으로는 가룟 유다요 대제사장들이며 빌라도요 군병들이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실일 뿐 복음이 아니다.
그러한 사실이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 안에서 보아야 한다.
그 진리는 다름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과 이를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그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내어주다’는 뜻의 헬라어는 ‘파라디도미’이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파라디도미 하였고,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파라디도미 하였으며 또한 빌라도는 군병들에게 파라디도미 하였다.
그런데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한 것이요, 그것을 미리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하신 것이다.
내가 당연히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추하고 더러운 나를 건지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파라디도미 하였다는 것은 사실, 우리의 이성을 깨트리는 것이며 나의 존재의 심연을 흔드는 최고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지식으로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지식으로만 그쳐왔던 것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결코 지식은 생명이 될 수 없다.
오직 복음만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지식을 넘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와 함께 무덤에 장사되며 그 안에서 주님이 살아나심과 같이 나도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믿는 것이요 주님과 함께 연합된 삶이다.
그저 예수 믿어서 나 잘 되는 것에만 매여 있으면 예수를 우상으로 섬기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나의 신앙은 철저히 그런 신앙이었다.
내가 예수를 믿었지만 예수를 믿어 내가 잘 되기를 원하고 예수 믿어서 이 땅에서 잘 살고 잘 되고 자식 잘 되고 부자되어 남들 보기에 보란 듯 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어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예수 믿는다고 해서 내 맘대로 되던가?
내가 기도하는 대로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훨씬 많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조차 찾아와서 신앙의 뿌리부터 흔들리기도 한다.
복음은 이런 뿌리부터 흔들리는 신앙을 참된 신앙으로 끌어올려 준다.
내 뜻과 내 방식대로 믿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믿는 신앙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는 신앙이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신앙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주님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신앙이다.
그 자리에 주님과 내가 함께 거한다.
그 자리는 십자가의 자리요, 무덤의 자리이다.
그곳에 늘 주님과 내가 연합하여 함께할 때 거기로부터 생명이 나온다.
오늘도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파라디도미 했으며 그런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날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파라디도미하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을 속이는 자요, 주님을 죽인 자이며, 주님을 진짜 미워했던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을 찬양한다고, 주님을 높인다고 하면서도 나의 삶의 저변에서는 주님을 부인하며 주의 이름을 능욕하기까지 했던 패역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였나이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하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나이다.
이 사랑 앞에 내가 어찌 하리요?
이제는 내가 날마다 죽고 오직 예수로 살기 원하나이다.
날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위하여 내가 죽기를 원합니다.
나를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에 내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어 주의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나의 삶이 오직 주님 때문에 살아가는 자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을 사모하여 주님이 나의 목적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